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을 끝내고 1주일간 푹 쉬었습니다.
머릿속에 꼭꼭 채워져 있는 감동들을 이젠 슬슬 풀어내어 정리하려고 합니다.
하루에 한 편씩 10일간의 일정을 메일에 올리려 하오니 그냥 심심풀이로 읽어 주십시요.
새해 소망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질줄은.
새해 초순 어느 날 오후, 여행사를 하는 내 동생이 전화를 해왔다.
1월 10일 떠나는 이집트 여행에 동참하겠느냐고.
누나가 가겠다면 한 자리를 만들겠다고. 거의 반 값에.
이 티켓은 여행사에 이익도 손해도 아니니, 소신껏 결정해서 내일까지 알려 달란다.
가끔, 예약 인원이 모자라 자리를 채워 달라는 긴급 SOS는 받았어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다.
북유럽 다녀온지 4개월 조금 지났는데 또 나가도 될까?
그렇지만 람세스를 읽으며 이집트에 대한 꿈을 키워 왔는데 게다가 저렴한 가격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일손은 잡히지 않고....
한 번 시도해 보자. 남편한테 전화해 보니 불통.
막내 시누이한테 전화해서 사정을 얘기하니 어머니를 맡을테니 염려말고 다녀오란다. 나의 구세주~
저녁에 가족들에게 통보(?). 그러나 설마 가겠나 하는 눈치.
여행비는 우선 내 동생이 대납하고, 전에 읽었던 람세스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짜증나던 일상사가 다시 활력이 생긴다.
이렇게 하여 1주일만에 갑자기 이집트로 떠나게 되었다.
1월 10일~1월 19일까지 (9박 10일) : 카이로,맴피스,기자피라미드,사카라,오아시스,백사막,룩소르, 아스완, 아부심벨.
2005년 1월 10일 (인천공항) 제 1일.
오늘밤 9시 반에 출발하기 때문에 저녁 7시까지 공항으로 나오란다.
오늘 아침식사를 하면서 어머니께 며칠간 집을 비우기 때문에 식사해결이 안되므로 막내 고모네에 가 계시라고 하니
묘한 표정으로 나를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 보신다.
아침 출근 길에 어머니를 고모님댁에 모셔다 드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는데 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앉아 꼼짝도 안하시고.....
남편도 그대로 앉아 있으니...나만 애가 탄다.
빨리 자리를 비워 주어야 내 일을 할 수 있는데. 시간은 촉박하고 할 일은 많고.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투로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니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 싫은 소리를 쏟아낸다.
1주일 내내 나를 불편하게 짓누르는 말투와 표정이 기어코 소리를 내어 뱉어낸다.
마음이 떠나 있으니 어머니한테 불손하고....집 나가면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이 순간을 참아야지. 나중에 생각해보고. 일단은 일을 해야지.
우선 세탁기를 돌리고, 밥을 한 솥 지어 밥공기마다 퍼담아 식혀 냉장고에 넣고, 토종닭으로 삼계탕을 끓이고,
카레도 한 냄비 끓여놓고, 김치 썰고,나물 두가지랑....
메모를 하여 편리하게 찾도록 냉장고에 붙이고, 다림질하고,청소기를 돌린다.
이젠 내 여행준비를 해야지. 이번 여행은 사계절 옷이 모두 필요하다.
카이로와 룩소르는 가을 날씨지만 사막에서의 밤은 매우 춥고, 아스완과 아부심벨은 여름 날씨란다.
아들이 교보에서 사다 준 이집트 지도를 챙기고, 딸이 꼭 가지고 가서 신으라고 꺼내준 가벼운 운동화를 여벌로 넣고,
스카프 두장, 화장품과 약품,세면도구와 필기구,우산과 여권도 챙기고. 은행에 가서 미화 100불 환전하고.
필름카메라 밧데리도 갈아 끼우고. 준비 끝.
남편도 모레 중국 상해를 2박 3일 출장 예정이어서 대략 준비를 해놓고.
컴 앞에 앉아 지인들에게 간단하게 메일 보내 놓고. 간단하게 저녁 먹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태워다 준다고 내려 오란다.
차 안에서 남편은 돈 봉투를 내 놓으며 환전하여 쓰라는데 난 기어코 뿌리치고 내렸다.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라타자 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내 인생은 왜 이리 서러운지. 아까 남편이 쏟아놓은 말들이 내게 비수가 되어 꽂히는 것 같다.
여행이 내게 소중함을 누누히 설명하고 여러번 이해를 구했건만......
3층 출국장 5번 출입구 벤치에서 내 여행자료를 빌려보던 옆에 앉은 남자는 자신도 성지순례로 이집트에서 이틀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너무 지저분하고 호텔도 불결하고 식당에서 나온 음식의 야채가 제대로 씻겨지지않아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필리핀에 유학가는 아들을 배웅하러 나왔다는 이 남자는 자신이 체험한 이집트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뭇 사람들에게 말하겠지.
저녁이라 그런지 공항은 한산하여 쉽게 출국수속을 끝내고 면세구역으로 들어간다.
우선 화장실로 들어가 껴입었던 옷을 벗어 가방에 넣고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 가다가 갑자기 홍삼제품이 생각나
AK면세점에 들어갔다. 마침 우리 일행 한 분이 홍삼정을 흥정하고 계셔서 덕분에 5% 할인하여 사게 되었다.
시중에는 100% 6년근 홍삼정을 구입할 수 없는데 이곳 면세점만 판매한단다. 168$을 5%할인받아 160$에 삼(약 17만 5천원).
대한 항공 기내.
내 옆에 앉은 여자가 긴 생 머리를 하여 처음엔 대학생으로 보였는데 천천히 보니 40대 중반 쯤.
근데 나와 똑같은 여행자료를 꺼내는걸 보니 우리 일행인것 같은데.
레드 와인을 천천히 마시면서 여행자료를 읽고 있는데 내 옆의 여자는 와인 한 잔에 골아 떨어졌다.
음~ 술에 매우 약하시군.ㅋㅋㅋ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날라다 주는 음식을 꼭꼭 챙겨 먹으며...가끔 화면에 나오는 지도의 위치를 확인하며
12시간을 꿋꿋히 버텨내고 있다.
2005년 1월 11일 (카이로-기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이슬람사원) 제 2일.
11시간여 비행 끝에 이집트 카이로 상공으로 들어서니 아래는 온통 별밭이다.
시계를 7시간 뒤로 맞춰 놓으니 새벽 3시.
입국 수속 전에 이집트 VISA 받느라 조금 지체되었다.
여기는 특이하게 카이로 랜드여행사 현지 직원이 직접 이 곳까지 들어와 VISA 수속을 도와준다.
이 곳 남자들은 체구가 크고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곱슬머리,그리고 갤러베이아라는 원피스 같은 옷을 입었다.
여자들은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고. 아랍 땅에 내린 것이 실감 난다.
짐을 찾아 공항 로비에서 가이드와 인사.
버스를 타고 카이로 시내로 이동하면서 가이드가 자기 소개를 한다.
이름은 에즈 딘, (자신의 동생은 알라 딘이라 하여 한동안은 알라딘 형님으로 불렀다-이름이 익숙 해질 때까지)
카이로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 일자리가 없어 잠시 아랍음악을 공부.
카이로 대학 중국어과 교수인 부친의 권유로 한국어를 공부.
90년대 중반 한국 연세 어학당에서 2년간 한국어를 배움.
동생은 카이로 대학 일본어과 교수. 머지않아 대학에 한국어과가 생긴다고 함. 한국어 발음이 매우 부드럽고 능통하다.
쉐라톤 호텔 도착.
체크인 하느라고 잠시 소파에서 기다리는데
독일 관광객 한 무리가 앉아서 저마다 커다란 종이상자를 안고 뭔가를 먹고 있다. (소란스럽게)
객실에 들어가 샤워하고 자리에 누우니 5시.
3시간 정도 침대속에서 잔 듯 만 듯.
8시 반. 모닝 콜.
내 룸 메이트가 커튼을 젖히니 나일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약간 안개가 끼어 있다.
발코니로 나갔다가 기겁하며 들어온다. 연탄 가스 냄새가 난단다.
석유가 나오는 나라에서 왠 연탄? (이따가 알게 된 건 지독한 매연 때문)
세수하면서 거울을 보니 입가에 뽀드라지가 하나 불룩 나와 있다.
(이것이 여행내내 부르트고 터지고....떠나기 전의 마음고생이 요렇게 표출된 듯)
비타민이랑, 아까 산 홍삼정도 한 스픈 먹고. 식당에 내려가 아침 식사.
오믈렛과 콩종류. 햄. 커피. 첫날이라 별로 눈에 띄는 것은 없었지만 여기서 4일간 머무는 동안 다양하게 찾아 먹었다.
과일은 오렌지 바나나 망고 구아바 등등.
호텔 로비에서 이집트 화폐로 환전. 1$=약 6 이집트 파운드. 10 $ 환전.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호텔 로비에 있는 소파에서 우리 일행들의 신상정보가 좌악 파악되었다.
우리 인원은 모두 16명.
여행 마니아인 듯한 50대 후반 2명과 60대 후반 2명의 함선생님 팀 4명.
40대 후반의 중학교 교사 그룹인 조선생님 팀 4명.
강남 청담중 교사인 안선생님과 초등학생 아들 2명.
그리고 싱글(혼자)인 우리 4명.
(내 룸 메이트는 서울여대 동창회 사무를 보다가 최근 휴게실에 작은 가게를 인수받았다 함.
비행기내에서 와인에 골아 떨어진 이선생은 김제 초등교사. 의대생인 재희씨)
그리고 TC인 김 대리.
10시 출발.
오늘 첫 날은 기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고 오후에는 이슬람 지역과 모스크,재래시장을 둘러보고
나일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저녁식사를 한단다.
카이로 시내를 빠져 나가는데 도로에 자동차들은 매우 많고 건물들은 외관을 잘 꾸미지 않아 매우 우중충하다.
가정집들은 시멘트 콘크리트를 하고 철근이 그냥 나와 있는 기초공사만 한 것 같은데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단다.
부모가 집을 짓고 1층에 살다가 자식이 결혼하면 2층을 올려 살게 하고 작은 아들이 결혼하면 3층을 올려 살게 한다나.
그러니까 한 건물에 결혼한 자식들까지 모두 함께 살며 식사 해결은 각자 한다고.
가이드의 설명과 자료집에 의하면
이집트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4.2배. 정식 명칭은 "이집트 아랍 공화국"
북위 22도~31도에 위치. 건조 기후.
국토의 96%가 사막, 3%가 농경지(나일강 양 옆과 하류인 델타지역)
이집트의 젖줄인 나일강의 길이는 한강의 13배. 8개의 나라를 거쳐 남에서 북으로 흘러 지중해로 나간다.
인구: 7500만명, 카이로에 1500만명.
인종분포: 60%가 고대 이집트인의 혈통인 콥트인과 누비아인- 피부색이 검고 곱슬머리(대부분 농민 계층)
카이로를 포함한 도시지구는 아랍 혈통을 받은자와 투르크*아르메니아인.
우리 가이드인 에즈 딘은 아랍 혈통으로 키가 헌출하게 크고(187Cm) 피부색은 약간 검은편. 귀족풍으로 미남.
언어: 아랍어.
종교: 94% 이슬람교. 6% 콥트 기독교. 유대교 약간.
AD 640년까지 콥트 기독교 였으나 그 후 아랍인의 지배를 받아 이슬람교로 바뀜.
기독교 예배의 자유 보장. 그러나 이슬람교도에게 포교는 금지.
아랍국가는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을 믿는 나라 .(이집트,리비아,이라크등 22개국)
(터어키,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을 믿으나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랍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경제: 높은 출생률에 비해 부족한 농경지. GDP 700 $ 매우 빈곤.
원유를 생산하나 자급자족하는 정도.
정치외교: 서방과 아랍세계 모두 우호적.
1963년 북한과 수교. 1995년 한국과 수교(그래서 어디를 가든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꼭 묻는다)
카이로 시내를 빠져 나가니 금방 사막이 나온다.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오고 말을 탄 군인들이 멋있다.
피라미드중 가장 크다는 쿠프왕 피라미드를 가까이에서 관람.
돌 하나의 무게가 2.5t 이라는데 4500년 전에 이 많은 돌을 어떻게 깎고 운반해 와서 이렇게 높게 쌓았을까?
전망대에서 3대(쿠프왕과 아들인 카프레왕, 손자인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 감상.
고왕국(BC3100~2152)시대의 파라오들은 신의 화신으로 종교와 정치의 최고 권위를 인정받아 많은 노동력을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데 이용하였지만, 이미 무덤 속은 도굴되어 없어졌고 무덤의 표면도 이슬람 사원을 짓는데 뜯어다 사용하여
피라미드가 돌계단처럼 되어 버렸다.
아들 피라미드의 꼭대기 일부만 원형 그대로 남아 햇빛에 반짝인다.
전망대에서 낙타를 타고 아들 피라미드로 간다.
낙타 등이 넙적하여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은데 요것이 낙타주인에게 반항을 하는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제멋대로 걸어가며 머리를 흔들어 댄다.
아들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는 매우 좁은 비탈길로 반쯤 구부리고 들어가보니 간단한 석실과 비어있는 석관만 있다.
피라미드 아랫 동네에 있는 스핑크스와 미이라 제조실 관람.
머리는 왕, 몸은 사자. 그러나 코는 아랍군 침입 때 깎여졌고 수염은 영국군에게 뽑혀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단다.
전체가 하나의 석회암으로 조각된 것으로 주변을 골짜기 같이 깎아서 만들었단다. 아들인 카프레왕 때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스핑크스 아랫 쪽에 미이라 제조실이 있는데 기둥과 화강암벽 만 남아있다.
화강암은 이집트 남쪽의 아스완에서 손재주가 좋은 누비아인들에 의해 다듬어져 나일강을 타고 이 곳으로 옮겨와 벽을 쌓았는데
벽의 모서리는 ㄱ자형으로 깎아 쌓아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미이라는 내일 카이로 박물관에 가서 보게 된다.
버스를 타고 카이로 시내로 들어와 한식으로 점심 식사.
밥과 김치,오징어 볶음, 불고기, 상추쌈, 두부와 묵, 몇가지 나물.
진수성찬인데 불고기를 먹다가 왠일인지 목이 딱 막히더니 식욕이 떨어져 버린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슬람지구로 가는데 매우 허름한 동네가 나온다.
공동 묘지란다. 시멘트 벽돌로 건물을 올렸는데 아랫층은 묘지이고 윗층에서 제사를 지낸단다.
이러한 묘지들이 카이로 면적의 1/5을 차지한다나.
카이로에 인구가 집중되다 보니 묘지 주인들이 빈민들에게 묘지 윗층은 세를 주어 죽은 자는 아랫층에, 산자는 윗 층에 사는 꼴이
되었다나. 현재는 사막에다 매장을 하고 비석을 세운단다.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
이슬람 사원중 가장 예쁜다. 둥근 지붕과 연필 끝모양의 뾰족한 첨탑.(터키식)
1857년 건축당시 이집트 정부는 프랑스의 제의로 벽시계와 룩소르의 오벨리스크를 맞바꾸었단다.
그런데 며칠도 안되어 시계는 고장나 버려서 멈추었는데 오벨리스크는 파리 콩코드 광장에 세워져 관광의 명소가 되었다나.
양쪽으로 회랑이 있고 광장 중앙에는 손과 발을 씻는 곳이 있다. 신발을 벗고 예배장소로 들어간다.
바닥에는 조각조각 카페트가 깔려져 있는데 벽에는 석상이나 그림도 없고 단순하다.
예배시간에는 참석한 사람 중에 연세 많은 분이 앞에 나와 코란을 읽고 진행을 한단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끼리끼리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다가 갑자기 내 선글라스가 보이지 않아 부리나케 왔던 길을 다시 둘러보느라 일행들을 지체시켜
매우 미안했다. 차 안에 있는것도 모르고.....
이븐 툴른 모스크.
카이로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
나선형의 첨탑.(바그다드식) ㄷ자 모양의 회랑.
신발 위에 덧버선을 신고 광장으로 들어서니 더욱 심플하고 방이 없다.
관광객은 우리 뿐. 서쪽에서 비치는 햇살이 회랑 안을 매우 고즈넉하게 한다.
밤이 되어 칸 카릴리 바자르 재래시장에 간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부르는 물건 값을 다 주고 사면 바가지를 쓴단다.
적어도 50~60%는 깎으라는데 은근히 스트레스를 준다. 여기 저기 구경하다가 선배 S가 좋아하는 신랑신부 인형을 보았다.
클레오 파트라와 그의 남편 줄리어스 시저.
TC인 김대리가 열심히 흥정하여 22$에서 시작하여 결국은 10$에 낙착. 어휴~ 힘들어.
다시 또 일행들 기념품 사는 것을 같이 흥정하고....
만나기로 한 카페에 오니 조선생팀이 시샤(물담배)를 입에 물고 깔깔깔...눈물 콧물 흘리면서.
우리 싱글팀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시샤를 주문.
사과 향을 넣은 물통과 숯 불을 피운 그릇을 호스로 연결하여 입으로 주욱 빨아 코로 내뿜으면 연기가 코로 뿜어 나오는데.
웃느라고 입으로 다시 연기가 나오는데. 내가 기어코 성공.
다시 폼 잡고 멋있게 깊이 빨고 코로 길게 내뿜고....우리 일행들이 나보고 평소에 많이 피워 본 솜씨라나??
나일강 유람선 승선.
뷔페식 이집트 음식.
무엇을 먹어야 할지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치킨과 야채 샐러드를 담아 왔는데 이상한 향이 더이상 식욕이 댕기지 않는다.
중앙 무대에서는 가수가 나와 노래를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음으로 노래를 한다.
마치 오늘 새벽에 호텔 인근 사원에서 들려오던 코란 읽는 음정과 비슷하다.
가수가 바뀌어도 노래는 똑같이 들려오고.
무희가 나와 발리댄스를 한다. 꽤 야한 춤이라고 들었는데 계속 빙빙 돌기만 한다.
스커트가 접시 모양으로 둥글게 위로 올라 가더니 머리 위로 빼내고 다시 또 속에 입은 스커트가 빙빙 접시 모양으로 올려지고.
참으로 단조롭다. 눈꺼풀은 무거워 자꾸만 내려오고....
일행들이 몸을 뒤틀고 있는데 TC가 갑판으로 나가자고 한다.
갑판에서 나일강변의 건물들을 구경한다. 저기 우리 호텔이 보이는데...쉐라톤 호텔.
2시간의 나일강 유람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천근 만근. 매우 피곤하다.
2005년 1월 12일 (맴피스-사카라-카이로 박물관-기자 피라미드의 빛과 소리쇼) 제 3일.
지난 밤 매우 고단하게 잠이 들었다가 2시에 깨어 침대속에서 뭉개고 있다가 5시에 살금살금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몸단장을 끝냈다. 룸 메이트를 깰까 봐 조용조용 했는데도 그 사이에 일어나 있었다.
그도 2시부터 깨어 있었다나. 우리가 아직도 이 곳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거다.
식당에 내려가 여러종류의 넛트와 곡물에 우유를 부어 가지고 탁자에 앉으니 여행 마니아인 함선생님도 내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식사를 하는데 함선생님은 내게 어떻게 이 여행사를 이용하게 되었느냐고 넌지시 물어 보시는데 딴 때 같으면 그냥 인터넷에서
보고 왔다고 얼버무렸을텐데 이 분한테는 以實直告 하고 말았다.
어제 버스에서 자신은 韓이사 팬이고 이 여행사를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한이사의 가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여 내가 얼마나 표정관리 하기가 힘들었던지,차라리 나를 밝혀 더 이상 가족얘기가 나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였다.
7시 반 멤피스를 향하여 출발.
카이로 시내의 거리에는 젊은 남자들이 한가로이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냥 바라보고 있다.
어제 오전에도 이 광경을 목격했는데 한창 일하러 나갈 시간일텐데, 여기도 실업률이 꽤 높은가 보다.
나일강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방향이므로 주로 신전을 건축하고 사람들이 거주하며 나일강 서쪽은 해가 지는 방향으로
주로 피라미드등 무덤이 많단다.
멤피스로 가는길.
넓은 농장이 딸린 저택들은 부자들의 별장 지역이란다.
종려나무가 시원스럽게 자라고 노새가 밭을 갈거나 짐을 실어 나르고 농장에는 양배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집트는 사막의 성질을 닮아서 매우 심플하단다.
언어는 모음이 3개라서 단어가 많지 않으며, 음식도 다양하지 않고, 노래 또한 높은음과 낮은음 없이 거의 일정한 톤이며,
사막의 모래 색깔이 누런색이 듯 건물 색깔도 그냥 시멘트 색깔 그대로라고.
멤피스.
고왕국의 수도였고, 람세스가 살던 신왕국 때는 외국과의 교역이 이루어졌던 국제 항구가 있는 경제적인 수도였는데
지금은 한가한 농촌지역으로 변해 있었다.
청년 람세스가 후계자인 형 때문에 야망을 접고 고뇌하며 헤메었던 공방이나 항구는 보이지 않고.
고왕국 시대의 파라오 석상들은 왼쪽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양쪽 손은 양 옆에 딱 붙이고 서있는 폼이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무지무지 큰(15m) 람세스 2세의 석상이 누워 있는데 2층에 올라가서 보아야만 전체를 다 볼 수 있다.
드디어 책에서만 보았던 람세스를 보게 되었다. 굉장하군!
버스에 오르니 먼저 들어온 회원들의 얼굴이 매우 밝다.
TC가 사준 군고구마를 하나씩 입에 물고 행복해하는 저 표정들!
나도 노란 호박 고구마를 받아 들고 싱글벙글....
버스를 타고 사카라로 간다.
최초의 피라미드가 있는 곳.
어제 본 쿠프왕보다 100년이 앞 선 4600년 전의 조세르 왕의 무덤이다. 6단으로 되어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
그 근처엔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군을 이루고 있다.
그 중 어느 귀족의 무덤속으로 들어가 본다.
여러 방으로 되어 있는데 벽에는 벽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회벽을 바르고 그 위에 섬세하게 홈을 파서 그림을 그려넣고 채색을 하였던 흔적이 속으로 들어갈수록 눈에 띄게 된다.
태양신 "라"를 숭배하는 모습, 고기 잡는 어부들, 농사 짓는 모습등 그 당시의 일상사가 잘 표현되어 매우 흥비롭다.
얼굴은 측면으로 돌아가 있고, 몸통은 정면을 향하는 기형적인 모습인 이집트 미술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한 팔이 없는 장애인으로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사후 세계를 더 중시한 나머지
두 팔, 두 다리를 다 그리는 것이다.
내세관을 기본으로 하는 관념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나.
어느 방에서는 모든 얼굴들이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그 방향을 따라 가보면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만나게 된다.
다시 버스를 타고 교외에 있는 이집트 전통식당을 찾았다.
우리로 말하면 가든 레스토랑이라고 할까?
수영장도 딸린 매우 넓은 공간에 뷔페식 이집트 음식이 차려져 있는데 유럽 관광객도 많이 와 있다.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화덕에다 굽는 이집트 빵 만드는 과정을 보게 되었다.
금방 구워 나온 빵을 건네주어 맛을 보니 따뜻하고 매우 구수하다.
식당에 나오는 호떡같은 이 빵은 차거워서 이런 맛을 느끼지 못하여 아쉬웠었다.
카이로 박물관.
숱한 유물들을 짧은 시간에 다 볼수가 없어 가이드가 이끄는대로 중요한 부분만 열심히 찾아다니며 설명듣고 관찰.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시대별로 나뉘어져 있고,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고, 미이라실은 또 따로
관람료를 내고 보아야 했다.
고왕국(BC 3100~BC 2152) 시대에는 태양신을 숭배하며 왕의 권위와 합치시켜 피라미드를 건립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왕국(BC 1986~BC1759)시대에는 각 지역의 호족세력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왕의 위상이 많이 약해졌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왕의 얼굴 이마에 주름이 잡혀 있다고 설명하여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중왕국시대에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대형 건축 대신에 화려한 장식, 특히 비싼 보석과 도자기 장식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 서민들도 파라오와 같이 내세의 삶을 보장받아 개인적인 미이라 제작이 활발하였다고 한다.
신왕국(BC 1539~BC 1069)시대의 특징은 활발한 정복전쟁을 통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문화의 폭을 넓힌 점이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신전건축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파라오들은 이미 神性을 상실하여 신과 관련된 업무는 신관에게 넘어간 상태여서 그 대신 신전을 지어 바침으로서
내세를 보장 받고자 하였다.
미이라 실에서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의 미이라를 보게 되었다.
피부는 검게 산화되어 있고 뼈에 딱 달라 붙어 있어 우람한 체격이었다던 람세스의 모습은 간데없는데 머리카락과 발가락이
그대로 있어 매우 신기했다.
파라오가 죽으면 70일간의 장례기간을 갖게 되는데 이 때 미이라를 만드는 기간이다.
유해를 작업대 위에 놓고 둥그렇게 굽은 칼로 콧구멍에서 부터 뇌까지를 찔러 뇌수를 꺼낸다.
이어서 날카로운 돌칼로 배를 갈라 내장을 전부 꺼낸 다음 향료를 바른 후 다시 꿰맨다.
이 유해를 천연 소다수에 담가 70일이 되면 꺼내어 잘 씻은뒤 아마포로 온 몸을 칭칭 감고 나서 고무를 발라 놓는다.
그런 다음에 육체가 썩지 않도록 소금,향료, 수지의 혼합물에 넣는데 머리부분은 가면으로 덮어 죽은 이의 모습을 보존토록 하였고
죽은 이의 얼굴 모습을 그대로 전하기 위하여 얼굴 모양을 본 뜬 마스크를 만들어 머리 부분에 부착시켰다.
투탕카멘의 유물실로 간다.
투탕카멘은 9세에 등극하여 19세에 사망. 왕으로서의 업적은 없었으나 유일하게 도굴되지않아 전문가에 의해 고스란히 유물들을
꺼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매우 화려한 황금 마스크와 보석들, 황금 마차랑 그가 입었던 속옷도 걸려 있다.
박물관 shop에서 엽서 두장을 샀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예뻤다는 네페르티티의 흉상.
이집트 사람들은 클레오파트라에 대하여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스 출신으로 이집트에 와서 통치를 했으며 150Cm의 작은키에 뚱뚱한 몸매와 엉망인 치아, 매부리 코를 가지고 있었다 한다.
네페르티티는 18대 왕조인 아크나톤왕의 왕비이자 투탕카멘의 양어머니이다.
투트모스 조각이 있던 신전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흉상에는 입술이 붉게 칠해져 있고 왼쪽 눈동자는 사라졌지만 검은 눈썹과
눈꺼풀이 매력적이고 우아한 목덜미는 조각의 크기와 조화가 잘 되고 넓고 높은 관은 머리를 더욱 갸름하게 보여준다.
박물관 정원에서 파피루스 식물을 보았다는 조선생의 얘기를 버스에서 전해듣고는 매우 아쉬움이 남는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었는데.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한식집에서 저녁식사.
된장국, 두부김치,오징어볶음, 상추와 나물들...
잠깐 호텔에 들러 중무장하고 다시 기자 피라미드로 향한다.
3대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서 빛과 소리 쇼를 보기 위해서.
컴컴한 밤. 스핑크스 앞에 있는 미이라 제조실 벽면에 레이져를 쏘아 이집트의 역사와 피라미드 발견 이야기쇼를 영어로 진행하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예쁜 색깔을 보여줘 흥미롭다.
1시간 만에 쇼는 끝났는데 모두들 춥다고 아우성이다.
낮에는 햇빛이 좋아 얇은 셔츠에 자켓을 걸치기도 하지만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꽤 추운편이다.
호텔로 돌아와 언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내일을 준비한다.
2005년 1월 13일 (바하리야 오아시스-흑사막-백사막) 제 4일
5시 반 morning call.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TC가 내 맞은편에 앉은 room mate에게 무언가를 얘기하는데 좀 이상하다.
음식을 더 가지러 갔다가 TC를 보게 되어 조금전의 사유를 물으니 아직도 모르느냐고 한다.
내 room mate인 김선생은 테마세이의 신입사원 엄마라고 한다. 아뿔싸!
어쩐지 첫날 인천공항에서 김선생은 나를 보더니 한방쓰게 되었다며 韓이사 누나라면서요? 라고 했었다.
3일째 한방을 쓰면서도 우리는 별 얘기를 나눈게 없다.
늦게 들어와 씻고 자면 아침 일찍 출발하고 버스에서도 각자 혼자 앉으니 개별적으로 속 깊은 얘기를 할 시간이 없다.
게다가 김선생은 한번 얘기를 시작하면 끝도없이 자기얘기만 하기 때문에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늘과 내일은 사막투어를 하기 때문에 밤에 입을 옷을 꺼내어 비닐봉지에 따로 짐을 꾸렸다.
비행기에서 가져온 담요도 챙겨놓고. 사실 이 담요는 아들녀석이 배낭여행 나갈 때마다 항공기 담요를 챙기는 버릇(?)이 있는데
대한항공 담요가 꼭 필요하다며 집을 떠나올 때 신신당부를 했던터라 슬쩍(?)한 것이 이렇게 요긴하게 쓸줄은....
사실,난 늦게서야 이 여행에 동참하는 바람에 설명회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회원들은 사막의 밤이 무척 춥다하여 단단하게
챙겨온 듯하다. 핫팩이랑 컵라면,인스턴트 커피,랜턴도 챙겨오는 등....
7시 반 출발.
오늘은 한 식구가 더 늘었다.
사막투어는 보안을 위하여 경찰의 입회하에 실시하게 되어 있단다.
그래서 이틀동안 우리와 같이 먹고 자고 해야 한다는데 우리 버스에 젊은 경찰이 올라타자 앞에 앉은 함선생님팀에서
"어? 새것이네!" 이 한 마디에 버스 안은 웃음바다.
한바탕 웃음으로 시작한 기분좋은 출발.
카이로 시내에서 어느 만큼 벗어나 사막에 들어서니 예쁜 집들이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시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말로 예쁜 단독 주택들. 사막에 형성되고 있는 신도시란다.
부자들이 이곳에다 널찍하게 터를 잡고 아낌없이 투자를 한다고.
카이로보다 공기 맑고 상수도는 이웃나라인 리비아에서 부터 사막 밑으로 큰 수맥이 있어 가능하단다.
한국의 건설회사가 여기에 와서 수맥을 뚫었다고 하던가?
후에 가이드로 부터 들은 얘기는 자신도 현재 여기에 집을 짓고 있다고 했다.
4층 건물에 수영장이 딸린 집.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살 집을....
이집트인들의 결혼 풍습에 대하여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결혼식은 보통 목요일 저녁에 하며 결혼을 할려면 남자의 부담이 매우 크단다.
결혼하기전 신부 가족과 만나 지참금과 이혼할경우 위자료 액수에 대하여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한단다.
또 남자는 부인을 4명까지 결혼할 수 있다는데 이집트가 전쟁을 많이 겪다보니 남자들이 전쟁에서 죽는 경우가 많아 남아도는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나.
그런데 4명의 부인에게 무엇이든지 똑같이 해주어야만 한단다.
심지어 잠자리도 똑같이.....이렇게 하지 않을경우 이혼사유가 되기 때문에 이혼을 하고 나면 남자들은 알거지가 된다나.
그래서 부자들이나 부인을 많이 거느리고 살지. 보통 사람들은 그냥~.
사막으로 가는길.
짙은 안개 때문에 밖은 거의 보이지 않고 상념에 빠져 있다가 담요를 가지고 맨 뒤의 긴 의자에 가서 누워 버렸다.
어느 만큼 잤을까? 햇빛이 들어오고 밖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사방이 모두 모래인데 거무스름하다. 이게 흑사막인가? 거무스름한 것이 모두 철광석인가?
사막위에 아스팔트 길. 가끔씩 자동차들이 지나갈 뿐.
근데 이 도로 옆에 기차 철도가 있다. 내 지도에는 철도가 없는데.
거의 두 시간을 달려 휴게소가 나온다. 아무도 살지 않을것 같은 이곳에서 드디어 사람구경.
화장실과 매점. 탁자 몇 개. 시커먼 남자 대여섯명이 우리를 구경하고 있다.
이 철도는 여기에서 끝나는데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철로란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면서 건너 편을 보니 거무스름한 모래위에 여기저기 노란 모래가 무더기 무더기 둥근 산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설치미술을 보는 듯하다.
그러니까 여기는 철광석을 땅속에서 캐내는 것이 아니고 지천으로 깔려있는 철광석을 체로 걸러서 모으는 것이다.
이게 모두 보물인 것을......
가이드가 이곳의 특산물인 대추야자와 땅콩을 사서 맛을 보라며 나누어준다.
"람세스"에서 대추야자가 많이 나오던데 바로 이것이구나! 우리 대추보다 더 크고 아주 달다.
나중에 갈 때 이것 좀 사가야지. 땅콩은 뜨거운 햇빛에 볶아낸단다. 음~맛이 괜찮군.
1시간을 더 달려 오아시스에 도착.
바하리야 오아시스.
자료집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 때부터 형성된 오랜 역사를 가진 베두인족들이 사는 바위티(Bawiti) 마을이며 인구 2만명.
우리가 생각하는 오아시스는 사막 한가운데 옹달샘과 야자나무 한 그루를 연상하지만 이곳은 진흙으로 만든 흙벽돌로 집을 짓고
경찰서도 있고 호텔도 있다.
대추야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농사를 지으며 물이 풍부하여 여기저기 조그마한 호수가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살다가 물이 마르면 마을을 버리고 또 다른 물을 찾아 마을을 형성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까 지나오는데 무너진 흙벽돌 담과 말라버린 대추야자 나무를 보았었다.
하얀 돔의 지붕을 얹은 호텔에 도착.
어제 저녁 식사했던 한식집에서 싸준 도시락을 풀렀다.
수영장이 딸린 야외 탁자에서 밥을 먹는데 햇빛이 강렬하여 도시락을 쌌던 종이상자를 급조하여 종이모자를 만들어 머리에 쓰고.
점심 식사후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여기에 두고 베두인족들이 안내하는 짚차로 갈아타고 백사막으로 들어간다.
베두인 족.
사막을 배회하는 유목민. 요르단에서 모로코를 잇는 약 4800Km 가량의 사막지대가 이들의 주 활동무대.
베두인족들의 경제 기반은 목축. 주거지는 천막생활.
가축의 젖과 커피,발효시키지 않은 밀가루 빵을 즐겨 먹음. 결혼은 대가족내에서 이루어짐.
시대가 변하면서 이들의 생활양식도 변함 - 오만에선 석유회사의 근로자, 요르단에선 군인, 이집트에선 사막투어의 관광업.
각 국가의 정부가 베두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정착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람세스를 읽어보면 베두인족들은 사막의 무법자 강도로 표현되고 있다.
지금도 극소수의 베두인족은 오아시스에다 마약을 재배하여 판매를 하고 있다고 한다.
베두인족이 운전하는 4대의 짚차에 몸을 실었다.
짚차의 지붕 꼭대기에는 텐트와 매트리스를 얹고 짚차안에는 우리가 먹을 식량과 물을 실고.
출발하기전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한다.
국적과 인원, 몇날 몇시에 가서 언제 돌아온다는 내용으로. 혹시 실종사고 있을까봐 그렇다는데.
3시간여를 달리는동안 곳곳에서 검문. 철저하게 관광객들을 관리하는 것 같다.
우리 짚차에는 싱글들 4명과 가이드.
덕분에 가이드와 마주 앉아 무궁무진하게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사회,경제, 정치,문화등 한국과 이집트를 비교해가며.....
실로 오랫만에 대화자를 만난것 같아 흐뭇하다. 늘 대화에 목말라 있던 차에....
그의 한국어 실력은 거의 완벽. 게다가 솜사탕(?)같이 부드럽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어 더욱 듣기가 좋다.
우리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된소리를 많이 넣어 발음한다는 사실을 그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학구적인지 어제 피라미드를 관광할 때도 자신이 수집한 옛날 사진이나 그림등을 스크랩하여 보여주며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 다들 감탄한다.
그의 사적인 얘기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한국 유학시절 어려웠던 얘기. 결혼에 실패한 얘기. 결혼 생활의 어려운 점. 새로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얘기등등....
이집트 미인의 조건: 피부가 희고 머리는 긴 생머리.코와 입은 작아야 한다나.
거무스름한 흑사막을 지그재그로 달리던 짚차가 멈춘다.
내려서 주변 산책. 발 밑에 깔린 까만 돌들. 토끼 똥을 뭉쳐놓은 듯 기이하게 예뻐서 집어보니 제법 무겁다. 철광석.
이름하여 flower stone. 모두들 예쁘게 생긴 돌들을 줍느라 바쁘다.
공항에서 걸리지 않을까 물어보니 괜찮단다.
다시 짚차는 달리기 시작하는데 아까 보던 풍광과는 달리 여기저기 하얀 석회석 산들이 나타난다.
때로는 바닥에도 하얀 석회석들이 풍화되어 깔려있어 마치 눈이 싸여 있는 것 같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이리저리 길없는 사막을 달리더니 어느 만큼에서 멈춘다.
여기가 우리의 숙영지. 베두인족들은 우리가 묵을 밀리언스 스타 호텔을 짓는다.
유럽인들이 사막투어를 즐겨하는데 큰 수건을 깔고 누워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보며 5분에 하나씩 떨어지는 유성들을
보며 잠이 든다 하여 붙여진 이름 - 밀리언스 스타 호텔.
주변 산책. 하얀 석회석 산에도 올라가고. 좀 더 멀리 산책하여 돌 뒤에 숨어 볼일(?)도 보고.
어둑어둑해지자, 장작불을 피우고 베두인족들은 저녁 식사준비를 한다.
우리는 텐트를 배정받아 매트와 침낭을 깔아놓고. 옷도 든든하게 껴입고.
양념한 닭을 장작불에 굽는다. 음~맛있는 냄새.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불 속 모래에 묻어놓고.
하늘에 별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배는 고픈데...신나게 떠들어가며 식사준비하는 풍채좋은 까만(?)아저씨을 바라보며
누군가가 즉석에서 동시통역(?)을 하여 깔깔깔 웃어댄다.
깜깜한 밤. 짚차의 발전기를 이용한 전기불 아래에 식탁이 차려졌다.
모래위에 카페트가 깔리고, 긴 식탁에 식탁보가 덮히고 과일 바구니와 볶은 콩, 포크와 나이프, 물컵등 테이블 세팅이
아주 훌륭하다. 거친 조상을 가진 후손들이 이러한 섬세한 심성을 가진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큰 접시에 밥과 구운 닭다리 한쪽과 염소고기 한 조각.감자 스튜와 빵.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지 못하고 남긴것이 송구스럽다.
남의 남자손에 의하여 성심껏 만들어준 음식인데....
그들도 한쪽에서 식사를 하며 우리보고 더 먹으라고 자꾸 권하는데....
그들이 설겆이 하는 동안 우리는 장작불 근처에 빙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며 구운 고구마를 꺼내 먹는다.
근데 밤하늘은 자꾸만 구름이 끼어 별들이 하나씩 숨고...
내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는데....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룸메이트에게 우리 텐트의 위치를 물었다.
깜깜하여 더듬더듬 기어들어가 몸에 담요를 둘둘 말고 침낭속으로 들어간다.
양치질도 못하고 그냥 잠속에 빠져 들어간다.
밖에서는 베두인족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데...저것을 보아야 하는데......zzz...
2005년 1월 14일 (백사막-크리스탈 마운틴-바하리야 오아시스-카이로) 제 5일
아주 깊게 잠을 잘 잤다.
여행와서 계속 잠을 설치다가 사막에 와서야 대자연의 품에서 깊게 잘 수 있었다.
밖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소리도 그냥 잠 속에 묻혀버리고....
잠이 깨어 룸 메이트와 같이 텐트 밖으로 나가 소변을 보면서 하늘을 보니 구름에 가려 별 볼 일이 없다.
아까 초저녁에 남쪽하늘에 가늘게 보였던 초승달도 기울어 버렸고.
개운하고 싸한 사막의 찬공기가 매우 상쾌하다. 사방은 조용하고....
사막에 사는 여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기 도착하여 산책할 때 이상한 구멍 하나를 발견했었다.
초등학생인 태호 형제는 이 구멍속에 여우가 숨어 있을거라 했었다.
잠 자는 사이에 여우가 텐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음식 찌꺼기를 뒤져 먹는다고 가이드가 설명했었기 때문에.
아하, 또 생각나는 것이 있네.
태호 형제가 석회석 산 근처에서 유일한 생명체인 메뚜기를 주워 왔는데 기운이 없는지 움직임이 약하여 장작불 근처
따뜻한 모래위에 놓아 두었더니 제법 움직이게 되었었다.
이 녀석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이 애가 어떻게 이 곳에 왔는지 추측이 분분하다가 결론을 내렸었다.
며칠전 신문에 아프리카 어느 지역인지 메뚜기떼가 출몰하여 식물들을 초토화 시켰다는데 혹시 이 녀석이 그 메뚜기떼의 일원으로
날라가다가 낙오된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근데 이 녀석은 어디에 있나? 장작불은 꺼진지 오래되어 온기조차 없는데....
고요한 사막의 한밤중. 어느 텐트에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 가이드에 의하면 어쩌다 한국 관광객이 이곳에 오면 왠 술을 많이 가져오는지 밤새도록 마시고 노래 부르고....
그네들은 사막의 고요가 두려운가??
다시 텐트로 들어와 또 눈을 붙인다.
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잠이 깨어 텐트의 지퍼를 올리니 훤하게 여명이 밝아온다.
베두인족들은 벌써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하나, 둘, 텐트에서 빠져나와 부스스한 모습으로 걸어가다가 돌 뒤로 숨는다.(볼일 보러)
페트병에 담아온 식수로 양치질만 겨우 하고 룸 메이트가 건네주는 크린싱 거즈로 약식 세수를 한다.
텐트속에 있던 침낭을 정리하는데 어제 저녁에는 어두워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매우 질 좋은 제품이다.
그래서 사막의 추위도 모른 채 깊게 잠들 수 있었나 보다.
텐트만 좀 더 좋은 제품으로 바꾸면 금상첨화인데.
동쪽하늘이 환해지더니 어느새 태양이 구름속에서 나온다.
어느새 TC가 따끈한 morning coffee를 만들어 와 주욱 돌린다. 맥심 모카 커피!
한국에서 마실 때보다 이역만리 떨어진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마시는 이 모카 커피 한 잔은 기가 막히게 맛이 좋다.
지난 여름 노르웨이 피요르드를 관광하는 선상에서 TC가 만들어준 모카커피도 눈물 날 정도로 맛이 좋았었다.
TC의 반짝 아이디어에 감탄.
상쾌한 사막의 아침 공기는 정말 좋다.
저 건너편에 있는 석회석 산이 동녁하늘에서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변한다.
이 기막힌 광경을....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겨울에 사막투어를 즐겨하나 보다.
그들은 보름치 식량을 가지고 사막으로 들어가 안나온단다.
투명한 햇빛과 맑은공기,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라나.
여름의 사막은 무지무지 더운데 물 것이 많아 위험하단다.
아침 식사.
각자 짐꾸러미에서 컵라면을 가지고 와 뜨거운 물을 붓는다.
나도 룸 메이트로 부터 하나를 얻었다. 까만 아저씨들이 준비해준 식탁이 매우 풍성하다.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와 우유, 발효되지 않은 빵, 각종 쨈, 버터, 오렌지.
남선생님이 미역 부스러기를 라면에 넣어 주신다. 오! 이 맛. 더욱 식욕이 땡긴다.
누군가가 김도 건네주고....
까만 아저씨들도 컵라면을 받아들고 매우 즐거워하고.
설겆이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각자 산책.
어제 가보지 못한 동남쪽을 향하여 걸었다.
지난 밤 건너편에 보였던 불빛이, 지금보니 짚차가 있는걸로 보아 여기도 한무리가 캠프를 쳤나본데 아직도 수면중인가 보다.
어느만큼 걸었을까. 아무도 밟지 않은 노란색 모래위에 내 발자국을 만들다보니 꽤 온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캠프의 사람들이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데 말소리는 가까이 들린다.
소리는 공기의 진동에 의한 건 데 공기가 아주 깨끗하고 건물같은 장애물이 없어서 진동이 매우 잘되어서 그런것 같다.
한국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은 단 한군데. 전북 김제의 드넓은 평야에서나 가능.
그러나 여기는 사방 180도가 다 뚫려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하얀 석회석 산들이 군데군데 기이한 형상을 하고 서 있는데 왠지 저만큼 가면 동네가 나올것 같아 계속 걷게 된다.
걷다가 석회석 산 뒷쪽에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데 여기 저기 인분이 모래에 반쯤 묻혀 있다.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햇빛에 산화되어 까만 철광석 색깔이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캠핑을 했었나.
다시 되돌아 가는 길에 보이는 까만 돌들이 이젠 모두 인분으로 보여 혼자 피식 웃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모래위에 누워 보았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눈을 떴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뭉쳐 있는데 꽤 높이 있을텐데 이상하게도 얼음 알갱이 같은 입자가 보이는 듯하다.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구름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하늘이 내 눈 가까이에 있는것 같다.
나도 모르게 하늘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는데 눈을 뗄 수가 없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인기척 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키니 TC가 다가와 사진을 찍을테니 포즈를 취하란다.
캠프로 돌아가며 조금 전 이상한 체험을 곰곰히 생각해본다.
죽음이 이런 것인가?
짚차에 올라 백사막을 뒤로 하고 달린다.
어느 만큼에서 차는 멈추고 사막 언덕에 나무 한 그루가 무성한 잎을 달고 있는데 아프리카 아카시아 나무란다.
우리의 아카시아 나무와는 전혀 다른데 어떻게 사막에서 자랄 수가 있을까?
나무 둥치는 고목인것으로 보아 수령이 꽤 된 것 같다.
사막 밑으로 수맥이 흐르는데 이 나무의 뿌리가 수맥에 닿아 이렇게 자랄수 있단다.
이곳 리비아 사막에 유일한 식물이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개 한 마리가 이곳 나무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달려오는 짚차를 보고 언덕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내려왔다.
사람이 그리웠는지 도망가지 않고 사람곁으로 접근.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북유럽쪽 젊은이 서너명이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누군가가 페트병을 잘라 만든 물통에 물을 따라주니 잘 먹는다.
주인 잃은 개가 사막에서 살 수 있는 것은 간간히 들려주는 관광객이 던져주는 먹이와 물이 있어서 라는데.
달리던 차가 멈춘곳. 머쉬룸 스톤(버섯 바위)
우리가 묵었던 숙영지 근처에도 버섯모양의 석회석을 보았는데 이곳은 정말 버섯과 똑같다.
이건 표고버섯, 저 바위는 느타리 버섯, 새 송이도 있네....
2학년 과학책에 나왔던 사진과 똑같다.
모래바람이 불 때 입자가 굵은 모래는 무거워서 지면 가까이에, 입자가 작은 모래는 가벼워서 더 높이 떠서 운반되기 때문에
에너지가 큰 아랫면이 더 깊게 깎여서 버섯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크리스탈 마운틴.
수정으로 이루어진 언덕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하는데, 내 상상력은 사막 전체가 유리같은 수정으로 다 덮여 있는줄 알았다.
조금 실망했지만 모래사이에 박힌 수정을 몇 개 주웠다.
계속 검문을 받으며 오아시스로 오는데 검문소마다 군인들이 많다.
젊은이 뿐만 아니라 나이 든 군인도 보이는데 이집트는 국방의 의무가 있으며 대졸 이상은 1년반,그 외는 3년이라나.
30세까지 의무를 마쳐야 한다는데 학력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은 국가에서 대학원까지 무상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교육을 받으려 하지않아 학교로 몰기 위한 전략이란다.
문맹률 40%.
어제 왔던 오아시스의 바위티 마을에 도착하여 온천수가 나오는 마을에서 뜨거운 물에 손도 담가보고 야자나무에 매달린
대추도 구경. 9월에 수확한다는데 지금은 노란색이지만 익어 갈수록 붉은색을 띤단다.
베두인족의 어린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영어도 곧잘하며 사진을 찍어 주니 매우 즐거워하는 표정. 까만 눈동자의 큰 눈.
캄보디아 어린애들 같이 남루한 옷차림이지만 매우 당당하여 보기 좋다.
하얀 돔의 호텔에서 점심식사. (치킨,밥,감자스튜) 어제 저녁에 먹은 메뉴와 똑같다.
사막의 안내자 베두인족들과 작별인사. 순박하고 넉넉한 웃음이 참 좋았는데....
버스를 타고 3시간여의 사막속의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데 하룻사이에 사막의 진수(?)를 맛보아서 인가.
별 흥미없이 잠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카이로에 도착.
그저께 들렀던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한식집에서 푸짐하게 저녁식사.
미역국,오징어 볶음,김치,깍뚜기,잡채,상추쌈등...게다가 레드와인까지 곁들여서.
이 와인은 김선생님이 쏜 것. 김선생님은 50대 후반의 미인. 별명은 김지미 + 윤석화.
어떻게 보면 김지미 같고 또 어떤 날은 윤석화 같고....
여행 마니아이며 깔끔하고 새침한 듯 하면서도 유머가 넘쳐 늘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나도 끝날 즈음에 한 번 쏘아야지.
2005년 1월15일 (룩소르의 왕가의 계곡-카르낙 신전-룩소르신전) 제 6일
3시 반 morning call.
전화벨 소리에 후다닥 일어나 세수하고 몸단장하고.
이젠 이곳 시차에 완전히 적응이 된 듯 밤에도 잘자고 이른 새벽이지만 몸이 거뜬하다.
사막의 공기가 내 몸을 정상으로 바꾸워 놓았나 보다.
신발도 가벼운 스니커즈로 갈아 신고. 가방을 꾸려 로비로 내려간다.
오늘은 국내선을 타고 룩소르로 날아가기 때문에 새벽부터 분주하다.
아침식사는 호텔에서 싸준 도시락으로 대체된다.
로비에서 함선생님이 회원 모두에게 랩으로 싼 홍삼절편을 건네준다.
언제 이런것까지 준비 하셨을까? 여행중 계속 먹을 것을 나누어 주어 함선생님의 가방은 요술가방이라 부른다.
가정에서도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재미로 사신단다.
하물며 언젠가는 약식을 만들어 뜨거운 채로 테마세이 여행사로 택배로 보내셨다 하니.....
4시 반 카이로 공항을 향하여 출발.
호텔에서 싸준 커다란 종이상자를 나누어 주는데 그 속엔 빵 4개, 쥬스와 사과. (상자가 너무 크다)
내용물을 주섬주섬 가방에 집어넣고.
6시 15분 이륙. 국내선이지만 여승무원은 자국민이 아닌 유럽 여성들이다.
이집트는 아직도 보수적이어서 여성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긴, 아랍에미리트 항공사에는 덕분에(?) 우리나라 여성들이 많이 취업해 있다.
룩소르는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50Km떨어져 있다.
1시간 비행하는 동안 커피와 음료,빵을 열심히 가져다 준다.
7시 20분 룩소르에 도착.
우리가 오늘 묵게 될 ISIS룩소르 호텔에 잠깐 들러 화장실만 이용하고 나온다.
이집트의 화장실들은 거의 유료이다. 화장실에 직원이 지키고 앉아서 부르는대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잔돈이 없을 때는
몇명을 한꺼번에 묶어 계산하기 때문에 아주 신경이 쓰여 될수있으면 참았다가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해결한다.
룩소르는 신왕국의 수도. 옛이름은 테베.
그래서 이곳은 신전이 많이 남아있고 왕들의 무덤이 있는 왕가의 계곡이 있다.
룩소르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며,역사 그 자체이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지나가는데 집앞에는 물항아리와 바가지가 놓여 있다.
지금은 겨울이라 낮 최고 기온이 20도쯤 되지만 여름에는 45도 이상 올라가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물을 마실수 있게 물 봉사를 한다나.
그리고 카이로 보다 더 보수적이어서 여성들은 집밖으로 잘 안나오며 눈만 보이는 검은색 차도르를 머리에 쓴 여성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왕가의 계곡으로 가는길에 잠깐 차에서 내려 아멘호텝 3세의 거상을 본다.
붉은 사암으로 조각된 거대한 석상이 양쪽에 서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30개 왕조가 생겨났는데 왕의 권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고왕국 시대에는 사치스럽고 웅장한 피라미드가
만들어졌으나, 권력이 쇠퇴하는 중왕국과 신왕국 시대에는 일반 무덤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도굴을 막기 위해 암벽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 시체를 매장하는 방법을 썼다.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왕가의 계곡이다.
바위산을 뚫어 입구에서 현실까지 길게 통로를 만들고 그 통로의 중간에 깊은 함정, 기둥이 있는 방, 전실, 현실도 만들었다.
현실에는 미이라를 넣은 석관이 있고 별도로 내장을 넣어둔 단지와 부장품을 보관하기 위한 작은 방도 만들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굴이 계속되자 새 무덤 양식은 미이라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매장하고 장제전은 가능한 한 그 무덤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 세우고 혼의 영생을 위해 제물을 받도록 하였다.
그리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왕의 묘 공사에 참여했던 인부들은 모두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현재 발견된 64기의 무덤은 거의 도굴당했고 파라호의 저주로 유명한 투탕카멘의 무덤만 도굴되지 않았다.
한편, 도굴꾼의 무덤 훼손을 막기 위해 사제들이 아직 모양을 갖추고 있는 미이라들을 옮겨서 한 군데에 매장했는데 19세기 후반
어느 절벽 기슭에서 발견된 깊이 12m나 되는 수직갱 속에서는 미이라가 무려 40구나 발견되었다.
현재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미이라는 여기에서 발굴되어 옮겨 온것이다.
왕가의 계곡으로 가는 길목에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장이 보이는데 그냥 지나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허름한 판자촌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도굴꾼이 사는 동네란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붉은 사암으로 되어 있는 산 기슭에 수도물도 전기도 안들어오는 열악한 환경을 가진 이동네는 집안으로 계속
굴을 파고 들어가면 어느 무덤속으로 통하여 유물들을 꺼내다 파는데 경찰에 걸리면 할아버지의 유산을 받은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나.
또한 이들은 서양 여자들과 정략적으로 결혼하여 조직적으로 외국으로의 밀반출에 이용한다나.
이 동네의 산 위쪽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져 있는데 이미 도굴이 끝난 무덤이란다.
이곳은 귀족무덤으로 350 여 기가 있다고 하는데....
산을 돌아 그 뒷면은 왕들의 무덤이다.
버스에서 내려 매표소 입구까지 모노 레일을 타고 올라 가는데 내 맞은편에 앉은 풍채좋은 남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는데
6살짜리 아들의 동그란 눈과 장난기 어린 표정이 아주 귀엽다.
프랑스에 사는 조카 땅기녀석을 연상케 한다.
많은 왕의 무덤중 람세스 3세,6세,9세 무덤을 보기로 하고 입구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무덤안으로 들어간다.
무덤 입구가 4각으로 넓직하게 뚫려져 있고 벽과 천정은 빈틈없이 상형문자와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채색이 얼마나 예쁘게 잘 되어
있는지 상형문자를 읽을 수는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자인것 같다.
그리고 그림들은 주로 신을 숭배하는 그림인데 우리 일행중 이집트 신에 대하여 공부를 많이 해온 조선생을 따라 해독해주는
재미에 푹 빠졌다.(지금은 다 잊었지만)
통로 양쪽으로 간간히 작은 방도 나오고. 통로 맨끝에 현실이 있고 그 안에 석관이 놓여 있다.
매우 높은 천정에도 그림이 가득 그려져 있고.
람세스 3세와 6세는 그의 치적에 어울리게 무덤 속을 매우 화려하게 치장하였지만 람세스 9세의 무덤은 미완성이어서 더욱 흥미를
끌게 한다.
왕들은 집권을 하게 되면 자신의 무덤부터 만들기 시작하는데 람세스 9세는 무덤을 다 만들기도 전에 사망하여 일꾼들이
미완성인채 도망을 갔다나.
한쪽 벽은 채색까지 다 끝냈지만 어떤 벽은 조수가 스케치를 하고 그의 보스가 이것을 수정한 부분이 있고,어떤 벽은 스케치한
부분을 홈을 파다가 그만둔 곳도 있다.
왕가의 계곡에서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 오는데 내 옆에 앉은 일본인 노부부가 있었다.
우리끼리 얘기 하는 소리를 듣고 부인이 "욘사마의 나라"라고 말하여 욘사마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남편이 자기 부인은 욘사마의 팬이란다.
우리는 그의 남편을 쳐다보며 당신의 남편도 매우 멋지다고 했더니 노부부는 잔잔하게 미소를 짓는다.
(일본 국왕 부부의 미소처럼...)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장으로 올라간다.
장제장은 장례식을 치루고 혼의 영생을 위하여 제물을 바치는 곳.
장제장의 안쪽은 지성소도 있는 걸로 보아 신전의 역할도 한 것 같다.
핫셉스트는 여자였지만 늘 남장을 하고 꽤 통 큰 여장부였던 것 같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보니 여기저기 허물어진 장제장들이 많은데 람세스 2세의 장제장도 많이 파손되어 있다.
지금같이 장례식장을 공동으로 쓰면 좀 좋아??
점심을 먹으러 뷔페 식당으로 갔는데 한국 여행객이 많이 와 있다.
어느 여행사 가이드인지 우리 가이드를 보고 꽤 반갑게 인사를 한다.
카르낙 신전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고왕국 시대에는 파라오 자신이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하고 신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중왕국시대 이후의 파라오들은 그 지위가 신의 아들로 격하되었고, 그 만큼의 힘을 신관들이 받아 파라오를 견제하던
시기였다.
신왕국의 룩소르 시대에는 파라오들이 신전을 지어 신으로부터 내세를 보장받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카르낙 신전.
현존하는 신전중 최대 규모.
테베로 처음 수도를 옮긴 멘투호텝 2세가 지방신이었던 아문(Amen)을 숭배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 후 이집트의 왕이 아문신의 비호를 받는 존재로 변하면서 람세스등 후대의 왕들이 증축을 거듭, 현재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신전이 되었다.
람스 거리- 양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스핑크스의 거리. 2Km떨어진 룩소르 신전까지 연결.
대 광장 - 왼쪽 부분에 제사 장면 외에 옛 신앙을 엿볼수 있는 부조가 있다. 람세스 2세의 석상.
대 열주실- 들어서는 순간부터 같은 간격으로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134개의 열주는 대단히 웅장하고 압도적.
각 열주마다 정교하고 섬세한 부조가 새겨져 있어 기둥만 보아도 이집트 문화를 이해할 정도.
(아멘호텝 3세-세티 1세-람세스 2세 때 완공)
기둥간의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햇살을 받아들이는 창문을 천장에 건축했다 함.
소 광장 - 투트모스 1세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제 4탑문 안쪽에는 핫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가 있고.
아문의 지성소 - 동쪽과 서쪽으로 개방되어 일출과 일몰 때 햇살이 아문신의 지성소를 비출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지성소의 남쪽으로 제사장들이 종교의식을 행하기 전 목욕 재개하던 성스러운 호수가 있고 그 입구에는 신성한 동물로 여겼던
딱정벌레 석상이 있다.
1987년 여기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하여 대단한 호평이 있었다는데....
여기에서, 가지고 갔던 카메라 필름이 다 떨어졌다.
이젠 카메라에서 해방(?)되어 오롯이 관광을 즐길수 있겠다 싶어 홀가분하다.
호텔로 들어와 체크인하고 3시 반에서 6시까지 휴식. 낮잠으로 피로를 푼다.
뷔페로 저녁식사를 끝내고 야경으로 유명한 룩소르 신전으로 이동.
역사상 가장 큰 위기였던 이민족 힉소스의 침입을 거뜬히 물리친 이집트인들은 테베의 아문(Amen)의 가호 덕분이라 생각.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을 건립하여 아문신에게 바침.
"룩소르를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룩소르 카르낙 신전의 화장실."
이렇게 자부심이 강한 룩소르 신전에 들어간다.
카르낙보다 규모는 작지만 은은한 조명빛과 밤하늘의 초승달이 잘 어울어져 운치가 있다.
스핑크스 대로 - 아까 카르낙 신전에서 본 대로가 여기까지 연결.
정문 외벽 -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족과 격투를 벌였던 카데시 전투 장면이 벽화로 묘사.
정문 좌우에 람세스 2세의 좌상 2개와 입상 1개가 세워져 있다. (입상 2개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정문 좌우에 있던 2개의 오벨리스크중 하나는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람세스 2세 광장 - 그 당시에 세워진 성소와 후대에 만들어 놓은 이슬람 건물이 일부를 차지하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룸.
람세스 당시 잦은 건축 설립으로 일꾼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대충대충 기둥을 세웠다는데 오히려 심플하고 힘이 있어 보인다.
아멘호텝 3세의 열주 - 14개가 있고 그 기둥사이에 람세스 2세 석상이 있다.
아멘호텝 3세의 광장, 다음에 신전.
한국 관광객들이 우리 가이드를 알아보고 다가와 사진을 찍는데 우리팀의 표정들이 복잡(?)하다.
그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 구경.
발리 댄스 때 무희가 입던 야한 의상과 모자가 많이 걸려 있다.
실제로 이집트 여자들은 저녁에 남편 앞에서 이런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유혹(?)한다나??
약속된 장소에서 깜짝 이벤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호텔로 가는것.
우리가 다 보지 못한 재래 시장을 마차를 타고 돌아본다.
시장 골목에선 남자들이 시샤(물담배)를 즐기고 있다.
나일강 강변을 따라 달리는데 마부가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코리아" 라고 하니까 "코리아 넘버 원" 하고 엄지 손가락을 위로 향하며 소리친다.
"이집트 good! 룩소르 very good!" 하며 엄지 손가락을 위로 향하며 답례를 했더니 잠시 후
그는 "아메리카 bad!" 하며 엄지를 아래로 향하는데 순간 소름이 확~
2005년 1월16일 (이후사원-콤옴보-아스완의 하이댐-미완성 오벨리스크) 제 7일
자다가 두통이 심하여 종합 감기약을 먹었는데 그후부터는 배가 불안하여 화장실을 두번이나 다녀왔다.
덕분에 시원하게 변을 보게 되어 몸은 가뿐해졌는데.
행여 설사를 하지 않을까 내심 불안해 하며 식당으로 갔는데 TC를 포함한 몇 명이 나와 비슷한 증상으로 밤새도록 화장실을
다녔단다.
각자 가져왔던 햇반을 모아 뜨거운 물에 말아 복통 환자들은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이 사실을 안 호텔 식당 직원이 빵을 주섬주섬 싸주며 이따가 괜찮아지면 먹으라고 내준다.
오늘은 버스로 아스완으로 이동.
룩소르에서 남쪽으로 아스완까지의 거리는 230Km. 3시간 걸린다고 한다.
최근에 아스완으로 가는 길에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지금은 아스완으로 가는 관광 버스를 집결하여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떠난단다. 그래서 우리가 탄 버스도 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앞에 하얀색 버스가 서 있다.
아프리카를 3주간 횡단하는 버스란다.
유럽인 30명 정도가 타있고 그 안에 침대랑 화장실도 있단다.
막 출발하여 나일강 강변을 따라 가는데 열기구 2개가 상공을 유유히 나르고 있다.
아침 일출을 보는 이벤트인데 45분간 150불 정도라나.
나일강 지류를 따라 아스완으로 가는 길.
학교가는 애들이 책가방도 없이 가볍게 걷는 모습, 마차들이 지나가고.
대추야자, 바나나 나무,들판에는 파란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는데 사탕수수 라고 한다.
가이드가 고대왕국 번영기 이후의 이집트 역사에 대하여 강의를 시작한다.
신왕국의 번영기와 혼란기가 끝난 BC 300년대 이미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알렉산더가 침공해 와서 페르시아인을
몰아내고 이집트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알렉산더는 이집트 신전들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신을 공경하여 이집트인들로 부터
호응을 얻게 된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일찍 사망하여 그 후부터 300년간 그리스의 지배를 받는데 이집트의 마지막 왕인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므로써
프톨레미스 왕조가 무너진다.
그 후, 700년간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를 받는 시기에 아스완이라는 도시가 생겨났고 이후사원과 콤옴보사원은 이 때 건축된 사원이다.
그 뒤, 640년대 이슬람 지배를 1200년간 받아 전 인구가 이슬람화 되었으며,나폴레옹의 침략으로 3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 시기에 이집트에 관한 유럽인의 관심을 재조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무하마드 알리가 등장하여 이집트의 근대화를 시도하여 희망이 보이는듯 하다가 그가 사망한 후 영국의 지배를 70년간
받게 된다. 이 시기에 영국은 인도로 가는 지름길을 이집트에서 찾았는데 이것이 바로 수에즈 운하이다.
지중해에서 홍해로 빠져 나가기 위해 인공 운하를 팠는데 이 일에 참여했던 이집트인 12만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1922년 영국으로 부터 독립.
파란만장한 역사. 5000년 역사중 2700년을 타민족의 지배를 받은 나라.
휴게소가 아닌 도로 가장자리에서 20분 정도 쉰다.
같이 움직였던 관광버스가 일제히 멈추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일부는 도로 옆에 있는 농장 뚝을 걷는다. 농장 주인이 나타나 못들어오게 제지를 하고.
우리 버스의 앞 뒤에 있는 한국 관광객을 실은 버스에서 내린 젊은 관광객들이 우리 가이드를 보자 환호성을 지르며 포위(?)
사인을 받고...사진도 찍고....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을까? 언제가 한국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어서라고 하는데....
"한진 관광"으로 여행중이라는 어느 여자분과 얘기를 하게 되었다.
이집트를 여행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던 중 테마세이투어를 알게 되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자기 취향에 딱 맞는
여행 프로그램이었단다.
근데 여행비가 타여행사보다 비싸서 많이 망설여하다가 한진 관광을 택하여 여행중인데 카이로에서 버스로 아부심벨까지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내려 구경하고 있단다.
아부심벨에서는 기차를 타고 카이로로 올라 갈거라며 우리의 일정을 자세히 물어보고 비교하며 비싼만큼 실속이 있다며
지금은 자신의 선택이 후회스럽다고 한다.
다시 버스는 출발. 중학교 교사인 조선생 그룹에서 누룽지를 꺼내 돌린다.
이집트 음식에 식상해 있던 우리 일행들은 대환영. 참 아이디어가 좋다.
구수하고 바삭바삭한 누룽지를....나도 다음에 나갈 때는 이걸 많이 사가지고 가야지....
이후 신전(Edfu temple)
그리스 로마 지배를 받을 때 건축한 신전으로 룩소르의 신전들과 조금 다르다.
신전 한 쪽은 코린트식 기둥 양식을 얹었다.
매의 머리 모양을 한 호루스신을 모신다.
지성소는 붉은색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천정에서 내리쬐는 햇빛에 의해 은색으로 칠한 것 같은 효과를 낸다.
우리 TC가 심상치 않다. 사원 관람 도중 카메라를 의대생 재희씨에게 맡겨놓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나머지 환자들은 상태가 양호하여 버스 안에서 이미 호텔에서 준 빵을 먹기 시작했는데....
콤옴보 신전(Comombo temple)
그리스 로마 시대의 건축.
호루스신과 악어신을 모신다.
건축가인 남자 친구가 이 신전을 지어 받쳤다고 하는데 옆으로는 나일강이 흐르고 앞에는 잘 가꾸어 놓은 농장과 그에 딸린
가든이 있는 전망이 매우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아스완에 도착하여 점심식사.
낫세르 호수에서 잡은 생선으로 만든 생선가스를 먹고 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는 교원공제회 여행사에서 온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소식통에 의하면 이 여행사의 TC와 가이드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고 나서 가이드는 가버렸고 TC가 가이드 역할까지
맡았다 함. 이 TC는 전에 이집트에서 가이드 생활을 하다가 귀국하여 여행사 TC로 다시 여행객을 데리고 이곳에 왔는데 사사건건
가이드에게 참견하다가 싸움이 났다고 한다. 참 힘든 인간이네??
어쩐지 어제 우리 가이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눌 때 참 가벼워 보인다는 인상이 들던데 결국은 일냈군!!!
아스완 댐과 하이댐 구경.
사회시간에 이집트를 공부할 때 늘 시험에 나왔던 수에즈 운하와 아스완 댐.
우리는 이걸 달달 외워 공부했는데 이집트인 가이드는 사회시간에 동양을 공부할 때 주로 중국과 일본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한국은 그저 분단된 나라인데 남한은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는 내용만 공부했다 한다.
1902년에 영국 자본으로 댐을 건설했는데도 자주 나일강이 범람하여 1960~70년대에 더 높은 하이댐을 건설했다.
댐 폭이 3.6Km. 높이 111m. 댐으로 생긴 호수의 길이가 500Km, 호수 면적은 6천만 평방미터.
강의 범람은 막았지만 가장 비옥한 땅이었던 나일강 델타지역이 황폐화 되고 기후가 바뀌었으며 수많은 유적들이
물속에 잠겼단다.
다시 버스에 올라 가이드의 이집트 현대사 강의가 시작된다.
1953년 이집트는 공화국이 되어 나세르 대통령이 집권하여 주변 아랍국가들과 잘 지내고 있었는데 1967년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시나이 반도를 빼앗긴다.
뒤 이어 사다트가 집권하여 미국의 카터정부와 끈질긴 협상으로 시나이 반도를 되찾고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는다.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암살 당한다.
곧 무바라크 대통령이 선출되어 현재 24년간 집권하고 있는데 의료와 교육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주식인 빵 값을 대폭 내려
1/4파운드로 국민들이 사 먹을 수 있게 하였단다.
그는 베일에 가려 언론에 잘 나오지 않으며 그의 가족들도 언론에 공개를 하지 않는단다.
그런 대신 거리에는 그의 초상화가 여기저기 내걸려서 사회주의 국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미완성 오벨리스크(Unfinished Obelisk)
룩소르에 있던 오벨리스크는 이곳 아스완에 있는 붉은 화강암 산에서 깎아 나일강을 따라 배로 운반하여 각 신전에 세웠다는데
굉장히 크고 긴 무거운 암석을 싣고 가다가 사고로 나일강에 빠뜨린 오벨리스크도 매우 많다 한다.
아스완 부근 고대 채석장에 그 당시 만들다 만 오벨리스크가 하나 있어 흥미를 더 해준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돌을 어떻게 다루었고 오벨리스크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수수께끼가 풀린다.
우리나라도 단단한 화강암을 조각하여 불상을 만들고 불탑을 만드는 등 우리 조상들의 손재주는 세계에서도 유명한데
이곳 옛 이집트인들은 화강암을 일정한 가격으로 사각으로 홈을 파고 여기에 나무를 박아 오랫동안 물을 주어
나무가 퉁퉁 불어 암석을 갈라지게 한다.
이렇게 잘라진 암석을 둥글넙적한 화강암 돌(그 옆에 이런 돌이 많이 있다)로 연마를 하여 매끈한 표면을 가진 오벨리스크를 만든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려 만들어진 오벨리스크를 어떻게 배에 까지 운반할 수 있었을까?
통나무를 밑에 깔아 바퀴같은 역할을 했을 거란 추측.
여기에 만들다 만 오벨리스크는 돌이 갈라져서 못 쓰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가 묵을 ISIS island hotel은 나일강의 섬에 있다.(우리의 여의도 같은)
호텔 전용 배를 타고 호텔로 가는데 푸른 강물 위에 흰 돛단배와 거대한 유람선도 떠 있어 볼거리가 많다.
카이로와 룩소르에서 보았던 나일강 풍경하고는 전혀 다른 생동감이 있어 좋다.
체크 인. 숙소에서 1시간 가량 쉬고 있는데 발코니에서 보이는 전망이 너무 좋다.
바로 아래는 테니스 장이고, 푸른 정원과 수영장, 그리고 나일강에 떠 있는 흰 돛단배...그 건너편 멀리 붉은 사막이 펼쳐지고.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로비에 나와 우리 싱글 4명은 주변 정원을 산책한다.
아까 보았던 수영장에서 환상적인 일몰 감상. 붉은 구름 사이로 지는 해가 수영장 물속에도 있다.
다시 배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누비아인들의 식당.
식사는 잘 차려져 나왔는데 별로 맛있게 먹지 못하는게 안타까운지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던 이 식당 지배인인 듯 늙은 직원이 와서
먹는법 시범을 보여준다. 어쩔까??
다시 배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싱글족인 이선생의 긴급 제안으로 호텔바에서 가이드와 함께
싱글들 4명이 맥주를 한 병씩 비우며 담소를 나눈다.
2005년 1월 17일 (아스완-아부심벨-아스완) 제 8일
3시 morning call.
4시 반 출발. 오늘은 국내선으로 아부심벨을 다녀올 예정.
호텔에서 아침 도시락을 준비해주고 TC가 바나나와 오렌지까지 마련해주어 아주 풍성하다.
아스완 공항 로비에서 바나나를 꺼내 먹는데 함선생님이 어느새 매점에서 큰 쟁반에 커피를 날라와 나누어 주신다.
공항 면세점에서 남자 직원이 우리 싱글중의 긴 생머리를 한 이선생과 의대생인 재희씨 한테 유독 관심을 가지고 물어온다.
모녀 사이냐? 결혼 했냐?.. 자신은 누비아 인이라서 머리가 곱슬인데 긴 생머리가 너무 부럽다며.
물건 파는 것에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생머리에 홀딱 빠져 버렸다.
남선생님이 진열장에서 기념품을 꺼냈는데 내 맘에도 쏘옥 드는 것이다.
파라오의 흉상과 로제타석에 쓰여 있던 상형문자가 있는 금속제품.
남선생님이 양쪽 가게를 다니며 흥정하여 결국 6불씩에 사게 되었다.
남선생님은 우리 회원중 연세가 제일 많은 67세. 흰머리를 질끈 동여맨 키 큰 멋쟁이 할머니.
진정 여행의 맛을 아시는 분. 분위기를 늘 재미있게 이끌고 수수한 옷차림과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항상 환한 표정.
긍정적이고 늘 의욕이 넘친다. 그리고 흥정의 명수(?)
오늘도 양쪽 가게를 오가며 흥정을 해서 물건값을 대폭 깍아 놓고는 자신은 쓰윽 빠져 버린다.
덕분에 따라 갔던 사람들이 싸게 물건을 사게 된다.
처음엔 여행을 나갈 때마다 물건을 사서 이 사람 저 사람 선물로 주었는데 별로 애지중지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절대로 사지 않는단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니 물건에 애착심도 없어지고 그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나.
6시 30분 이륙. 수단 국경에 있는 아부심벨까지는 약 350Km. 45분 비행.
가이드가 내 옆에 앉게 되어 이집트 지도를 펼쳐놓고 중동지역의 얘기들로 시간 가는줄 모르고.
7시 15분 아부심벨 도착.
공항버스로 람세스 사원으로 간다.
"람세스" 책에 나왔던 사진 때문에 많은 기대감을 갖고.
사원으로 들어 가기 전 박물관에 먼저 들러 람세스 사원을 옮기는 과정을 사진과 설명을 듣는다.
아스완 하이댐이 건설되면서 길이 500Km의 거대한 인공호수가 만들어지는데 가장 큰 문제가 람세스 신전이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고심 끝에 신전을 통째로 바위산 위쪽으로 옮기기로 결심한다.
사암 바위산 절벽을 깎아 만든 신전 여러 곳을 구멍을 뚫어 그 안에 송진 덩어리를 쏟아부어 신전의 바위돌을 단단하게 굳힌 뒤
거대한 쇠줄톱으로 신전을 1036개의 돌 불록으로 잘랐는데 그 하나의 무게가 30톤.
신전을 옮길 절벽 위쪽의 바위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돔 2개를 만들어 덮어 단단한 인공산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신전이 재조립 되어 1969년 2월에 완벽한 모습으로 재탄생!
드디어 람세스 석굴 앞에 서다!
신전 입구에는 4명의 람세스 거상(길이 20m)이 있는데 얼굴 형상이 모두 다르다.
처음 신전을 건축할 때의 자기 모습부터 점점 늙어가는 모습을 표현하다가 마지막 거상에 이르러서는 완공 당시의 늙은
자기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거상 위쪽의 절벽은 당시의 불록들을 옮겨다 조립한 자국이 보인다.
웅장한 석굴안으로 들어가면 10m이상 크기의 파라오들이 이 열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안내해주며 벽에는 파라오의 용맹을
나타내는 그림과 자신을 신격화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람세스 대신전 옆에는 끔찍히 사랑했던 부인 네페르타리를 위한 아담한 소신전이 있다.
신전 입구 정면엔 람세스 2세의 입상 4개와 네페르타리의 입상 2개가 있고, 발치에는 그들의 자녀가 새겨져 있다.
석굴 안의 벽에는 카데시 전투 장면과 네페르타리가 신과 교분을 나누며 종교 의식을 행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룩소르의 신전들은 평평한 지면에 돌을 깎아 건축했는데 이곳은 암석을 파서 만든 암굴식 신전으로 누비아 지역에서만 발견된단다.
그런데 람세스 2세는 왜 변변한 마을도 없는 이곳 아부심벨에 거대한 신전을 건립했을까?
당시 금과 상아 등이 풍부했던 누비아 지방의 정복과 관련이 있을거란 추측인데 내 생각엔 순진한 누비아인들이 람세스의 거상과
신과 동일시 했던 그림을 보고 주눅이 들어 고분고분해져서 람세스의 권력강화에 일조하지 않았을까?
다시 버스를 타고 낫세르호 부둣가에 도착.
강렬한 햇빛을 피해 그늘로 들어간 곳이 누비아인들의 물고기 경매장이었다.
까만 곱슬머리와 까만 피부, 뚱뚱한 아저씨들이 한창 경매를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동양 아줌마들 16명이 들이닥치니
우리들을 보느라 시선을 빼앗겨 일이 수월치가 않은 모양.
경매장 우두머리인 듯한 까만 아저씨가 우리들에게 영어로 궁금사항을 물어온다.
금방 친해져서 경매에 오른 싱싱한 생선들이 여기저기 퍼덕일 때마다 우리가 환호를 보내고 깔깔깔 웃어대고...
그 사람들 신이 나서 더욱 웃기고...나중엔 같이 기념 사진도 찍고.
짧은 10분동안 생각지 않게 그들과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유람선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 낫세르 호. 길이가 500km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30km인데....
아스완의 하이댐에서 시작되어 수단 국경인 이곳까지 350km에 수단에도 150km가 들어갔다 하니.
하이댐 건설 때 이웃나라인 수단과 많은 마찰이 있었을 것이다.
푸른 호숫물과 파란 하늘 그리고 누런 사막으로 둘러싸여 2시간동안 망중한을 즐긴다.
가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먹다가 갑판에 올라가 망망대호를 바라보며 행여 악어가 발견되지 않을까 비치된 망원경으로 샅샅히
훝어본다. 낫세르호에는 악어가 많단다.
전에는 나일강을 따라 하류쪽으로 이동하였는데 하이댐이 건설되고 나서는 댐을 넘지 못하여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는데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배에서 내릴무렵 도시락으로 어질러진 선실을 말끔하게 치워놓은 조선생님 팀.
초임 때 만난 후 20 여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관계를 유지하며 수원시 각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단다.
어쩐지 처음 만날 때부터 뭔가 땡기는가 했더니 같은 경기도 교사라는 인연 때문이었나??
그들은 한달에 15만원씩 적금을 부어 방학 때 여행을 떠나는데 이번이 두번째란다.
룩소르에서 마차를 타고 호텔로 들어갈 때 굉장히 신나하면서 역시 테마세이는 다르다고 감격해 했었다.
이들의 여행태도는 참 진지하다.
카이로 박물관에 관한 책을 이미 읽고 오는가 하면 이집트 신화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갖고 있어 왕의 무덤에서 우리에게
재미있게 설명도 해주었다.
다시 아부심벨 공항에서 아스완행 비행기에 오른다.
마침 창가에 앉게 되어 지도를 펼쳐놓고 내려다 보이는 지형을 맞추어 본다.
낫세르 호수를 빼놓으면 모두 사막 뿐. 사막엔 길도 없다.
광활한 면적에 사막이 96%를 차지하는 이집트.
지도를 보고 있으면 참으로 simple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아무런 지명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를 나일강이 아래에서 위로 그어지고 그 주변만 초록색깔과 도시 이름이 써있다.
사회시간에 지도를 그릴 때 아주 쉽게 그렸을 것이다.
13시 50분. 아스완 도착.
어제 점심 먹었던 그 식당에서 점심식사.
소고기를 푹 익힌 수육이 나와 오랫만에 맛있는 식사를 했다.
호텔로 돌아와 1시간 정도 휴식.
나일강에서 흰돛단배(펠루카)를 타고 일몰감상.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움직여 가는 것이 아주 신기하다.
조각배를 탄 어린애들이 옆에 와서 노래를 불러준다. 녀석들에게 가지고 온 과일을 안겨준다.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과 카이로의 나일강보다 훨씬 깨끗하고 푸른 물, 하얀 돛단배들,강변의 푸른 숲,
그 너머의 황량한 사막....이런 광경을 또 어디에서 찾으랴!
돛단배에서 내려 재래시장 구경.
오아시스에서 먹었던 대추야자가 여기서는 바싹 말라서 매우 질기다.
조선생이 계피를 사길래 따라가 맛을 보니 향이 좋고 달큰하다.
나도 생각지 않게 계피를 500g 샀다. 8불. 생강차 끓일 때 함께 넣어 봐야지.
식료품 가게에는 말린 과일들과 여러가지 향료,식용 색소들을 판다.
옷가게에는 면으로 만든 쇼올을 파는데 가게마다 부르는 값이 천차만별.
흥정을 하다가 여행 첫날 TC가 사서 나누어준 보라색 면쇼올로 만족하기로 했다.
기념품 가게에도 숱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손님들을 잡아 끈다.
아스완을 시장의 도시라고 한다던가? 1시간 반을 계속 걸어 약속된 장소에 오니 기진맥진.
그냥 털썩 주저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각자 쇼핑한 물건들 풀러 구경하고.
각 지역마다 있는 재래시장 구경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배를 타고 다시 어제 저녁에 갔던 누비아 식당으로 간다.
식사를 하며 민속음악과 춤공연 관람.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찬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
오늘이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밤.
나 혼자 와인을 쏠까 했는데 내 룸메이트가 같이 하자고 하여 아까 호텔에서 나올 때 야외에서 와인파티를 하기로 직원에게
테이블 셋팅을 부탁했는데 너무 추워서 그냥 Bar에서 와인을 마시며 한사람씩 돌아가며 여행소감을 말한다.
그리고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에게 부탁하여 생일을 맞은 함선생님을 위한 축하 노래도 하고.
모두들 객실로 올라가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좀 더 있을 눈치이다.
그리하여 다시 테이블을 하나 차지하고 마주 앉아 사카라 맥주를 한 병씩 시켜놓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밖에서 기다리던 내 룸메이트도 다시 합석하고 .....
2005년 1월 18일 (아스완-카이로-인천공항) 제 9일
4시 반 morning call.
5시에 가방을 문 밖에 내놓고 식당으로 간다.
이 호텔에서 이틀밤을 잤지만 아침식사는 오늘에서야 제대로 챙겨 먹는다.
음식을 골고루 날라다 먹으며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과 높은 천정, 예쁜 샹들리에의 불빛등 격조 높은 호텔의 시설들을 둘러보며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한다.
5시 45분 출발.
국내선으로 카이로로 이동하여 인천공항행 비행기를 갈아탄다.
아스완 공항 검색대에서 내 손가방이 보안 검색대에 걸렸다.
여지껏 숱한 검색대를 거쳤지만 이런적은 없었는데.
가방 옆에 붙어 있는 지퍼를 열어 보란다.
액정 화면에 찍힌 괴물체(?)를 보더니 볼펜을 꺼내란다.
뚜껑을 열고 모두 분해. 다시 조립하여 종이에 글자를 썼더니 그제서야 통과 명령이 떨어진다.
금속 볼펜이나 만년필 속에 폭탄을 숨겨 들어갈까봐 철저히 검색하는 것 같다.
이집트는 관광 수입이 경제의 60~70%를 차지하는 나라여서 그런지 공항은 물론 박물관이나 호텔 출입구, 유적지에도 모두
검색대를 통과해야 할 정도로 보안이 아주 철저하다.
카이로행 기내로 들어간다.
이미 들어와 앉아있던 승객들의 큰 눈들이 일제히 우리를 보고 있는데 깜짝 놀랐다.
까만 피부와 조폭(?)같은 큰 체구의 남자들. 여자는 우리 뿐.
아침 일찍 카이로로 출근하는 공무원들 같다고 후에 가이드한테 들었는데 이집트 여성은 한 명도 없다.
7시 25분 이륙하여 8시 55분 카이로에 도착할 때까지 함선생과 김선생 사이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데도 앞에 앉은 시커먼 아저씨들이 가끔씩 뒤돌아 보는걸로 보아 도무지 신경이 쓰이는가 보다.
하긴 내 옆에 외국인들이 앉아 내가 모르는 언어로 신나게 이야기하고 웃어대면 참 싫다. 꼭 나를 보고 흉보는 것 같아서....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아 다시 국제선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교통체증이 매우 심하다.
카이로 국제 공항.
가이드는 공항 로비로 들어갈 수 없어 입구에서 이별을 해야 한다.
연세 많은 남선생님이 대표(?)로 가이드와 포옹.
난 악수를 청하여 이별의 아쉬움을~ "꼬옥 행복한 가정 이루세요."
그는 이 말의 의미를 안다. 나하고 숱한 얘기를 나누면서 사적인 얘기도 스스럼 없이 했다.
이번 5월에 다시 결혼하면 자식을 낳고 부모 형제와 화목하게 지내는 전통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작년에 처음 테마세이의 마사장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감동적으로 말했다.
그동안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한국 여행사의 관행에 대하여 늘 아쉬움을 갖고 있던 차에 마사장과의 첫 만남에서 이제서야 제대로
된 여행사를 만났구나 하고 매우 기뻤단다.
테마세이투어는 5년 안에 한국에서 큰 여행사로 성장할 것으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하여 내가 웃으면서 이 말을
꼭 마사장에게 전하겠다고 농담을 했다.
테마세이로 오는 고객들은 쇼핑을 요구하지 않고 재래시장을 찾아 즐길줄 알고 공부를 많이 해 와서 진지하게 관광을 하여
가이드로써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어릴적부터 어머니의 가르침을 많이 따랐다는 그는 돈에 대한 욕심이 없고 정직하고 반듯하게 잘 교육 받은 이집트의
중상류층의 자제인 것 같다.
이집트 사회가 이런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생긴다.
11월부터 4월까지 관광철에는 가이드로 바쁘게 활동하지만 나머지 날들은 이집트를 찾는 VIP들의 한국어 통역으로 뛰고 있는
그는 한국과 이집트간의 가교역할도 충실히 할 것으로 믿는다.
- 람세스의 나라 이집트! 에즈 딘, 당신이 있어 더욱 위대한 나라로 다가 옵니다 -
출국 수속을 끝낸 후 면세점에서 큰 맘 먹고 콤펙트를 하나 샀다.
화장을 하지 않는 편이라 국산 중저가 콤펙트를 쓰는데 이렇게 여행을 나오면 버스 안에서도 콤펙트를 사용할 때가 종종 생기는데
전엔 무심코 그냥 지나쳤던 것이 요즘엔 왠지 창피한 생각이 들어 바꾸고 싶어졌다.
샤넬 콤펙트 35불. 가지고 갔던 100불을 한푼도 안 남기고 다 썼다.
11시 30분 카이로 공항을 이륙한 대한 항공.
날씨가 청명하여 아래가 환히 다 보인다.
카이로에서 윗쪽으로 나일강을 따라 드넓은 평야지대. 저기가 삼각주 델타지역이다.
가이드가 델타지역이 남한 면적보다 조금 작다 했는데 정말 한참을 델타지역 상공을 나른다.
내 지도와 기내의 앞 화면에 나오는 현재의 위치를 비교하며 계속 창 밖을 응시한다.
지중해,흑해, 아프가니스탄의 눈덮인 산악지대.....
기내식이 나온다. 비빕밥. 정말 꿀맛이다.
레드 와인을 마시며 가방에서 "람세스"를 꺼내 읽는다.
올 때 마두 도서관에서 빌려 중간정도에서 멈추었는데 마침 세티 1세가 사망하여 왕가의 계곡에서 장례식을 치루는 대목부터 읽게
되었는데 눈앞에 계곡이 좌악 펼쳐지며 참 재미있게 읽어 내려간다.
2005년 1월 19일 (인천공항) 제 10일
"람세스"를 읽다 눈이 아프면 눈을 감고 음악에 심취해 있다가, 또다시 책장을 넘긴다.
3300년전의 이집트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선다.
12시간의 비행끝에 새벽 4시 50분 인천공항 도착.
짐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남선생님과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갈 곳은 많은데 나이는 자꾸 먹어가고, 초조해진다면서 3월에 중남미 지역을 여행할거라고 하신다.
20일간의 여행에 체력이 지탱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여행하고 싶다고.
다른것에는 되도록 돈을 쓰지 않는데 여행만큼은 아깝지 않게 쓰고 싶단다.
여행 마니아인 선생님들 덕분에 이번 여행이 아주 풍성하였다고 화답하였더니 깔깔깔 웃으시며
나이가 먹으면 마음이 허(?)해서 자꾸만 말이 많아진다고 하신다.
입국 수속도 끝나고 로비에 다 모였다.
헤어져야 할 시간.
TC가 마지막 멘트를 한다.
이번 여행에서 보물을 찾았느냐고??
각자 나름대로의 보물을...
일산행 첫 버스에 올랐다.
휴대폰은 아까 도착했을 때부터 켜놓았는데 지금까지 망설이고 있다.
남편한테 전화를 할까? 새벽잠을 깨우기가....
그러나 무엇보다 떠나올 때의 남편의 얼굴표정이 떠올라 다시금 섭섭한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신기하게도 이집트에서의 열흘동안은 여행에 몰두하느라 한번도 집생각을 안했었는데.
태영 프라자 정거장에 내려 택시를 탔다.
휴대폰이 울린다.
남편의 목소리.... 내 뻣뻣한(?) 응답.
연로한 운전 기사가 한 마디 거든다.
" 바깥 양반이 전화했나 봐유~. 왜 같이 여행하지 그랬슈~. 뭐니뭐니 해도 나이들면 그저 떨어지지 말구 같이 다녀야 해유~"
여행 후기:
이렇게 여행은 끝났고.
한동안은 남편과 잘 지내다가도 이집트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핏대(?)를 올리며 그 때의 섭섭한 감정을 토로 했는데
지금은 TV를 보다가 이집트나 람세스가 나오면 나를 불러 같이 시청한다.
이번 여행에서 찾은 보물은 아무래도 사람인 것 같다.
나의 앞으로의 삶은 그들을 본보기로 삼고 희망차게 살고 싶다.
여러날에 걸쳐 지루한 여행기를 끈기있게 읽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진도 곁드렸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아직 CD가 도착하지 않아서 보내드리지 못했어요.
한달동안 간직했던 이집트는 이제 머릿속에서 다 빠져 나갔어요.
이젠 밀렸던 신문이랑 빌려놓은 책들을 읽어야 겠어요.
안녕히 계십시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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