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산티아고를 걸어가 봐야지 하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몇 군데 걷는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실현의 단계에 이르른 것 같다.
어느날 소식이 왔다.
제주 올레를 가잔다.
명예 퇴직한 3명 (제주에서도 12년간 교직에 있었던 K, 행동대장이며 총무인 J, 그리고 나,)
그리고 유일하게 현직에 있는 P.
P가 근무하는 학교는 연휴 다음날이 개교 기념일이어서 아예 일주일내내 쉰단다.
그래서 그의 휴가 날짜에 맞추어 5월 6일~5월 9일까지. (3박 4일간)
새벽에 출발하고 밤늦게 오는 비행기로 온통 4일간을 오로지 올레길에 심취해 보자고 결의를 다졌다.
"올레"라는 말은 제주어로 '거리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2006년 언론인 출신인 서명숙씨가 30년 가까이 근무하던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피레네 산맥을 걸어 넘어가면서
마음에 평화를 얻고 산티아고로 걸어가는 33일째에 만난 영국여자와 대화를 나누었단다.
"산티아고는 내게 위안과 자유,평화를 주었다."
"우리는 선택받고 행복을 만끽한 사람이다. 너희 나라는 지구 저쪽 먼 나라다.
사람들이 모두 이 길에 와서 행복을 나누기는 어렵다.
너희 나라에 가서 행복을 누리는 길을 만들면 어떠냐.
너는 너의 까미노(Camino de Santiago)를 만들어라.
나는 내나라에 가서 나의 까미노를 만들겠다"
우연히 만나 길을 함께 걸은 영국인은 서명숙의 마음을 흔들었단다.
대학 진학이후 잠시 다녀가던 고향 제주도. 제주의 풍광과 추억 어린 길이 떠올라 자신감이 솟구쳤단다.
"그래, 내가 만들자!"
산티아고에서 돌아와 지인들과 올레 코스를 탐사하면서 감탄사 연발에 힘을 얻어 드디어 (사단법인)제주 올레를
2007년 9월에 발족시켰다.
매월 한 코스, 한 코스를 개장할 때마다 유명 인사를 앞세우고 올레꾼들과 함께 걸으며 교감을 나누다 보니,
지금은 성산에서 고산까지 193Km, 12코스를 개장시켰다.
서명숙의 길에 대한 철학.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곳은 다 길이다. 해풍을 맞으며 간세다리로 쉬엄쉬엄 걸으며 나를 놓아주는 길이다"
"제주 올레길을 따라 걸으며 긴 휴식을 허락하여 간세다리로 휘적휘적 걸으며 햇살을 받고 해풍을 맞으며 평화를 맞보자"
"여행 한 번으로 인생이 바뀝니다. 빠른 속도와 소음에서 벗어나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여행,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위로 받을 수 있는 여행....내가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우리는 4일간 매일 한 코스씩 걷기로 하고 숙소로 정한 "한국콘도"가 있는 중문관광단지를 통과하는 8코스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4~5끼 밥을 해먹기로 하고 각자 먹을 만큼의 쌀(2공기)과 밑반찬 1~2가지,매일 짊어지고 다닐 작은 배낭, 강한 햇살에 대응할
긴팔 셔츠와 선크림, 모자, 선글라스.....
2009년 5월 6일 수요일 (제 1일)
새벽 5시 20분. J 집앞에 집결.
트렁크가방 4개와 배낭 4개. 자동차의 뒷 트렁크 면적이 넓은 차로만 운반 가능하여 J네의 차로 그의 남편이 김포공항까지
태워다 준다.
제주 항공으로 06:30분 출발하기 전 커피와 떡으로 간단히 아침식사.
트렁크 가방은 부치고 수속을 밟던 중 열쇠고리 칼이 압수되었다.
내가 해외여행을 다닐 때도 이건 꼭 챙겨서 트렁크 가방에 넣어 안전했는데 2년의 공백기(?)동안 까맣게 잊고 방심하다가
아끼던 물건을 놓아 주어야만 했다. 에그~
조그마한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 두 줄씩 좌석 사이로 통로가 있는 아담한 기내. 그래도 음료수를 제공해준다.
J가 인터넷에서 뽑아온 두툼한 올레코스 자료를 나누어 준다.
1시간 10분 비행. 짐을 찾아 나오니 8시쯤.
공항 입구 왼쪽에 서귀포 가는 리무진 버스 승차. 50분 걸려 예약된 한국 콘도에 도착.
이른 시간이라 카운터에 트렁크를 맡겨놓고, 가벼운 배낭을 메고 콜택시(반드시 콜택시 전화번호 필요함)를 타고
8코스 시작점인 월평 포구에서 내린다.
올레 8코스(월평 포구~대평 포구. 약 17.6Km)
월평 포구- 마늘밭(2.46)- 대포 포구(3.1)- 주상절리(컨벤션 센터)- 시에스 호텔(5.82)- 베릿내 오름- 돌고래 쇼장(10)
- 중문 해수욕장- 해병대 길(13.8)- 열린 해안길(15.3)- 대평 포구(17.6)
월평 포구의 푸른 바다를 처음 접하면서 감탄사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아~ 이 시원함!
푸른색 화살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푸른색 화살표가 나오는데 길바닥에도, 남의 집 담벼락에도, 전봇대에도, 때로는 묵직한 돌덩이에도 있다.
나무에는 애교스럽게 푸른색과 노란색 리본으로 묶여 있기도 하고.....
왼 쪽은 해송 사이로 절벽 밑에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오른 쪽은 귤밭이 있는 밭 이랑을 따라 걷고 있다.
발밑에는 이름 모를 예쁜 들 꽃들이~
귤밭에선 하얀 굴꽃의 향기로운 냄새가~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새들이 머리 위를 나르며 지저귀고....
P은 해송 사이로 보이는 푸른 바다가 너무너무 좋다하고.
K은 제주도 시절을 이야기 하고.
J는 들꽃을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고.
나는 들꽃들의 이름을 알아내느라 골몰하며 걷는다.
민들레 한 포기에서 긴 꽃대를 가진 노란꽃이 20송이가 넘는다.
카나리아 야자 군락지에서는 내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집트에서는 이런 나무를 대추야자라 하던데...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우리의 인사에 하던 일을 멈추고 화답해준다.
토양이 매우 기름져서 어떤 작물도 힘들이지 않고 잘 자라 준단다.
제주도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날라온 화산재가 비옥한 토양이 되어 풍요를 가져다 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비닐 하우스 안에는 하얀 백합이 가득 피어 있고.마늘밭도 넓게 펼쳐진다.
솔밭 숲에 앉아 쉴려고 하는데 내가 들고 있던 여행자료가 보이지 않는다. 아뿔싸! 어디에다 흘렸을까?
오던 길을 주위를 살펴가며 걷는다. 아까 만났던 농부가 일하던 곳도 지나 한참을 가도...
힘없이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 처음으로 부부 올레꾼을 만났다.
지나치는 남자의 손에 자료를 들고 있는데...물어 볼까 하다가...아닐꺼야....
배낭이 있는 자리에 앉으려는데 저 밑에 하얀 종이 뭉치가 보인다. 찾았다! 이 귀한 보물을...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한라봉을 파는 가게가 나온다. 우리 저것 좀 사먹자.
고맙게도 비닐 봉투에 한라봉이 2개씩 들어있다. 근데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나?
유리문 아래에 전화번호가 써 있어 전화해 보니 배달중이란다.
어쩌면! 제주도는 도둑이 없어서 대문을 열어 놓고 산다더니, 이렇게 비싼 한라봉을 내방쳐 두고!!
한 봉지에 1000원씩 4봉지, 4000원을 공책 밑에 끼워 넣는다.
저쪽 상자에는 파지(상품가치가 없는)들만 모아 놓은 한라봉이 보인다.
흠집이 있는 한라봉 2개를 덤(?)으로 갖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도 얻었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비싼 한라봉이 여기선 한개에 500원. 상큼한 단맛이 입안 가득하다.
기운을 차리고 다시 힘차게 걷는다.
도중에 혼자 씩씩하게 걸어오는 젊은 올레꾼을 만나 한라봉을 선사하고.
대포 포구를 지나 한적한 바닷가에서는 아예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어 본다.
화산활동이 빚어놓은 주상절리 앞에선 90도 각도의 절벽을 올려다 보며 입이 딱 벌어진다.
자연의 오묘함이란!! (걷다가 보면 제주도의 해안 절벽은 거의 주상절리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에스 호텔 경내로 들어간다.
방갈로 같이 제주 전통가옥으로 꾸며 놓은 객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서 매우 운치 있어 보인다.
사실 전통가옥인 초가집은 거의 폐가로 방치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크던 차에 이렇게 호텔에서 이런 초가집을 보니 매우 반가웠다.
시에스 호텔 아랫쪽 해안가에 있는 해녀의 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해녀들이 운영하는 식당. 올레지기들의 참새 방앗간이라고 올레 사이트에 올려 놓은 집.
해녀들이 직접 잡은 갖가지 해산물을 세트로 맛볼 수 있는 곳, 한 접시에 만원.
게다가 전복죽도 만원이다. 큼직하게 썰어 넣은 전복도 푸짐하고. 시원한 맥주까지 곁들여서....
배불리 싼 값에 맛있게 먹고...감귤 막걸리도 한 병 사들고. 또 걷는다.
돌고래 쇼장 앞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북적대고.
중문해수욕장 전에, K는 다리가 아파서 근처에 있는 숙소로 돌아갔다.
작년에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로 철심을 박아 넣은 상태로 오늘 10Km를 걸었으니 좀 무리였나 보다.
우리 셋은 중문해수욕장 백사장을 맨발로 걷는다. 고운 모래가 발바닥을 부드럽게 만져 준다.
벌써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용감하게 해수욕하는 젊은 여인들을 부러운 듯 쳐다보는데
순간, 하얀 파도가 모래사장에 밀려 들면서 P가 피하려고 뒷걸음질 치다가 모래언덕에 주저앉는 바람에
바닷물을 흠뻑 맞았다.ㅎㅎㅎ...
옷과 배낭까지 온통 바닷물과 모래로 적셔 놓은 터라 더이상 걸을 수 없게 되어 그도 숙소로 돌아가고.
J와 나, 둘이서 나머지 길을 걷는다.
신라호텔 경내에서 하이야트 호텔로 들어가는데 옛날 생각이 난다.
90년대 초에 시동생이 서귀포 법환동에서 사업을 할 때 여름방학에 작은집 애들이랑 두 가족이 김밥을 싸가지고
하이야트 호텔 1층에 있는 풀장에서 놀았다.
애들은 물에서 수영하며 놀다가 틈틈히 물 밖으로 나와서 김밥이랑 과일을 먹고 또 물에서 놀고....
우린 그저 애들 노는걸 지켜보며 신났었다.
근데 몇 년이 흘러 해외여행을 하며 호텔을 이용하다 보니 호텔내에 있는 풀장은 투숙객들이 몸푸는 곳이라는걸 알게 되고
퍼뜩 이 광경을 떠올리고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우리 애들이 음식을 먹고 양치질도 안하고 물에 들어가 놀았으니 물을 얼마나 오염시켰을까?
존모살 해안(작은모래 해안)길은 한쪽 절벽은 주상절리가 장관을 이루고 해식동굴을 거치니 해병대 길이 나온다.
해병대 장병들이 둥글납작한 돌들을 옮겨와 길을 내었다나. 그 정성에 그저 고맙기만....
돌 틈 사이에 연분홍 갯메꽃이 피어서 매우 아름답다.
둘이서 걸으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긴 해안 길을 따라 논짓물을 지나고, 코지(해안에 검은 바위들이 길게 뻗어 나온 지형)를 지나는데
해가 뉘엿뉘엿 넘어 가려고 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끝점인 대평 포구 인근 마을로 들어섰다.
마늘밭에서 뿜어대는 분수에 물세례를 맞으며 걷는데 개들이 짖어댄다.
콜택시에 전화하니, 신통하게도 마을 구석까지 달려와 우리를 실어 간다.
녹초가 되어 숙소에 들어가니, 먼저 들어간 두 분이 저녁을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식탁엔 각자 가져온 밑반찬으로 진수성찬.
총각김치, 열무김치,고추와 마늘 장아찌, 멸치볶음,오징어볶음, 김, 무말랭이 무침.
저녁식사후 P를 제외한 3명은 다시 택시를 타고 서귀포로 나간다.
이마트에서 몇 가지 식료품을 사고, 바로 뒤에 있는 월드컵경기장에 있는 사우나장에서 따뜻한 물에 들어가 피로를 푼다.
2009년 5월 7일 목요일 (제 2일)
잠자리가 낯설어 깊게 잠들지 못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모두들 나름대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K는 어제 무리를 해서인지 벌써 한 쪽 발에 물집이 잡혀 밴드로 동여 매고.
아침밥을 지어서 든든하게 먹고 길을 나선다. 8시 반.
오늘은 7코스를 거꾸로 걷기로 했다. 숙소에서 가까운 월평 포구에서 시작한다.
올레 7코스를 거꾸로 걷기 (월평 포구~외돌개.약 15.1Km)
월평 포구- 강정 포구- 악근내 봉댕이소 징검다리- 서건도- 서건도표지판- 범섬 바닷가길
- 법환 포구- 속골,스모루 소공원- 돔베낭길- 외돌개
택시로 월평 포구로 이동 .거꾸로 이동은 노란색 화살표로 되어 있다.
포구에서 커피를 마시고 걷기 시작.
바다 가까이에 넓은 저택들이 많아 기웃기웃 구경을 한다.
집안은 잘 가꾸어진 정원과 키 큰 야자수. 그리고 그 속에 예쁜집. 한결같이 충실한 개가 우리를 보고 으르렁 댄다.
알강정에서는 갈대밭에 작년의 갈대와 새로난 푸른대가 어울어져 바람에 넘실댄다.
오늘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땡볕인데도 시원하다. 근데 모자를 날려 보낼까 손으로 눌러가며 걷는다.
강정 포구에서 범섬이 가까이 다가온다. 계곡이 깊고 웅장하다.
마을사람들의 놀이터였다며 K는 이 근처에 살았던 기억을 더듬는다.
강정 초등학교 옆을 지날 무렵 P가 교정에 들어가 보잔다.
천연 잔디로 덮인 운동장과 나즈막한 교실건물, 아름드리 잣밤나무꽃이 만개하고, 작은 마아가렛이 화단에 가득 피어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애들은 얼마나 풍부한 감성을 갖고 자랄까?
풍림 리조트 경내에 들어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쉰다. 이곳은 올레꾼들이 숙소로 많이 이용한다.
7코스 과정에 들어가 있고,올레꾼들을 위한 서비스도 각별하다고 알려져 있다.
리조트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노란색 화살표가 두 갈래로 나온다.
악근천 계곡물이 불어서 도저히 다리를 건널 수 없는데 J는 용감하게 태우(뗏목배)를 이용하여 건너갔다.
할수없이 J는 바다 산책길로 가기로 하고 우리 셋은 악근천 산책로로 가기로 한다.
마을을 지나가는데 혼자 바닷길을 가고 있는 J가 걱정된다.
어느 만큼에서 J와 상봉. 아무도 없는 바닷길이 무섭고 노란색 화살표가 보이지 않아 두렵더란다.
어제는 올레꾼을 한 두팀 만났는데, 오늘은 거꾸로 걸어가니 마주 오는 올레꾼들을 많이 만나 서로 인사하며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는건 좋은데 노란색 화살표가 드문드문 있어서 길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비닐 하우스 안에 색색의 거베라꽃이 가득 피어있는 동네에는 한라봉을 파는 가게가 있다.
가게 옆에는 올레꾼들을 위한 쉼터도 마련되어 있고. 동네 사람들도 매우 친절하다.
길을 물으면 상세하게 가르쳐 주고 시골 구석구석을 찾아주는 올레꾼들에게 고마워 한다.
올레꾼들이 오고 가면서 시골 구멍가게에 매상을 올려주기도 하니까.
택시 운전기사도 올레코스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고 자부심도 대단하며 제주 방언에 대한 설명도 잘해준다.
사실 제주도에 오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자동차를 렌트해서 다니기 때문에 택시는 별로 혜택이 없다가 올레꾼들이 몰려오면서
택시를 많이 이용하게 되니 두루두루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밖에.
해안길을 걷다가 들르게 된 해녀의 집에서 막 건져 올린 미역을 다듬는 해녀들이 미역줄기 끝에 있는 쭈글쭈글한 미역귀를
건네준다. 짭잘하고 비릿한 맛.
드디어 법환 포구.
지금은 뉴질랜드에 가서 살고 있는 작은집이 한 때 기거했던 곳.
범섬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 범섬과 법환동을 배경으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댄다.
90년대초의 동네모습은 오간데 없이 변하였지만, 범섬 만큼은 그대로이니 이 사진을 작은집에 보내주면 잠시 옛추억에 잠겨
삶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을까?
포구에서 K의 아는 분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이곳에서 살 때 아랫집에 사시던 분으로 지금도 형님아우 하면서 가깝게 지내신다고 한다.
그분은 한라봉 한상자와 롤빵을 3개나 가지고 나오셨다.
더불어 우리의 배낭이 빵빵해진다. K는 그들과 자동차로 가시고 남은 우리들은 또 걷는다.
포구 근처의 식당에 들어갔다. "포구 식당" 손님들이 먹는 음식을 살펴보니 모두 똑같다.
자리 물회. 요즘은 자리가 많이 잡히는가 보다. 자리를 뼈채 송송 썰어서 오이와 다른 채소랑 새콤달콤하게 무치고
시원한 얼음물을 넣어 밥과 함께 먹으면 피로가 싹 가신다.
진짜 맛있다. 그래서 올레사이트에 이 식당을 올려 놓았구먼.
포만감을 만끽하며 천천히 걸어 속골 유원지를 지나간다.
키 큰 야자수가 빽빽하게 서있고 경관도 매우 수려하다.
서귀포 여고 후문으로 들어가 교정을 구경한다. 학교들이 하나같이 아담하고 예쁘다.
근처에는 예쁜 펜션들이 즐비하고 민박형 콘도도 있네.
돔베낭길 산책로로 들어선다.
오른쪽은 우람한 해송사이로 절벽밑에 푸른 바다가 있고, 산책로는 철도목을 깔아놓아 걷기도 매우 상쾌하다.
산책로 옆 버려진 밭에서 동네 주민들이 소쿠리에 산딸기를 가득 따가지고 나온다.
이거 팔아요?
그냥 저기 가서 따세요.
우리도 흩어져서 가시에 찔려가며 잘 익은 딸기를 따먹는다. 매우 달다.
일산에서는 산딸기가 아직 꽃도 안피었는데 여기는 언제 꽃피우고 열매를 맺어 벌써 익었다나.
(여행후 올레사이트에 들어가 이 식물을 찾아보니 장딸기라고 한다. 꽃은 흰색. 산딸기꽃은 빨간색)
P는 그만 가자고 재촉인데 J와 나는 딸기 따먹느라고 여념이 없다.
솔빛바다 찻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K에게 줄 딸기를 한소큼 따가지고 나오니 J도 한 주먹 따와서 합쳤다.
걸어가면서 좀 더 돋보이게 할려고 P가 길가에서 넓은 잎을 몇장 따와서 파란잎에 윤기나는 빨간 딸기를 올려 놓으니
정말 먹음직해 보인다. 관광객들이 지나가며 우리의 작품(?)을 들여다보고는 예쁘단다.
자연 경관이 수려한 긴 산책로를 걸어가다가 J가 돌뿌리에 걸려 몸이 기우뚱하며 들고 있던 작품을 놓쳐버렸다.
에그그~ 딸기는 바닥에 흩어지고...ㅎㅎㅎ...그래도 딸기를 주워서 잎에 쌌다.
못먹더라도 K에게 보여주자고....
산책로 끝에는 관광객들로 와글와글.
대장금 촬영지라고 중국 일본에서 온 여성들로 대장금의 주인공인 이영애 얼굴사진에 자신의 얼굴을 넣어 사진을 박느라
정작 건너편 바다에 있는 외돌개는 안중에도 없다.
시끌벅적한 장소를 벗어나 솔숲으로 들어가니 조용한 찻집이 나온다.
그 이름도 우아한 "솔빛 바다 찻집"
4월초에 올레를 다녀온 친구가 적극 추천했던 곳.
K와 상봉. 아까 만났던 그 분과 여지껏 이야기하고 지금 막 헤어졌단다.
7~80년대의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찻집 주인이 강력히 추천해준 봉자쥬스(한라봉+유자를 갈아만든것)
마시기에 아까울 정도로 노란빛이 정말 예쁘다.
가져온 딸기랑 한라봉, 붕어빵, 봉자쥬스를 탁자위에 코디하여 사진을 찍는다.
이곳 찻집은 7코스의 시작점,우리는 끝점이다.
주변을 산책하며 K의 고단했던 제주도 시절의 옛이야기를 듣는다.
아까 그 분도 고단한 삶을 털어 놓고 간터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K의 삶의 질곡이 펼쳐진다.
어려운 시절도 겪었지만 K의 인품은 언제나 푸근하고 부드럽고 따뜻하다.
택시를 타고 서귀포 시내로 나간다.
K가 큰 형님댁을 방문하는동안 우리는 그의 가족이 옛날에 살았던 귤농장에 새로 지은 팬션을 구경한다.
팬션 주인이 나와서 음료수도 주면서 이것저것 이야기 해준다.
시내로 나와서 소박한 목욕탕에 들어가 피로를 풀고 유명하다는 진주식당에서 전복 뚝배기를 먹는데 전에 먹어본
오븐작뚝배기 보다 맛이 덜 한것 같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버스기사가 올레길이 만들어지고 나서 관광객들이 늘어 제주가 매우 활성화 되었다고
좋아하신다.
2009년 5월 8일 금요일 (제 3일)
어제 커피 석 잔이 간밤을 또 설치게 했다.
그래도 아침에 배설은 꼬박꼬박 제 때에 하고 있으니 다행.
8시 기상. 아침 쌀을 씻어 불려 놓는다.
첫날 내가 집에서 가져온 잡곡쌀이 압력밥솥이 아니어서 설익었는데도 군말없이 먹어준 일행들에 감사.
온돌방에 이불을 깔아 놓으니 아침 잠자리에서 스트레칭 하는데 참 좋다.
아침식사에 이마트에서 사온 종갓집 배추김치가 입맛을 당긴다.
9시 반 출발. 오늘은 6코스를 제대로 걷기로 했다.
각자 배낭에 어제 선물로 받은 한라봉 2개와 물 한 병,롤빵을 나누어 담고.
리무진 버스로는 여러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아예 콜택시로 쇠소깍까지 간다.
제주 올레 6코스 (쇠소깍~외돌개, 약 15Km)
쇠소깍- 보목 포구- 구두미 포구- 검은여 입구- 소라의 성- 이중섭 미술관- 천지연폭포 생태공원
- 남성리 삼거리- 외돌개
출발점인 쇠소깍(한라산 계곡물이 흘러 바다로 나오는 어귀에 있는 소(沼)가 쇠뿔모양이라고 붙인 이름)
뗏목배인 태우(제주 방언)를 타고 소소깍을 돌아본다.
굵은 대나무로 엮어 만든 배인데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는 밧줄을 잡아 당겨서 이동한다.
15명 승선. 沼 둘레를 돌아오는데 40분 소요. 1인당 5000원.
태우는 천천히 이동하며 태우 기사가 어눌한 듯한 음성으로 설명을 해준다.
이 마을 젊은이들이 모여 관광상품 개발에 머리를 짜낸 결과 태우를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기사의 자격은 팔힘이 세고 머리가 아둔한(?) 사람을 뽑는데 자신이 뽑혔단다.
4년째 태우 기사로 일하고 있는데 이 동네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벌고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단다.
(마을공동기금으로 사용됨)
우직하고 투박한 말씨로 조용조용 이야기 하는데 듬직하고 유머가 넘친다.
태우에서 내려 해변을 걷는데 이곳 모래는 검은색이다.여기서는 모래찜질도 한다며 누가 귀뜀해준다.
일본 이브스키가 생각난다.
규슈의 남단에 있는 조그만한 마을인데 천연 모래찜질로 유명한 곳이다.
2002년 겨울에 우리부부와 딸하고 셋이 규슈를 6박 7일 배낭여행 갔을 때다.
규슈 전체를 돌고 후쿠오카로 돌아가는 기차시간이 2시간 남은 틈을 타서 택시를 타고 달려간 곳.
검은 모래사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 왔었다.
발 밑이 따뜻하게 전해오고. 저쪽에서 아저씨가 손짓한다. 빨리 오라고.
맨 몸에 유가타(긴잠옷가운)를 걸치고 하얀 수건 하나를 가지고 가니 아저씨가 삽으로 구덩이를 재빠르게 파더니 누우란다.
머리를 수건으로 싸매고 누우니 내 몸 위에 뜨거운 모래를 덮어준다. 머리만 내놓고.
처음엔 따뜻하여 몸이 풀리는가 했더니 10분도 안되어 아래 위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데워 죽을것만 같았다.
딸은 꼼짝도 안하고 꿋꿋하게 참고 견딘다. 독한 것....
혼자 상념에 잠겨 모래사장을 걷는다.
소금막을 지나고 돈나무 군락지를 지나가는데 길옆에 천남성이라는 식물이 굉장히 크게 자라고 있어서 놀라웠다.
천남성은 4월 중순경에 서산 부석사 뒷산에서 보았던 기이하게 생긴 식물이라서 집에 와서 식물도감을 찾아 이름을 알았었다.
줄기 중앙에 꽃이 피는데 푸른색 뚜껑이 꽃을 덮고 있어서 들여다 봐야만 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자라는 천남성은 줄기가 매우 굵고 키가 1m가 넘는다.
땡볕을 걷다가 어진이네 식당을 만났다. 좀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곳이 맛있는 식당으로 올레사이트에 올려져 있고 노무현 대통령도 다녀갔다나.
식당 안에는 마을주민으로 꽉 차있다. 오늘이 어버이날이라고 가슴에 꽃을 달고서.
오늘 여기서 잔치를 하느냐고 물어보니 늘 이렇게 부적댄단다.
모두들 우리를 쳐다 본다. 주로 동네 주민들이 이용하는 식당에 외지 손님이 오니까 신기한가 보다.
한치 물회와 자리 물회를 주문했다.새콤 달콤한 맛이 어제 그 집보다 맛이 더 진하고 고소하다.(7천원~8천원)
야~ 이런 집이 일산에도 있다면 단골이 될 것 같은데....
제지기 오름 바로 아래에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 별장을 지나간다.
꽤 넓은 집인데 주인이 돌아가서 일까? 매각한다는 광고가 붙어 있다.
제지기 오름에 오른다.
오름은 화산활동시 화산이 폭발 직전에 멈춘, 지표면이 최대로 부풀어 오른 산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한다.
그래서 오름들은 대체로 밥 주발을 엎어 놓은 듯 동그랗다.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어 걷기 편하고 나무들과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들여다 보며 흥미롭게 오른다.
정상에는 체력 단련 기구가 있는 걸로 봐서 동네 주민들이 많이 올라오는가 보다.
보목 포구가 있는 동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참 예쁘다. 새소리도 예쁘고....
내려가는 길.딸기를 따먹느라 J와 나는 일행과 뒤쳐진다.
구두미 포구 앞 쪽에 섶섬이 지척에 있는데 매우 안정감있게 잘 생긴 섬이다.
마을을 지나가며 만난 무화과 열매는 줄기에 딱 붙어 있는게 참 신기하다.
바람도 잔잔하고 땡볕을 걷다 보니 기진맥진.
KAL호텔 잔디밭에 누워버렸다.신발이랑 양말도 벗고.
네 여자가 누워서 하늘을 본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둥실 떠가고...스피커에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옆에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은 폐업중.
소정방 폭포 옆에 있는 소라의 성.
K에겐 역사적인 곳. 이 곳에서 결혼식을 했단다.
지금은 문이 닫혔지만 70년대 중반엔 이곳이 제주에서 꽤 유명한 레스토랑이었겠다. 절벽위에 하얀집.
여기서 K는 하차 하겠단다. 혼자서 옛생각을 즐기려나 보다.
셋이서 걸어 서귀포 시내로 들어간다.
이중섭 미술관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6시에 문을 닫는단다.
미술관 아래에 있는 생가. 초가집 한 켠에 있는 조그마한 방 한 칸과 부엌.
어른 하나 누울 만한 공간에 어떻게 부인과 네 아이들이 함께 살았을까?
나중에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갔다는데 지금도 생존해 있을까?
이중섭의 그림이 지금은 어마어마한 값인데 가족들이 생존해 있다면 부자가 되었을텐데....
천지연 폭포 생태공원을 걷는다.
아래에서 폭포소리는 들리는데 울창한 나무에 가려서 폭포는 볼 수가 없다.
공원 끝에 있는 남성리 삼거리에서 오늘 일정을 접기로 했다.
진주식당 앞에서 K와 합류하여 서귀포 재래시장으로 간다.
살아있는 전복이랑 말린 백조기, 여기에 덤으로 얻은 돌병어를 사들고 리무진 버스를 타는데 운전기사가 반색을 한다.
어제 그 기사분. 덕분에 숙소 가까이에 내려 주었다.
전복을 채썰어서 밥을 짓고(전복밥) 꾸들꾸들 말린 백조기와 돌병어는 기름에 튀긴다.
오, 고소한 이 맛! 맥주까지 곁드려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그어 피로를 푼다.(한국 콘도는 사우나장이 없어 아쉽다)
P가 아까부터 저녁 먹고 롯데호텔에 가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마지막 밤을 즐기자고 했지만 너무 늦었고, 차려입고 나가는게
귀찮아서 그만 두었다.
한국 콘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2009년 5월 9일 토요일 (제 4일)
마지막 날.
J가 김치를 모두 꺼내어 참치 통조림으로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통조림에 있는 기름으로 한참을 달달 볶으니까 깊은 맛이 우러나와 아주 맛있다.
오늘 저녁 비행기로 떠나기 때문에 가방을 꾸려서 카운터에 맡기고 길을 나선다.
오늘 코스는 원래 5코스를 걷고 나서 3코스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를 들러 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숙소에서 5코스 시작점까지 가는 거리가 멀고 또 갤러리에 가기 위해서 왔던 길을 다시 가야하는 불편함과
또 다시 숙소에 와서 가방을 가지고 공항으로 가는게 시간 낭비와 교통비등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이다.
그래서 숙소에서 그런대로 가까운 10코스를 걷기로 했다.
제주 올레 10코스 (화순~하모해수욕장. 14Km)
화순선주협회 사무실- 화순 해수욕장- 항만대 해안- 산방연대- 하멜 상선 전시관- 사계 포구- 사계 화석 발견지
-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 송악산- 말 방목장- 상모 해녀의집- 모슬포 해안길- 알뜨르비행장 해안도로- 하모 해수욕장
택시로 10코스 시작점인 화순 해수욕장에 내린다.
백사장을 걷다가 해안도로로 이어지는 부분에 양귀비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이건 마약 성분이 있어서 금지된 식물인데 어떻게 야생으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여행후 올레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개양귀비꽃이라고 하는데 마약성분이 없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농작물로 재배되며, 씨는 빵에 넣어 먹거나 기름을 짜서 먹고, 줄기는 야채로 먹고,
꽃잎은 시럽이나 술로 담가 먹는단다.
모래로 덮여 있는 사구 언덕을 걷는데 굉음과 함께 젊은이들이 ATV오토바이를 타고 줄지어 달려온다.
J가 작년에 가족과 함께 여기에 와서 저걸 탔었다고 신나게 이야기 한다.
우리 딸도 제주 학회에 왔다가 저걸 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산방산이 아주 지척에 나타난다.
산 모양으로 봐서는 오름의 형태인데 왜 산이라고 부를까?
너무 급경사여서 등산하기에는 매우 어렵겠다.
산방산 앞 해안도로를 지나 용머리 해안으로 간다. 멀리서 보니 정말 용의 머리 모양이다.
어쩌면 누에 머리 모양 같기도 하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전북 변산반도에 있는 채석강과 비슷한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바다 밑에 있던 퇴적층이 융기하여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서 책을 켜켜히 포개놓은 듯 진귀한 자연현상 앞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제주섬이 거의 대부분 화산암인데 한 귀퉁이에 퇴적암이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하긴 전에 제주에 왔을 때 석회동굴에 들어가기도 했었으니 암튼 제주는 흥미진진한 섬이다.
한 바퀴를 돌아 하멜 상선 전시관으로 들어 가려는데 뒤에서 P가 부른다.
어느새 삶은 문어를 사가지고 와서 함께 그늘에 앉아 맛있게 먹었다.
큰 배 모양으로 지어진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1600년대 네델란드 상선이 일본 나가사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도착한 곳이 바로 이근처.
60여명중 36명만 살아남아 제주 땅에 도착하여 6년 동안 억류 되었다가 도망쳐서 나가사끼로 갔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써서 발표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중 10여명은 아예 조선여자와 결혼하여 조선 땅에 뿌리를 박았단다.
그러고 보니 한국인중 서양인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들을 가끔 보는데 이들의 후손들이 아닐까?
근데 J는 나보고 피부가 유난히 흰 것으로 보아 그쪽 계열이 아니냐고 놀린다.
게다가 내 고향 당진은 항구였기 때문에 그럴만한 확률이 높대나. ???...
사계 포구에서 점심대용으로 가져온 롤빵과 한라봉으로 간단히 먹고, K는 여기에서 스케치하며 쉬겠단다.
셋이서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데 올레꾼 남성 2명을 만났다. 같은 방향이라서 P가 그들과 합류한다.
걸음이 빠른 두 남성사이에 P가 보조를 맞추어 가는데 금방 저만치 앞서 간다.
1시간여를 그들과 가면서도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어쩜 저럴수가.....
게다가 우리는 화석 발견지에서 살펴보느라 시간이 지체되다 보니 아예 그들이 보이지도 않는다.
앞바다에 형제바위 섬이 가까이 보인다.
한참만에 다시 P와 합류하여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 앞을 지나가는데 관광객들로 와글와글.
송악산으로 올라가는 길. 나무 한 그루 없는 땡볕.
방목하는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시야가 점점 넓어진다.
가파도가 바로 지척에 있고 마라도가 가까이 보인다.
마라도행 유람선이 괸광객을 가득 싣고 물살을 가른다.
정상으로 오를수록 바람이 세게 불어서 아예 모자를 벗었다.
평소에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나무와 풀들이 바닥에 좌 엎드려 있는 듯 땅에 붙어있다.
드디어 정상.
이럴수가! 분화구였다.
분화구가 깊어서 내려다 보려면 오금이 저려온다.
분화구 안에는 풀밭.
분화구 가장자리는 검붉은색의 흙과 돌이 장관이다.
분화구 둘레를 돌며 내려다 보는 경치도 대단하고 그저 감탄사 연발. 10코스의 하이라이트!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돌과 흙이 많아 미끄럽다.(필히 등산화 신을 것)
조심조심 내려 가는데 아까 만났던 두 남성이 이 쪽으로 걸어 오고 있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코스가 있단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간다.
그러고 보니 납작 엎드린 나무에 매달린 리본이 바람에 잘려나가 자세히 봐야만 알 수 있겠다.
내려가는 코스는 더욱 미끄럽다. 두 남자는 벌써 저만큼 가고 있어 길을 잃을까봐 열심히 따라간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화살표 표시가 눈에 띄지않아 길을 잃기 쉽상이다.
저 남자들은 회사가 이곳에 있어서 벌써 두 번째 이 코스를 걷는 거란다.
조심조심 내려가서 솔숲을 지나 말 방목장이 나온다.
키 큰 민들레가 푸른 풀밭에 가득 피어 알프스 산기슭을 연상시킨다.
방목장 나무 울타리에 올레꾼들이 나갈 수 있도록 나무 하나를 내려놓아 개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재미도 있다.
앞에 간 남자들은 찻길을 따라 가는데 우리는 화살표를 따라 밭 이랑을 지나 해안도로로 나간다.
비어있는 찻집 앞에 젊은이가 혼자 앉아 있다. 자전거 여행중이란다.
불현듯 전에 우리 애들이 자전거와 스쿠터를 타고 제주여행한 것이 생각나서 가다가 되돌아와서 한라봉 한 개를 건네 주었다.
알뜨르 비행장은 풀밭이다.
알뜨르는 '아래 넓은 들' 이라는 제주어. 일제 때 대륙침략을 위해 비행장을 건설.
지금은 일제의 잔혹상을 보여주는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
땡볕에 지루한 해안도로를 걷고 있는데 모두 말이 없다. 다들 지쳐가고 있다.
아까 두 남성이 왜 해안도로를 버리고 찻길을 따라 걸어 갔는지 알 것 같다.
이미 K는 하모 해수욕장에 있는 항구식당에 와있다고 아까 전화가 왔었는데....
아무래도 자료에 나와 있는 이 해안도로가 거리 계산이 잘못된 것 같다.
기진맥진 할 즈음 콜택시를 불러 식당으로 간다.
3시 반. 늦은 점심을 먹는다.
아침에 택시기사가 소개해준 식당인데 생선회 덮밥과 자리 물회. 맛은 별로. 자리구이를 더 시켜 먹는다.
자리라는 생선은 손바닥만한데 뼈 채 다 먹는다.
K가 스케치한 화첩을 보여주는데 참 부럽다. 사진보다 스케치한 그림이 훨씬 강한 인상을 준다.
나도 배워서 여행할 때 재빠르게 슥슥 그려보고 싶다. 그냥 마음가는대로 그려 보란다. 정말?...될까?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서 가방을 가지고 나와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바깥 경치를 볼 새도 없이 잠에 빠진다. 머리가 떨어지도록.....
제주 공항. 우선 트렁크 가방부터 부치고.
친구가 제주가면 꼭 주문해 보라고 하던 쑥빵을 신청하여 7시에 3번 게이트에서 받았다.
60개들이 한 상자에 2만원.
남은 회비로 쑥빵 한 상자씩. 그리고 어제 먹었던 생선가게에 전화하여 백조기와 돌병어를 주문.
이건 택배로 보내 주기로 하고. 쑥빵은 택배가 안된다 하여 공항에서 받기로 한 것이다.
쑥빵 모두 4상자. 이것도 부치고.(후에 먹어보니 쑥향기와 통팥이 훌륭함. 제주 가시는 분은 꼭 주문 바람 010-3230-7997)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북적북적.
게다가 가수 '비'가 왔다고 이리저리 몰려 다니느라 아수라장이다.
이번 여행에 수고해준 J와 그 남편에게 줄 선물도 샀다. 감귤 초코렛.
수속을 마치고 면세구역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면세품 구경을 한다. 거의 화장품과 가방들.
9시 출발. 김포공항에 내려 짐찾고. 집에 오니 11시 반.
글을 쓰고 나서:
늘 그렇듯 여행이 끝나고 나면 여행의 잔상이 머리속을 꽉채워서 다른 일을 진행할 수가 없다.
여행기를 쓰면서 내 머리속을 완전히 비워 나갔다.
그래도 못다한 말이 있다.
4일간 올레 코스를 걸으면서 매일 바다를 향하여 외쳤다. "서명숙씨! 고맙습니다."
제주 구석구석 길을 연결하여 우리를 불러들여 제주의 속살을 보여주며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안을 받게해 준 곳이기에.
삶에 지친 주위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혼자 다녀도 괜찮은 곳.
인터넷에서 자료를 뽑아 들고 숙소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는게 좋다.
미리 다녀온 사람들이 어느 코스가 좋다고 하는걸 믿지 말라.
주관적이기 때문. 거의 자신이 다닌 첫 코스를 최고로 친다.
걷기 편한 신발.(송악산엔 등산화 필수)
작은 배낭에 물과 간식이 필요.(걷는 길이 거의 해안길이기 때문에 가게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챙넓은 모자와 선크림. 비바람을 대비 할 수 있는 긴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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