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프랑스에서 여름나기 (2017년 7월12일 ~ 2017년 9월2일) 제 16일

럭비공2 2017. 9. 22. 23:23

2017년 7월 27일 목요일

아침에도 잔뜩 흐린 날씨에 가랑비가 오락가락.

은우는 오늘 여름학교에서 야외수업을 가게 되어 9시까지 등교.

며느리가 은우를 데리고 부리나케 나가고, 난 아들하고 자동차로 지우를 등원시킨다.

아침 이시간에 역에서 내려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길을 메우고 있다.

비가 오락가락하니 방수점퍼(후드 있는) 입은 사람이 많다.

나는 이번주 내내 외출시 우비를 입고 간다.

 

아침 식사. 빵과 시리얼.과일,커피. 살구가 참 달다. 우리것보다 크고 모시조개처럼 생겼다.

아들은 집에서 쉬다가 오후에 출근하기로 하고 우리 셋은 외출준비를 한다.

오늘은 파리 마레지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과 바스티유 근처에 있는 아르스날 항구를 가보기로 했다.

다음주부터 애들이 방학하기 때문에 며느리가 이번주까지는 시내 나들이가 가능하다고 하여

함께 나섰다.

내가 가보기로 했던 3군데를 오늘 목표달성(?) 하게 된다.

생마르탱 운하, 그랑드 아르슈, 피카소 미술관이 목표였다.

 

샤틀레역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생폴역 하차.

며느리가 구글지도 길찾기로 피카소 미술관을 찾아간다.

고틱한 건물들이 많고 마레지구에는 관광객들이 꽤 많다.

피카소 미술관. 입장료 12.50유로. 꽤 많이 올랐다.

피카소의 첫째부인 올가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특별전을 열게 된 동기를 불어와 영어로 쓰여 있어 며느리가 해석을 해준다.

러시아의 발레리나 올가를 만나 결혼, 아들 Paul을 낳았다.

올가 사후(1955년)에 아들인 폴이 우연히 발견한 트렁크에서 피카소와의 가족사진과 작품들이 나와

특별전을 하게 되었단다.

피카소는 그 후 올가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재혼, 생전에 부인은 3명, 그러나 여성편력이 꽤 많았다.

아마도, 올가는 피카소와의 결혼생활을 모두 정리하여 트렁크에 넣어 두었던 듯 하다.

암튼, 1930년을 기점으로 그림이 바뀐다. 올가를 놔두고 바람 피우던 시기였다.

피카소의 특유한 화풍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던것 같다.

 

                                    첫째 부인 올가.

 

                              올가. 사이가 좋았을 때는 올가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 많다.

 

                                      아들 Paul.

 

                                   아들 Paul.

 

 

 

      피카소 그림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편안하고 여유있어 행복해 보인다.

 

 

여기 미술관은 사진을 찍어도 무방하여 셔터를 누르는데 유독 내 스마트폰에서만 찰칵 소리가 난다.

소리나지 않는 기능이 있나 살펴 보아도 없다.

며느리에게 물어보니 해외에서 구입하는 스마트폰은 소리 안나는 기능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몰카를

방지하기 위해 소리 안나는 기능이 없어 셔터소리가 난단다.

 

 

 

 

          이 그림은 피카소가 콜랙션한 그림같다. 피카소는 생전에 다른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모았다.

 

 

            불어로 쓰여 있어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화가가 20대의 젊은 피카소를 그린 것 같다.

 

3층까지 다 보았는데 한국전쟁 작품이 없다.

며느리가 인터넷에 누가 작년에 여기를 다녀가며 올려준 작품들이 이번에는 거의 없단다.

아마 '올가 특별전'을 하느라 전시했던 작품들을 치워 놓은걸까?

아니면 해마다 작품을 번갈아 전시하는 건지...

피카소 사후에 유족들이 엄청난 상속세를 낼 수가 없어 대물변제(세금을 미술품으로 대신 내는 제도)

하여 피카소 작품 일부를 프랑스 국가에 기증하였다.

그리하여 옛 귀족의 저택을 박물관으로 꾸며 피카소 작품을 전시하게 된것이다.(1985년 개관)

관광객들의 입장료만 받아도 꽤 본전을 뽑고도 남을것 같다.

정원은 수리중. shop에서 은우에게 줄 그림 그리기 책을 샀다. 14.90유로.

 

        밖으로 나와서 보니 건물이 꽤 고틱하다.

        17세기 후반에 지은 바로크식 저택은 원래 주인은 살레였다.

        10년간 내부를 개조하여 피카소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술관 문옆에 붙어 있는 표지판. 살레 저택의 설명이 쓰여있다.

                소금에 부가되는 세금을 걷는 관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름대신에 살레(소금)라 불렀단다.

 

             피카소미술관 정문.

 

 

 

 

 

                마레지구의 관광객들. 우리는 유대인 식당을 찾아간다.

 

 

     와~ 여기서 점심을 먹을건데 많은 인파가 이 식당 앞에 줄을 지어 서있다.

     긴 줄은 식당으로 들어가는 줄. 약간 짧은 줄은 take out 하는 줄이다.

     우리는 이 짧은 줄에 섰다. 종업원 여러명이 나와서 미리 주문을 받아 계산을 하면 쪽지를 건네준다.

     이스라엘 케밥 3개를 주문했다.    

                    케밥속에 넣을 재료들이 써있는 메뉴표. 이걸 보고 선택한다.

                    우린 세번째인 치킨스테이크를 주문.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고기를 준비해야 하니까 10분을 기다리란다.

        야채만 주문한 사람은 금방금방 받아 가지고 간다.

 

    주머니 모양의 두툼한 난에 각종 야채와 소스가 뿌려진 조각난 닭고기 스테이크가 듬뿍 들어 있다.

    (9유로 * 3명 * 캔음료 = 35유로)  음료수랑 받아서 골목길을 걷다가 한 건물 안쪽에 정원이 보여

   그 곳으로 들어갔다.

   앞서 샀던 사람들이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도 마로니에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매우 푸짐하고 맛있다. 값도 저렴하고...

 

 

 

           무화과 나무가 탐스럽다.

 

        이 정원주변은 옛 귀족들의 저택인 듯. 개인 정원이었을텐데 지금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배불리 먹고 정원을 나왔다.

 

             고풍스러운 생폴 생루이 교회를 지나간다.

 

                       바스티유 광장에 있는 7월혁명탑. 

                       이곳 저곳 수리하는라 가림막을 쳐놓아 사진찍기가 힘들다.

 

        바스티유 오페라 옆으로 생마르탱 운하가 센강과 만나는 교차점인 아르스날 항구.

        건너편에 있는 납작한 배 한 척은 운하를 오가는 유람선이다.

    

        그 유람선이 출발하여 저기 보이는 터널을 길게 지나가면 지난 주에 갔었던 생마르탱 운하로

        나아간다. 땅위의 건너편 건물은 바스티유 오페라 건물이다.

 

         터널위에 다리같이 보이는 곳이 바스티유 전철역이다.

 

       운하에 정박해 있는 배들은 선상주택이다.

       배를 가정집처럼 꾸며 살며 떠나고 싶을 때마다 부담없이 여행다닐수 있어 좋겠다.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추느라 오래 있지 못하고 곧 바로 바스티유역에서 전철을 탔다.

샤틀레역에서 RER B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4시쯤 집에 들어와 따끈한 카모마일차를 마시며 휴식.

5시 되기전 며느리와 남편이 애들 데릴러 나가고 난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부쳤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문여는 소리에 일어났다.

지우만 왔다. 은우는 아직 도착을 안해서 6시 10분쯤 오란다.

지우는 집에 와서 신나게 논다.

 

다시 6시 넘어 은우 도착.

버스타고 수족관에 가서 여러 물고기를 보는데 배가 너무 아팠단다.

아파서 쭈그리고 앉기도 했다고. 화장실에 가서 대변을 많이 보고 괜찮아졌단다.

이런 얘기를 하는걸 보면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수족관에 가서 있었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은우엄마에 의하면 아까 데릴러 갔을 때 은우가 작별인사 하는 마농의 엄마에게 할 얘기가 있다며

마농때문에 버스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당돌하게 이야기 하더란다.

마농엄마가 미안하다고 은우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더라나..

평소에도 마농은 너무 장난꾸러기라고 말하더니.

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걸 보니 은우가 프랑스애가 다 되었나 보다. 

어제 동생에게서 들은 아들의 친구 중국아이가 생각난다.

 

남불에 휴가 가 있는 동생집에 아들 친구를 초대하여 1주일을 같이 지냈단다.

중국아이는 예의바르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제 침구랑 옷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부엌에 들어와

무슨 음식을 만드는지, 도와 드릴것은 없는지 물어온단다.

1주일간 꽤 정이 들어 헤어질 때 찡했단다.

아들에게 그 친구가 내년에도 여기 오겠다면 초대하라 했더니 그 친구는 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지않아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몰라 친구들간에 그다지 인기가 없단다.

동양인의 보편적인 정서인데 유럽인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

은우의 솔직한 표현이 유럽인의 정서를 닮아가고 있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