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9일 월요일
아침 식사후 동네를 가볍게 산책.
토종닭을 키우고 닭울음 소리도 들리고, 소박한 동네다.
이런 동네에 호텔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고대 올림피아의 상징.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따가운 햇살에 이골이 날 즈음에 내려주는 반가운 비다.
8시 출발.
걸어서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피아 유적지에 간다.
남편이 굉장히 기대감을 갖고 있다. 체육이론 시간에 고대 올림픽에 대한 강의를 했었기 때문.
지금은 올림픽이 지구촌 최대의 축제로 자리매김 되었지만, BC 776년경에는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봉양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는 험준한 산맥이 많아서 서로 교류하며 살 만한 여건도 안되던 시절이어서 각자 마을 별로 성장하여
도시국가로 발전하였다. 각각의 도시국가로 운영되다 보니 통일성을 기하기 어려웠다.
세월이 흘러 그리스를 하나로 묶어 준게 공통의 신들과 언어였다.
올림픽 축제의 장을 마련하여 하나임을 확인하는 계기를 만든 것.
스포츠 제전은 신들을 위한 종교행사 이후 벌어지는 여흥이었던 것이다.
그리스에는 4개의 제전이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피아, 피티아.
2년마다 열리는 이스트모스, 네메아.
도시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일삼으면서도 올림픽 때 만은 휴전을 지켰다.
이런 단결력은 그리스 외부로 부터 오는 적과 대항할 때 힘을 발휘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를 지켜낸 것 처럼.
그러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맞붙은 내전(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훨씬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서로가 어우러진 축제를 버리고 전쟁을 택하자 신들 조차 그들을 버렸다.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로마의 속국이 되어 그리스 신전은 파괴되고, 1000년이나 지속되다 보니,
올림픽도 AD 393년에 중단되고 만다.
축제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런 설명을 들으며 유적지에 들어서니 그 당시의 화려했던 건물들은 이렇게 폐허로 변하여 우리를
맞이 해준다. 보슬비가 내리는 유적지는 마음을 착~ 가라앉게 만든다.
이 곳은 당시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연습했던 곳이다.
아래 사진에서 팔라스트라 투기장 건물의 기둥만 남아 이런 모습으로 보여준다.
전성기 때의 올림피아 상상도.
올림픽 위원장이 묵었던 영빈관 터.
제우스 신전이 저 위에 있는데 줄을 쳐놓았다. 출입 금지.
BC 5세기에 지어진 도리아식 기둥. 가까이에 가볼 수 없어 아쉽다.
이오니아식 원형 건축물. 아래 사진을 보면 필립 2세가 기부했다고 하는데 용도는 모르겠다.
그리스 유적지를 방문할 때는 반드시 현지 가이드를 동반해야 한다.
이들은 우리 가이드의 보조 역할을 한다. 이 분은 우리를 위하여 올리브 가지로 '승리의 올리브관'을
만들고 있다.
헤라 신전. 웅장한 도리아식.
지금도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의 성화가 여기에서 채화된다. TV에서 봐 온 익숙한 장소.
헤라 신전 지붕의 박공벽 위에 있는 둥근 원판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헤라 신전 앞에서 '승리의 올리브관'을 쓰고 기념촬영.
올림피아 경기장에서는 승리자에게 올리브관을 씌워 주었다.
델포이 피티아 경기장에서는 월계수관을 씌웠단다.
급수 시설. 아래 사진을 보면 그 당시 운동하다가 여럿이서 한꺼번에 입을 대고 마셨을 것이다.
체육시간 끝나고 우르르 수돗가로 몰려가서 모두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던 아이들을
떠올려 본다.
그 당시 급수시설까지도 아주 멋지게 만들어 사용하였다.
가운데 있는 소는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위 사진에서 아랫단 왼쪽에 있는 건물의 흔적.
비로서 경기장으로 들어간다.
출전하는 선수들은 긴장된 마음으로 관중들의 함성소리를 들으며 입장하였을 것이다.
이 스타디움은 동서 양쪽거리가 192.27m. 4만 5천명의 관중들을 수용. 바닥에 앉아 관람하였다.
종목은 달리기,레슬링,원반 던지기, 창 던지기 등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전차 경주까지 포함되었다.
선수들은 팬티까지 홀라당 벗어 젖히고 나체로 달렸다고 한다.
올림픽 경기를 기혼여성들은 관람할 수 없었지만, 미혼여성들은 관람이 가능하였다.
그리스는 미혼 여성들의 천국이었겠다. 발가벗은 젊은이들을 실컷 볼 수 있었으니....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건장한 신체와 나체의 찬미자들이었다나.
소크라테스는 전쟁터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전사였고,플라톤은 레슬링 선수로 출전한 경력이 있단다.
당시의 철학자들은 책상물림이 아니라, 신체와 정신의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나.
당시, 그리스인들은 운동해서 얻은 전사의 몸매와 황갈색 피부를 나체로 선보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요즘, 王자 복근은 젊은이들의 로망인데...이미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대리석이 깔린 스타트라인에 서서 폼을 잡아 보았다.
일행중 남성들만 출발! 깔깔~ 웃어대며 뜀박질....연령순으로 우리 남편이 꼴찌...ㅋㅋ
다음에는 여성들 차례. 크~ 난 슬금슬금 뒷걸음질하여 빠졌다.
뜀박질엔 젬병이어서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었다. 우연히도 일행중 50대 되는 여성만 뛰고 있다.
그 중 한 선수가 넘어졌다.ㅎㅎㅎ... 상체가 하체보다 앞서니까 넘어지게 되지....
승리의 올리브관은 신기하게도 부부가 남녀 모두 휩쓸었다.
저 부인은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에서 엄청 멀미를 하여 힘들어 했었는데 저런 저력이 숨어 있었네.
고대 그리스의 뭇남성들이 이 대리석의 홈에 맨발바닥을 고정시키고 출발 신호를 기다렸을 것이다.
경기장 관람석 가운데에 돌계단이 있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특정사람만 돌의자에 앉았단다.
선수들의 숙소 건물 흔적이다. 아래 사진에 있는 정사각형 건물의 기둥들이다.
AD 5세기 비잔틴 교회의 벽체가 남아 있다.
박태기 나무가 이렇게 큰 걸 처음 본다.
고대 올림피아 유적지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꽤 넓고 잘 보존되어 있다.
지금도 계속 발굴중이다.
각 건물 흔적마다 그 옆에 완성된 건물 사진과 설명을 보충하여 답사객들이 흥미로워 한다.
유적지 옆에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으로 간다.
고대 올림피아 유적지 모형.
제우스 신전이 헤라 신전보다 훨씬 크다.
헤라 신전의 지붕에 있던 둥근 판.
올림픽 기간에는 3개월간 휴전한다는 약속이 청동원반에 새겨져 있다는데 이건가?
투구를 보니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가 생각난다. 투구를 선물로 받았다지.
스파르타에 대항해 승리한 기념으로 메세니아 인들이 만들어 바친 승리의 니케상.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의 니케상보다 육감적이다.
제우스 신전에서 내려온 페티먼트에 새겨진 부조.
제우스 신전에 있었던 제우스 상은 12m 높이의 상아로 만들었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그런데 제우스상은 누가 어디로 가져가 버렸는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너무 커서 시중에 나오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텐데...
헤라 신전에서 발굴된 헤르메스 상.
균형잡힌 미끈한 골격미에 눈을 떼지 못하고 감탄하며 돌아본다.
특히 여성 관람객들이 자리를 뜨지 못한다.
급수시설 가운데에 있었던 소. 몸체에 글자가 써있는데...
그리스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부러운 것은 유적지와 박물관이 같이 있어 진품을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유적을 발굴하면 진품은 중앙 박물관으로 가고 정작 그 곳엔 모조품을 전시해 놓는다.
도난 방지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그리스는 관광산업이 70%를 차지하다 보니 관광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것 같다.
한적한 시골 구석에도 유적지가 있으면 반드시 Hotel 이 들어서 있다.
10시 반쯤, 버스에 올랐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건너 그리스 본토 내륙(발칸반도)으로 올라간다.
지도에는 올림피아가 안나와 있지만 Pirgos 근처에 위치한다.
우리는 지금 출발하여 저 위에 있는 이오안니나(요아니나) 까지 가야 한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발칸반도를 이어주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
우리의 영종대교와 흡사하다.
발칸반도로 들어서니 도로변에 노란꽃(그리스 개나리꽃)이 반겨준다.
1시간 반을 달려 작은 휴게소에 내렸다.
TC가 1인당 20유로씩 나누어준다.
카페테리아에서 각자 점심을 사먹었다.
빵과 카푸치노 한 잔, 남편은 닭고기 구이에 감자와 빵이 딸려 나와 푸짐하다.
간만에 가볍게 먹고 싶은 걸 먹으니 좋다. 휴게소에 wifi free 라고 써있는데 내 핸폰은 안터진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올리브 나무, 오렌지 나무가 끝없이 이어진다.
해변이 나오고... 멀리 설산이 보이고...
두번째 휴게소를 지나자 산이 울창해지고 올리브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라서 산림이 울창하다. 올리브는 비가 잘 안오는 지역에서 자란다.
이오안니나(요아니나) 도착.
이오안니나는 중부 그리스에서 가장 큰 도시.
요아니나는 팝보티스 호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호반의 도시 춘천과 비슷하다.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호숫가 산책도로
우리는 요아니나에 도착하자 마자 배를 타고 호수 안에 있는 섬으로 간다.
호숫가에 이슬람사원이 있다.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을 때 세워진 거겠지.
호수 주변은 고봉들의 설산이 둘러싸고 있어 프랑스의 안시 호수가 생각난다.
섬에 내려서 알리 파샤(ALI PASHA)의 박물관에 들어갔다.
'요아니나'라는 도시는 '알리 파샤'라는 인물을 떼어 놓을 수 없다.
'요아니나의 라이온' 이라는 별명을 가진 알리 파샤가 이곳의 지배자가 된 이후, 요아니나는
일약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각국에서 우수한 학자들을 초빙해왔던 것.
시인 바이런도 그 중 하나였다.
작고 아담한 박물관. 막강한 오스만투르크로 부터의 독립 운동에 일조했다.
오스만투르크군에 대항했던 무기들, 바닥에도 총탄 자국이 있었다.
물담배를 피고 있는 알리 파샤.
오스만투르크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인지 아랍 문화도 즐겼던 것 같다.
박물관을 나와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마을 산책에 나섰다.
마을의 지붕은 모두 납작한 돌을 얹었다. 마을 골목들도 돌을 깔았고. 이 지역엔 돌이 많은가 보다.
야생화가 피어 있는 돌계단. 예쁘다.
주민들의 교통수단. 각 집마다 자가용 조각배를 가지고 있다.
마을 골목길의 가운데는 말이 다니는 길이란다.
돌지붕에도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왕성한 생명력! 섬찍하다. 앙코르왓트의 스펑나무가 생각난다.
조용하고 예쁜 동네. 골목에는 우리 일행들 뿐.
탁자위에 물담배가 놓여 있다.
이 동네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 식탁위의 꽃이 화사하다.
이 식당의 주 메뉴는 개구리 튀김. 처음엔 어떻게 먹어...하다가 입에 대보니 그냥 맛있는 튀김
요리다. 먹는데 정신이 팔려 뒤늦게 찰칵. 너무 환하게 나왔는데 개구리의 형체가 남아 있다.
가재 요리. 먹기 쉽게 하느라 몸통 부분의 껍질을 벗겨 나왔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깨끗한 손으로 했을까?....의심....
흑도미 구이
식사를 마친후 다시 배를 타고 건너왔다.
걸어서 플라타나스 가로수길이 둘러진 호수변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천천히 즐긴다.
걸어서 호텔로 들어왔다.
간만에 호텔이 넓고 쾌적해 보여 우선 사진부터 찍었다.
어두운 녹색과 꽃무늬를 이렇게 매치 해놓으니 상큼해 보인다.
온통 대리석으로 치장된 욕실.
먼길을 달려와 그리스 중부의 내륙으로 들어온 첫날 밤.
몹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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