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5일 수요일
6시 반 기상.
온돌 바닥에서 잠을 청했지만 역시나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부쳤다.
여행은 체질적으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해야만 최고인데, 난 여행 떠난지 3일이 지나야만
내 컨디션이 제대로 적응을 하게 된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데 옆에서 코를 골더라도 깊이 잠자는 룸메를 보면 매우 부러워진다.
J는 며칠째 배설을 못해서 전전긍긍하더니 오늘 아침은 아예 굶어 보겠단다.
그래서 P랑 둘이서 식당에 내려가 된장찌개를 먹었다.
여기는 식재료를 좋은걸 쓰는지 음식이 모두 맛이 있다.
8시반 체크아웃.
객실 냉장고에 있는 생수 2병값을 내란다.훗훗...서비스가 아니었네!!
암튼, 덕분에 쾌적하게 이곳 시설물을 이용한 것에 감사한다.
오늘 일정은 교례 자연휴양림을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산굼부리를 보고 성산쪽으로 가다가
용눈이오름에 오르고, 성산에서 민박하기로 하였다.
원래는 올레 1코스를 걷기로 했었는데 어제 바닷바람을 너무 맞아서 약간 감기기운이 있고,
J의 친구 일행이 어제 자연휴양림을 돌아보았는데 좋았다고 적극 추천해주었었다.
내륙쪽은 바람이 약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출발하는데 날씨가 심상치가 않다.
바람이 불고 눈발도 휘날린다. 바닷가는 바람이 더욱 세게 불겠지.
한라산 중산간 도로를 따라 한적하게 달려간다.
옛이름 '제주 돌문화 공원'은 왠지 인공적인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자연휴양림'은 자연 그대로
일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휴양림 안쪽으로 들어 가는데 관광객도 별로 없어 매우 조용하다.
제주 전통 초가집을 지어 사무실로 쓰고 있다.
범상치 않은 자연환경이다. 나무가 바람에 쓰러진것도 그대로 놔뒀다.
왠 바위들이 이리도 많은지, 겨울인데도 이끼가 무겁게 깔려있고 고사리가 지천이다.
건조한 겨울이 이정도인데 봄~가을까지는 활엽수가 하늘을 가릴것이고 숲속은 매우 촉촉할거다.
아마도 여기저기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도 볼것이고....
곶자왈: 나무와 덩굴,암석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지형이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제주도만의 독특한 지형이 되었다.
제주도의 동부,서부,북부에 넓게 분포하며 지하수 함량이 풍부하여 보온,보습효과가 뛰어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식물과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무거운 돌들을 치우고 손바닥만한 공터에도 밭을 일구어 살았던 산전터와 돌무더기들이 보인다.
이곳에 있는 돌들로 경계를 만들어 산책로를 만들었다.
오가는 이가 별로 없어 괴기스러운 기분이 든다. 혼자 걷기엔 좀 부담이 되겠다.
1970년대 이전까지 숯을 만들었던 가마터가 온전히 남아 있다.
이들이 머물렀던 움막집도 남아 있고.
쓰러진 나무 뿌리를 살펴보니 커다란 돌들을 품고 있다. 이들이 바위가 많은 환경에서 이렇게
적응하며 살아 왔던 것이다.
가뜩이나 괴기스러운 숲속에서 까마귀떼들이 머리위에서 까악~까악~ 울어대어 더욱 효과(?)를 낸다.
드디어 평지를 만났다. 후유~ 햇살도 즐길겸 풀밭에 앉았다. 여기저기 말똥이 말라가고 있었다.
말목장인가 보다. 간식과 귤,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다리를 쉰다.
오름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옆에 서릿발이 흙속에 하얗게 보인다. 얼마만에 보는 건가?
어렸을 적에 서릿발을 보면 일부러 밟아서 우두둑 우두둑 부러지는 소리를 즐겼었다.
3.5Km를 걸어서 드디어 오름에 올랐다. 큰지그리오름 전망대.
시원하게 멀리까지 보인다.
전망대를 반환점으로 다시 왔던 길을 걸으며 좀더 자세히 나무들을 살펴 보았다.
나무들마다 덩쿨 식물들이 나무를 칭칭 감아 올라가는데 숱하게 많은 잔뿌리들이 나무껍질에
가볍게 얹혀 있다. 그렇다면 이 덩쿨식물은 이 나무와 공생관계일까? 기생일까?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온것 같은 나무.
숲속에서 보았던 까마귀를 닮은 가로등이 눈길을 끈다.
3시간정도 숲길을 걷다가 나오니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 자동차에 기름이 거의 떨어져 간다.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소개받은 맛집을 찾아 간다.
이 동네 음식점들은 거의 토종닭 전문식당이 많다. 아마도 이동네에서 토종닭을 키우는가 보다.
찾아간 맛집 "해락원"은 연예인들도 꽤 다녀간 흔적들이 보인다.
토종닭 전골을 주문했다.
토종닭에 꽃게,전복,무우와 감자를 넣어 하얗게 끓인 국물맛이 아주 시원하고 감칠맛 난다.
배가 고프던 차라 정신없이 퍼먹는데 어째 P의 숟가락질이 힘이 없다.
닭요리를 잘 안먹는단다. 이런~ 미리 얘기좀 해주지....
맛있게 먹던 우리도 왠지 미안해지고... 대신 꽃게를 먹으라고 그의 앞쪽으로 몰아 주었다.
거의 다 먹어갈 무렵에야 생각났다. 먹기전에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요근처에 있는 산굼부리를 찾았다.
가을에는 억새로 유명하다는데 제주를 여러번 왔어도 이 곳은 처음이다.
그런데 입장료가 매우 비싸다. 1인당 6000원. 보통 1000원~3000원 사이인데.
이곳은 사유지라서 그렇다나.
산굼부리 정상에서 보면 왼쪽은 분화구, 오른쪽은 경사면에 갈대가 가득하다.
너무 잘 정비되어 있어서 조금은 실망스럽다.
분화구가 너무 커서 카메라에 다 넣을 수가 없다.
분화구 안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이색적이다. 이곳의 식물생태계는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산굼부리에서 '굼'은 구멍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산에 생긴 화산체 분화구.
'오름'은 산을 말한다.
오름에는 굼부리형 오름(분화구가 있는 오름)과 봉우리형 오름(화산이 폭발하지 않아 분화구가 없다)
이 있다.
산굼부리의 분화구는 '미르형'이다. 화구 둘레가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화구라는 뜻.
백록담이나 천지는 화구에 물이 고여 있는데 산굼부리는 물이 고이지 않는다.
분화구 가운데는 아직도 열이 솟아 오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휴화산 인가?
분화구안에는 난대성 수목이 자라고 온대림의 대표적 수목들이 숲을 이루는 특징을 가지고 있단다.
여름에 와서 저 분화구에 들어가 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면 정말 신날 것 같다.
서쪽 사면에 여러 기의 무덤이 잘 정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분들의 후손의 사유지인것 같다.
그렇다면 비싸게 입장료를 받는 것은 후손들이 이곳을 운영하기 때문이라는 건가?
편백나무를 빽빽하게 심어 방풍역할을 하고 그 앞에는 굴거리 나무가 열을 지어 자라고 있다.
산굼부리 입구의 사무소와 기념품 가게들. 사진을 찍느라 많이 지체되었는데 먼저 내려온 P가
따끈한 커피를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워~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다가 오메기떡을 사먹었다.
전에 답사와서 사먹었을때는 순수한 차조를 넣어 정말 맛있었는데 요즘은 찹쌀에 쑥을 넣고 차조는
극히 소량을 넣었을까 옛 맛이 사라지는것 같아 좀 아쉽다.
길 이름은 비자림길이라 했는데 가로수는 편백나무를 길 양옆으로 빽빽하게 심어 끝없이 이어진다.
성산으로 가는 길에 용눈이오름에 오르기로 했다.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고 어제 본 김영갑씨가 생전에 많이 찾아갔던 곳이라고 한다.
오름 서쪽 기슭에 무덤들이 있고 건너편에 다랑쉬오름이 자리잡고 있다.
사선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이는 억새들
포근하게 다가오는 오름의 완만한 곡선.
건너편에 풍력발전기가 있는걸 보면 여기는 바람이 많이 부는 동네인가 보다.
세찬 바람에 스마트폰이 흔들려서 사진찍기가 버거울 정도. 손도 시렵고....
그러나 눈 아래 펼쳐지는 세상을 그냥 보기엔 정말 아까워서 계속 셔터를 눌러댄다.
왜 사진작가들이 여기를 찾는지 알것 같다.
바람에 흔들려서 촛점 맞추기도 쉽지 않다.
완만한 곡선위에 한가족이 걸어간다.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밭 한가운데 무덤들이 평화롭게 누워있다. 후손들이 밭에 와서 일하면서 조상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것 같은 상상을 해본다.
우리가 저 길을 따라 올라와 정상에서 바라 본다.
기울어져 가는 햇살 속에 세찬 겨울바람을 온몸에 받으며 오름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
갑자기 한 장면이 떠오른다. 스페인 여행 갔을 때 라만차 지방을 경유하게 되었었다.
돈키호테의 풍차 마을이 있는 언덕에 올라 갔을 때의 황량한 들판을 내려다 보며 몹시 쓸쓸했던 기억.
지금 이순간, 바로 그 기분이다. 그 때 내 어린 룸메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었다.
그 아가씨는 잘 지내고 있을까?
아름다운 석양이 우리에게 보너스를 주는것 같다.
성산의 민박집에 도착.
해녀인 안주인이 반갑게 맞아 준다.
안채의 마당에 별채를 따로 두어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별채에는 거실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4개쯤 두었다.
거실 한쪽에 조리대랑 냉장고도 두어 간단히 해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우리가 머물기로 한 방은 온돌방으로 널직하다. 화장실도 달려 있고. 이만하면 되었지.
오늘 저녁은 P가 쏘겠다고 우긴다. 간간히 커피를 얻어 먹고 있는데....극구 만류했지만....
안주인이 소개해준 '짱아저씨네 식당' 을 찾아 갔다.
스페샬 메뉴를 2인분 주문하고, 마지막 저녁식사를 빛낼겸 우도땅콩 막걸리도 한 병 주문하였다.
스페셜 메뉴에는 흑돼지 삼겹살, 전복,한치,새우가 나오고 딸린 반찬들도 푸짐하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문제가 생겼다.
땅콩막걸리를 한 잔 마시면서 전복을 하나 구어 먹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도무지 음식이 댕기지 않는다.
땅콩막걸리가 배를 든든하게 채워준건지... 다 먹지를 못하고 결국은 음식을 남겨야 했다.
맛있게 먹어줘야 했는데... P에게 미안해진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방이 따뜻해졌다.
썰렁한 화장실에서 대충 샤워를 끝냈다. 감기들까봐 매우 조심.
어제 오늘 많이 걸어서 무릎관절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양쪽에 무릎아대를 하고 걸어서 한결 수월하기는 한데.
오늘 밤도 양쪽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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