해외여행

오래된 도시에서 살아보기 (북경) (2018년10월25일 ~ 30일) 제 4일

럭비공2 2018. 11. 24. 00:32

2018년 10월 28일 일요일

처음으로 잠을 푹잤다.

6시도 안되어 눈이 떠진다.

오늘은 아침 식사를 나가서 먹고 바로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하였다.

8시 반 출발.

 

오늘 아침 식사는 전에 문대통령이 베이징에 왔을 때 각료들과 중국 서민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했던 바로 그 식당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여 전철을 탔다.

 

      대로변에 있는 이 식당 주변은 아파트가 많아 아침부터 직원이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는

      광경을 볼 수가 있다. 중국 여자들은 집에서 음식을 거의 안만들어 칼도마 조차도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정말 아침 식사까지도 배달 음식을 먹는가 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주인이 와서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우리를 문대통령이

드셨던 테이블 옆자리로 안내해준다.

벽에는 그 당시 식사장면 사진이 걸려 있다.

대통령 셋트메뉴가 있단다. 대통령이 그날 오셔서 드셨던 메뉴 (두유와 유과. 만두국, 찐만두)를

세트메뉴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3세트와 죽 2가지를 더 추가하였다.

우리를 배려해서 인지 TV화면에 그날 대통령 일행의 식사장면 동영상을 몇번이나 보여준다.

주인이 수시로 와서 상차림을 체크하고 먹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푸짐한 상차림. 가운데 접시에 노란 빵처럼 보이는게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긴 유과이다.

       첫날 호텔 조식부페에서 먹었던 유과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이 좋다. 이것을 콩물(두유)에 찍어

       먹는다. 우리의 콩물은 걸죽한데 여긴 콩물이 맑다. 만두국이 시원하고 슴슴하여 아침식사로 제격.

       지금도 이 만두국 맛을 그리워 한다. 대나무 통에 쪄나온 만두도 맛있고.

       흰죽과 녹두죽. 특별히 주인이 김치를 가져다 주어 맛있게 먹었다. 베이징에 와서 최고로 맛있게

       배가 빵빵하도록 먹었다. 콩물까지 다 마셨다. 4명이 푸짐한 식사를 했는데 95위안.

       가격도 착하고 맛도 좋고. 대통령이 다녀가고 나서 이 식당은 더욱 유명해졌으리라.

 

       행복한 식사를 끝내고 전철을 타러 가는데 도로가 넓직하고 시원하게 뚫려 있다.

       베이징에 와서 거의 자금성 주변 관광지만 보다가 북경 시민들이 사는 마을에 와보니

       도로변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아파트 건물이 조밀하지 않아 조용하고 쾌적해 보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하여 2006년에 개관한 수도 박물관.

       모든 건물들이 엄청 큰데 이 건물도 무지무지하게 크고 길다. 사진에 전체를 다 담을 수가 없다.

 

      그런데 크기에 비하여 전시실은 절반의 공간만 이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5층 꼭대기까지 그냥

      비어있다.

      맨 위층부터 보면서 내려 오기로 하여 올라갔다.

      베이징을 건축,민속,역사,문화 등 각 분야로 나누어 전시하였단다.

      도자기실에 들어갔다. 우리것에 비해 도자기 색깔이 참 다양하다.

      섬세한 문양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여백의 미'는 용납이 안되는 듯.

      백자와 청자는 많은데 분청 사기는 없다.

      전시실을 돌아보면서 의문이 생긴다.

      베이징 주변에서 나온 유물들을 전시했다는데 전시물이 좀 썰렁하다.

      요,금,원,명,청의 수도로 5대 왕조를 거쳤으니 꽤 많은 유물들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하고

      들어왔는데...

      건물이 너무 커서 기대한 만큼 실망을 하고 그냥 나오게 되었다.

      중국 국가 박물관에 가볼걸 그랬나?

      하긴 1960년 중반 문화혁명기때 자신들의 보물인 옛 것들을 많이 파괴하고 내다 버렸으니...

      중국인들은 문화혁명으로 무엇을 얻었을까?

      갑자기 그리스 여행에서 머리에 쥐가 나도록 돌아보았던 박물관 생각이 난다.

      아테네는 물론 각 지방의 유적지마다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근처에 꼭 있었다.

      건물은 허름한데 유물이 어찌나 많았던지. 모두가 기원전의 보물들이었다.

      여기 베이징은 건물은 으리으리하게 큰데 전시물이 빈약하다.

      너무 허세가 심한건 아닌지.

 

다시 전철을 타고 공왕부에 가기 위해 북해서역에 내렸다.

깃발 든 내국인 단체객들이 길을 메운다.   

       

       공왕부(恭王府)

      왕부(王府)는 왕족이 기거하던 저택을 말한다.

      공왕부의 원래 주인은 화신(和伸). 청나라 건륭제의 총애를 받았던 관리였다.

      총애를 발판삼아 온갖 부당한 방법으로 수많은 재산을 모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탐관오리였다.

      잘 생긴 외모에 지적인 능력까지 갖춰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화신은 훗날 그의 아들이 황제의

      딸과 결혼하자 더욱 더 큰 권력을 누리며 재산을 모았다.

      하지만, 건륭제가 사망한 후 수많은 신하들이 탄핵하자, 가경제가 화신의 저택이 감히 대궐을

      흉내 냈다 하여 재산을 몰수 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그런데, 몰수된 재산의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몰수된 집만 2790채에 개인이 소유한 상점이

      100여곳이 넘었으며 금,은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수천 개에 달했다.

      가경제는 그 후 화신의 저택을 자신의 동생인 영린에게 하사하였다.

      또한, 다시 이 저택은 공친왕 혁흔에게 되물림 되면서 '공왕부'라 불리게 되었다.

 

 

 

                        공왕부의 모형을 보니 자금성의 축소판 같다. 뒷쪽은 연못이 있는 화원도 갖추었다.

 

        지도를 살펴 보니 한 눈에 들어온다.

        해자에 둘러싸인 자금성이 중심에 있고 서북쪽에 인공호수인 북해공원이 있다.

        그 주변으로 왕부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고 이 저택들을 포함하여 4각형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사각형 성곽이 지금은 지하철 2호선 노선도가 된다. 

        우리의 2호선처럼 순환하는데 옛날 성곽의 성문 이름을 따서 역이름이 '0 0 门' 이 많다. 

        자금성 아래 남쪽에 초록색 부분이 천단공원. 여기도 성곽으로 둘러 싸여 있다. 

         

 

       저택이 얼마나 큰지 직선으로만 가는데도 비슷한 집들이 계속 나온다.

 

 

 

         인간들의 소원 목록표. 참 많기도 하다.

 

      황제를 보필하는 사람들도 황제처럼 살고픈 욕망이 있는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단지, 실행하느냐 꿈만 꾸느냐의 차이겠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이 수석이 그 당시엔 부의 상징이었다나~

 

 

       중국 고건축물엔 복도같은 긴 회랑이 특징이다. 가운데 공간은 그 당시에 물을 채워 족욕을

       즐겼을 것 같다. 

 

 

 

 

 

공왕부를 나오다가 벽에 그려져 있는 재미있는 그림을 보았다.

아버지가 벽에 낙서를 하는데 그 뒤에 있던 아들이 아버지의 엉덩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낙서하지 말라는 시민계몽용 광고물 같다.

경제가 어느정도 올라서면서 국격에 맞는 시민 길들이기를 하는것처럼 인식된다.

올림픽을 치른 후에 왔던 7년전보다 많이 달라졌음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도로가 깨끗해졌고 식당에 가도 많이 청결해졌다. 옷차림도 밝아졌고.

목소리도 전보다 조금은 작아졌다.

공중화장실이 많아졌고 매우 깨끗하게 사용하는것도.

곳곳에 청소부가 포진하여 쓸고 닦는걸 볼 수 있다.

그런데 제복입은 남자들이 곳곳에 있어 경직된 분위기를 느낀다.

제복을 입었으면 제법 위엄있게 보여야 하는데 헐렁한 제복을 입고 풀어진 행동을 보고 있자니

단지, 젊은 남자애들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함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친절도면에선 아직 점수를 줄 수가 없다.

길을 물어보면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죽 가란다. 투박한 말씨도 그렇고.

그러나 전철 안에서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애들이 많아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역시 공자의 후손답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전철을 타면 안쪽으로 안들어 가고 입구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갈 때가 많다.

 

               길을 가다가 과일꼬치(탕후루)를 맛보았다. 보기엔 먹음직한데.

               작은 사과 같은데 윤기 나는 물엿을 묻혀 굳혔다. 근데 사과맛은 없고 그냥 물엿 맛이다.

 

      공왕부에서 스치하이(십찰해)로 가는 길에는 옛 서민들이 살아던 골목인 후퉁을 지나간다.

      인력거도 볼 수 있고. 후퉁(Hottong)은 우물을 의미하는 몽골어.

      원나라를 통치했던 몽골인들은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했는데 이 시기부터 베이징에

     수많은 골목이 형성되었다. 원,명,청을 거치면서 후퉁이 6000여개가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 현대화 건설로 지금은 3000개 정도 남아 있다.

     후퉁의 전통적인 주거양식은 사합원(四合院)으로 ㅁ자 모양의 가옥구조이다.

     가운데는 중정이 있으며 네 방향의 건물들이 둘러싼 전통 주거양식이다.

     그러면 중정인 안마당을 4가구가 공유했다는건데 4가구는 혈육지간이었을까?

     

      십찰해(十刹海) 스치하이. 인공호수인 전해(前海)와 후해(後海)를 함께 지칭하는 명칭.

      야경이 아름다운 명소라는데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호수가에 늘어선 버드나무가 부러질까

      두려워 그 밑으로 갈 수가 없다.

 

           커피집을 찾는데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왠 노래방이 많은지.

 

       은정교에서 바라본 전경. 세찬 바람에 호수물결이 마치 바다 같다.

       이곳은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에 식량을 수로로 운반하면서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단다.

 

        연대사가(烟袋斜街)로 들어섰다. 원나라때부터 조성된 후퉁중의 하나.

        이 골목이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담뱃대 모양이라는데 우리는 그저 커피집만 찾고 있다.

 

        초코렛과 커피를 파는 가게. 좁고 경사가 급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창밖엔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여기서 핫초코와 커피를 마시며 아픈 다리를 쉬었다.

        가져온 생대추와 초코렛등 달달한 간식거리로 점심겸 에너지를 충전했다.

 

      커피집을 나와 연대사가가 끝나고 왼쪽으로 돌아보니 아주 우뚝선 건물인 종루(鐘樓)가 서있다.

 

         맞은편 건너엔 고루(鼓樓)가 있다. 두 건물이 아주 높은걸 보니 일정한 시간에 북과 종을

         쳐서 멀리까지 잘 들리게 하기 위해서겠지. 그렇다면 동시에 함께 쳤을까?

         북소리와 종소리중 어느것이 멀리까지 퍼져 나갈까?

 

                안내판에 써있는 글을 읽지 못하니 답답하다.

                그림 약도로 만족할 수 밖에.

 

      먼저 고루에 올라갔다. 어찌나 가파른 계단인지 겨우 올랐다. 내려갈게 걱정이다.

      그 당시에 쳤던 굉장히 큰 북은 파손되어 한쪽에 있고, 좀 작은 북 여러개를 한꺼번에 쳤다면

      이 소리 또한 굉장했겠다.

 

       고루 바깥쪽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북경시.

 

      저 건너편 현대식 빌딩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신도시인가 본데 그중에 매우 긴 빌딩은 어디서든

      잘보인다.  마치 파리의 에펠탑 처럼.

 

       무릎이 안좋은 상태에서 계단 내려가는건 진땀 나는 일이다.

       오로지 발밑만 보고 한 발 한 발 내려 디뎌 끝도 없이 내려왔다. 후~유~

 

           고루에서 바라본 종루 전경.

           결국 종루는 동생부부만 올라갔다.

 

다시 전철을 타고 저녁을 먹으러 옥류관에 갔다.

요즘 남북의 사이가 좋아지면서 평양 옥류관 냉면이 TV화면에 자주 등장한다.

전에 캄보디아에 갔을때도 옥류관에 가서 냉면을 먹었는데 북경에 왔으니 꼭 가서 먹어봐야 할

1순위이다.

전철역에 내려 왕징거리의 넓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우연히 한국인을 만나 옥류관 위치를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는 이 동네는 부자동네라서 그런가?

엄청 넓은 대로와 아파트 빌딩의 동간 거리가 넓어 쾌적해 보인다.

 

       옥류관 건물도 매우 크고 웅장하다.

 

       넓은 홀, 한복 입은 북한 여성이 우리를 맞이해준다.

       조용조용한 북한식 말투가 매우 정겹다. 우리 말이 통하니 안심도 되고.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별로 없다.

 

      어떤 맛일까 매우 궁금했었는데 오늘은 허리띠를 풀고 제대로 맛을 봐야지..

 

       여러가지를 시켰는데 우선 호박죽이 나오고 밑반찬과 찹쌀순대가 나왔다.

       대동강 맥주는 우리 국산 맥주보다 훨씬 맛이 좋다. 평양 소주도 아주 훌륭하다.

       화학주가 아니고 곡식으로 만든 증류주라서 비싸단다. 1병에 100위안. 꽤 비싼편이다.

       우리의 안동소주 같은 등급으로 보면 될 것 같다.

 

       피자 크기만한 두툼한 해물파전도 맛있고. 그 여직원이 와서 각 접시에 서빙해준다.

       북한식 사투리가 매우 매력적이다.

 

      소꼬리찜도 나왔는데 뼈가 대부분 차지하여 별로 먹을게 없다.

 

       맨 마지막으로 나온 평양냉면과 쟁반 냉면. 국물이 붉은색이어서 생소했는데 맛이 슴슴하여

       끝까지 잘 먹었다. 우리가 동네에서 먹었던 평양냉면과는 좀 다르다.

       김치는 꽤 단맛이 강하여 의외였다. 북한 음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것 같다.

       엄청 많이 먹었다. 평양소주를 3병 더 샀다.

       이번에 못 온 남동생에게 한 병 선물하고, 나머지는 다음 모임 때 같이 마셔 보자고.

       식사값이 거의 1000위안 정도. 비싼 소주를 3병이나 샀으니.

       기분좋게 식당 문을 나섰다. 약간 취하니 기분이 꽤 좋아진다.ㅋ~

 

숙소에 오는 길은 전철을 여러번 환승해야 했다.

땅이 넓으니 환승역도 멀리 떨어져 있어 꽤 많이 걷는다.

숙소 앞 마트에 들러 생대추,귤, 생수, 과자를 사서 나누었다.

그런데 귤은 우리 것만 못하다. 단 맛이 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