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베트남,캄보디아 여행기 (2003년 8월 8일~ 8월 14일)

럭비공2 2013. 8. 27. 22:10

요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달래려고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전에 이메일에 저장해 놓았던 여행기를 이 참에 블로그에 올리며

마음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여름 휴가는 잘 보내셨나요?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개학을 맞아 다시 바쁜 생활이 시작 되었겠죠?

저도 이번 여름에 동남아를 여행하고 돌아왔어요.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북유럽을 여행하기로 남편과 약속하였는데 10일 이상 학교를 비우기가 부담스럽다 하여 1주일짜리 동남아를

가기로 하고 준비하던 중 갑자기 5박 6일 출장 명령이 떨어져 혼자 여행하게 되었는데 마침 선배 S가 동행 하겠다 하여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다녀온지 1주일이 넘었는데 헝클어져 있는 제 머리속을 정리할겸 여행기를 써서 7회에 걸쳐 올리려 합니다.

심심풀이로 읽어주세요.

 

2003년 8월 8일~14일(6박 7일)  

일정: 베트남의 하노이-하롱베이-캄보디아의 앙코르-베트남의 호치민

 

 

 

제 1탄   2003년 8월 8일 (인천공항-베트남의 하노이)

남편이 출장지인 광주의 곤지암에서 일과를 끝내고 밤을 달려와 오늘 아침 인천공항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광주로 갔다.

딸은 어제 강의가 끝나자 마자 대전에서 올라와 일요일까지 집에 있겠단다.

항상 집을 떠날 때마다 연로하신 시어머니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한시름 놓게 되었다.

고마운 가족들....

 

아침 8시.

공항에서 1주일간 여행을 같이 할 테마세이 투어 TC인 강 대리와 여행자들을 만났다.

3팀이 가족들이고,1팀은 선후배간이라는 미스 DOTOR,그리고 우리. 모두 13명.

짐을 부치고 나서 시누이부부를 만났다.

여름 휴가를 중국에서 보낼려고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시간에 떠나게 되어 탑승수속 중이었다.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면세점을 구경하는데 모두 바겐세일 중.

가게마다 출국자들로 북적북적.

선배 S는 "오휘"라는 화장품을 한 세트 사들고 매우 흡족해 한다.

세일해도 만만찮은 값인데... 덕분에 나도 sample을 받아 여행내내 내 얼굴을 호강시켰다.

탑승하지 않은 손님을 찾는 안내방송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가 했더니, 공항 직원이 직접 가게마다 뛰어다니며 탑승에 늦은 손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찾는다.

 

우리가 탄 비행기에도 2명이 아직 오지않아 지체되고 있다는 멘트가 나오고.

10 여분이 지났을까,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들어오는 엄마와 아들인 듯, 두리번 거리며 자리를 찾는다.

베트남 항공. 작년에 유럽갈 때 탔던 KLM보다 작지만 의자 사이가 넓어서 좋다.

하이얀 바지에 붉은 자주색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 승무원이 너무 예뻐서 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옆트임이 겨드랑까지 깊게 트여서 몸을 숙이면 겨드랑 밑의 맨살이 살짝 보여서 꽤 색시하게 보인다.

그런데 앞 뒤판에 지퍼가 없어서 어떻게 옷을 입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앞의 어깨 부분에 숨겨진 지퍼가 있단다.

3시간 45분간 비행하는 동안 간식 먹고,식사 하고,음악 들으며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여행자료를 읽다보니

어느새 하노이의 노바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 수속을 하는데 공항직원이 모두 군인들 처럼 매우 경직된 태도와 쑥색 제복의 어깨와 모자에 빨간색 완장이 사회주의 국가임을

실감나게 한다.

여권을 한장 한장 넘기며 힐끗힐끗 쳐다보는 모습이 마치 범인을 색출하는 듯한 눈초리가 거부감을 준다.

이래가지고는 어떻게 관광객을 끌어 들인담.....

 

마중나온 가이드와 인사하고 관광버스에 오른다.

베트남은 시차가 2시간이 늦다. 현지 시간은 1시가 조금 지난 시간.

거리엔 자전거 행렬이...여자들은 모두 스카프나 마스크로 복면을 하고 달린다.

공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흰 피부를 선호하는 터라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서 란다.

 

하노이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을 때는 월맹의 수도였고, 통일된 뒤에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GNP가 300불. 거리의 건물들이 매우 재미있다.

암스텔담의 건물 마냥 도로 쪽의 건물 폭이 매우 좁고 뒷쪽으로 길게 지어져 있다.

옆집과 벽이 딱 붙어 5층으로 올려져 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통일이 되고 나서 국가에서 집 지을 땅을 분배 했는데 도로쪽으로 4m,그 뒷면으로 13m씩 잘라 주었단다.

그래서 집의 크기가 모두 똑같고 유럽풍의 기둥과 장식,덧문이 있다.

90여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 베트남 고유의 건축물은 사라졌고 프랑스식 건물들을 세웠단다.

또 재미있는 것은 유럽식 건물 꼭대기에 있는 옥탑방은 중국 절과 비슷하게 만들어져 조상 신을 모신단다.

그리고 1~2층의 발코니는 쇠창살을 하여 매우 답답하게 보였다.

이들은 돈을 은행에다 저축하지 않고 집에 금고를 두고 여기에 돈과 금을 보관하기 때문에 단단하게 쇠창살을 하여 보안에

철저하단다.

 

대중식당에서 쌀국수(퍼 PHO)를 먹었다.

열두어살 정도 되는 여자 애들이 서빙을 한다.

 

유교 유적이 남아있는 문묘와 호수가에 있는 옥산사(조상신을 모신 사당)를 둘러보는데 어찌나 무더운지 숨이 콱콱 막힐 지경이다.

그늘에 들어가도 찜통같은 무더위는 여전한데 정자에서 장기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노인들의 표정은 무아지경에 빠져있는 듯....

하노이는 24개의 호수를 가지고 있는 호반의 도시라고 한다.

우기가 끝날 즈음이어서 찜통 더위가 극에 달한듯. 우리나라의 무더위 보다 한 수 위다.

 

재래시장에서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식료품 가게와 옷 가게를 둘러보는데 우리의 60년대의 동대문 시장을 보는 듯.

시장을 벗어나 뒷골목으로 나가 보니 노점상이 나온다.

생전 처음보는 야채와 과일을 신기하게 들여다 보는데 할머니들이 말린 과일을 맛 보라며 준다.

이 무더위 속에서도 돼지고기를 노상에서 그냥 팔고 있다.

한쪽에서는 쌀국수를 말아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도....

 

출퇴근 시간에는 관광버스의 시내 진입이 금지되어 있어 시클로를 타고 거리구경을 나서기로 했다.

자전거에 개조된 의자를 올려 한 사람씩 타면 등뒤에서 페달을 돌려 움직이게 되어 있다.

처음엔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 모습이 안쓰러워 내몸마저 움츠러 들었다.

퇴근길의 자전거 행렬 속에 우리도 끼어 하노이 시민들의 표정과 사는 모습을 엿볼수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사람들이 건물밖에 나와 앉아 있는 모습, 저녁이 되어 건물 안에 전기불이 켜지니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좁은 가옥 구조 속에도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고, 1층엔 대체로 가게나 창고로 쓰는듯 하고,2층부터 거실과 침실이 있는 듯.

또, 다닥다닥 붙어있는 옆집 사이사이에 쪽문이 보이고, 쪽문 안으로 긴 복도가 이어져 (4m*13m)의 가옥구조를 효율성 있게

이용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나중에 가이드 말에 의하면 너무 무더운 날씨라 집안의 어두침침하고 습한 기운이 싫어서 온종일 건물밖 거리에 나와 앉아 있다가

밤늦게 잠자러 들어 간단다.

그러다 보니 부엌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고 3끼를 모두 밖에서 해결 한단다.

 

저녁식사는 베트남 정식을 먹게 되었다.

여러 코스 요리가 나오는데 그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짜조(CHAGIO 다진고기,버섯,당면,야채등을 rice paper에

싸서 튀긴 요리)도 나오고...

매우 푸짐하고 입에 잘 맞는다. 특히,도마토가 요리 재료로 많이 쓰인다.

서빙하던 어린 여자 애들이 벽에 붙어서서 우리의 식사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호텔로 들어와 체크인 하고 다시 나와 수중 인형극을 관람 했다.

세계 인형극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외국인들로 꽉찬 무대의 왼편에는 베트남의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무대는 큰 수조로 되어있어 물 위에서 인형들이 연극을 한다.

베트남의 역사를 표현하는 것 같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여장을 풀었다.

천장에 내재되어 있는 에어컨이 소리없이 가동하여 내부를 시원하고 쾌적하게 만들어 준다.

 

 

 

 

제 2탄   2003년 8월 9일 (하노이-하롱베이)

7시 morning call.

이틀간 잠을 제대로 못자다가 간밤 참 깊게 잠을 잤다.

역시 난 여행 체질인가 보다.

몸단장을 끝내고 1층 식당에서 뷔페식 아침식사.

서양인들은 coffee 1잔에 계란이나 빵 1조각으로 간단히 끝내지만, 난 부지런히 날라다가 빵빵하게 배를 채운다.

야채 샐러드- 빵1조각,요플레+시리얼,tomato 쥬스- 오믈렛,baked tomato,bean- fruit- coffee.  

여행내내 아침식사의 패턴을 유지했다.

 

8시 출발.

오늘은 하노이에서 동북쪽으로 180Km떨어진 쾅닌성에 있는 하롱베이에 간다.

아침 출근 시간대의 거리 풍경과 농촌 지역을 보게 되어 기뻤다.

큰 대로에 자전거,오토바이,자동차가 뒤섞여 가는데 무질서 속에서도 용케 질서를 찾아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오토바이 타고 가는 아가씨가 어찌나 예쁘던지...

길가에는 바게뜨 빵장수가 줄지어 있고.(꼭 우리의 아침식사용 김밥을 팔 듯) 프랑스의 영향인 듯.

3시간 반을 가는동안 guide의 설명이 이어진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속에 경제분야는 시장원리를 도입하였는데(중국처럼) 외국인이 여기에 와서 사업을 하려면 베트남인

소유에 외국인은 자금을 대도록 되어 있어 자칫하면 사기당할 수 있다 한다.

그리고, 대중버스의 90%가 대우차인데 버스운영 관리는 부산의 운송업체에서 맡고 있단다.

관광버스는 거의 현대차가 맡고 있고, 자가용은 거의 대우와 기아차. 대우차는 이곳에 공장이 있어 가격 경쟁력에서 우세.

간간히 한글이름이 들어간(롯데마트,신세계등) 자동차가 보여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데 러시아제 신차보다 한국산 중고차가

가격도 높고 매우 선호 한단다.

특히, 한글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신용도가 높고 도색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나.

경제 분야는 한국을 모델로 삼고 있다 하니....

 

도심을 벗어나니 벼논이 펼쳐진다.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세계 제 2위의 쌀 수출국이라고 한다.(1위는 태국)

논 한귀퉁이에 간간히 연꽃이 보이는데 베트남의 국화가 연꽃이라나.

평지에 공동묘지가 보인다. 프랑스 공동묘지와 비슷.

1년간 수장(어디든 2m정도 땅을 파면 물이 나온다)하였다가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신다고 한다.

논 한가운데 조상묘지가 있는 것도 이색적.

전 국민의 80%가 불교신자이면서도 집에는 조상신을 모시고 자기 논에는 조상묘지를 두어 지극정성 돌본단다.

 

 

농촌으로 들어갈수록 주택들이 깨끗해 보인다.

연 0.6%의 자금을 지원하여 농촌에 주택을 새로 짓도록 장려하고 있단다. (우리의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지붕을 바꾸듯)

실제로 이곳 관리들이 우리의 새마을 운동본부에 와서 연수를 받았다고 한다.

거리쪽 앞면만 페인트칠을 하고 옆면은 시멘트 그대로 놔두었는데 옆집이 들어서면 어차피 옆 벽면에 대고 또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베트남은 토지 소유권자가 국가이고 국민은 그 토지를 이용하고 매매할 수도 있다.

단,유사시에는 국가에서 그 토지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값싸고 질좋은 노동력(하자율 0%)을 가진 발전 가능한 나라이다.

세계 경제불황시 내수시장(1억명에 가까운 8천만명)이 우수하고 산술능력이 특히 우수하단다.

하노이 대학이나 사이공 대학은 세계 100대 대학에 들만큼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국민의 교육열이 매우 높단다.

전 인구의 10%인 800만명 정도만 부를 누리며 살고 부정부패가 심하여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대학 나오는 것 밖에

기대할게 없단다.

전 인구의 80%가 거주하는 농촌에선 대개 3남 3녀의 자녀를 두는데 그 중 1명만 선택되어 도시로 나가 대학을 마칠 때까지

다른 형제들은 희생하게 되는데, 대체로 도시로 나가 식모살이를 하며 선택된 1명을 뒷바라지하게 된단다.

(우리의 60~70년대 처럼)

 

 

하노이시 500만, 호치민시 800만명의 도시민들은 가족중심으로, 퇴근하면 곧장 가족들과 저녁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한다.

교육제도는 프랑스식으로 인문,사회분야를 중요시하고 중학교까지 무상.

입시경쟁이 치열하고 졸업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문맹률 0.3%.

 

 

하노이:우리교민이 500명 정도(상사직원,대사관 가족)

호치민:우리교민이 1000명 정도(최근엔 상업,경제사범이 피신해와서 교민사회를 혼탁하게 함)

이곳에선 대우 총수였던 김우중씨를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며 지금도 이곳 하노이를 드나들며 경제에 관여한다고 한다.

하노이 옆에 신도시를 개발중인데 내가 사는 일산을 벤치마킹하여 김우중씨가 관여한다고 함.

베트남은 유교 문화권이고 예의범절과 상하관계가 엄격하여 한국의 농촌 총각들의 배우자로 이곳 여성들을 선호한단다.

성게같이 생긴 과일인 쬼쬼을 먹으며 guide의 성의있는 강의를 듣다보니 벌써 하롱베이(HALONG BAY)에 도착했다.

 

배를 타기위해 입구에서 기다리는 동안 현지 관광객인 여성들을 관찰했다.

우리보다 약간 검은 피부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 군살 없는 몸매, 남방 계열의 동그란 눈, 약간 들창코, 아담한 키(158Cm안팎),

키에 비해 long다리. 참 매력적인 모습이다. 뚱뚱한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가 잘 어울리는가 보다.  물론, 지금은 평상복을 많이 입었지만...

 

배 한 척을 전세내어 우리 팀만 타고 선상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게와 새우찜, 짜조, 야채볶음, 밥등 어제 저녁 메뉴와 비슷. 푸짐하게 먹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세계의 8대 절경 ,동양의 3대 절경에 맞게 내가 신선이 된 듯 仙境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 마치 거대한 호수같다.

석회암으로 된 3000여개의 섬이 오랜 세월 풍화되어 기이한 모습으로 마치 중국 회화를 보는것 같다.

이 지역을 지배하던 용이 도적들이 훔친 보석을 물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입에 물었던 보석을 뱉아 보석 하나하나가 섬이 되었다나.

이 용이 베트남을 지켜주고 있다는데.

 

13C 몽고군이 하롱베이에 쳐들어왔을 때 이곳을 지키던 쩐 장군이 섬들사이의 좁은 수로에 말뚝을 박아놓고 몽고의 수군을 유인,

몽고의 배가 말뚝에 걸리자 동굴에 숨어있던 군사들이 쏟아져 나와 몽고군을 섬멸. 몽고군은 베트남 침략을 포기했다고 한다.

 

1964년 미군이 하롱베이가 있는 통킹만에 함포사격으로 베트남 전쟁이 시작 되었지만 결국은 하롱베이 수호신의 희생양이 되었다.

 

띠똑섬의 450계단을 올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극치.

전에 내동생이 이곳을 다녀와 보내준 사진을 내 computer의 바탕화면에 깔아 한동안 즐겼는데....

호치민이 러시아의 공군 장군인 띠또프에게 이 섬을 하사 했다나.

러시아의 우주비행에 베트남인을 동승시키는 조건으로.  나중에 불발로 끝났지만...

 

다시 배를 타고 석회 동굴을 구경하고, 쪽배로 갈아타고 좁은 해식 동굴을 통과하여 섬을 올려다 본다.

바로 해수면 높이인 쪽배에서 바라보는 정경은 황홀 그 자체. 내 옆에 앉은 doctor는 발을 바다물에 담근채 즐기고.

수상가옥도 바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천진한 아이들, 강아지, 기념품 가게, 가두리 양식....

그런데 기이한 건 물새가 없다는 것. 석회암 지질이라 물고기가 별로 없다는데 도무지 과학적으론 이해가 안된다.

 

다시 항구로 돌아가는데 석양이 그지없이 아름답다.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고, 갑판에 앉아 상념에 잠긴다.

 

6시쯤. 하롱베이를 오가던 배들이 모두 항구로 모여드는데 모두 밤색 목선들이다.

저녁 식사는 또 베트남 정식. 이제는 슬슬 물려온다.상큼한 김치가 먹고 싶다.

 

호텔 체크인. 지은지 3개월 되었다는데 객실이 널직하다.

커튼을 젓히니 하롱베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 3탄   2003년 8월 10일 (하롱베이-하노이-호치민-캄보디아의 시엠립)

5시 morning call.

창문에서 바라보는 하롱베이의 아침풍경. 바다도,배도,거리도 고요함.

비치 파라솔이 짚풀로 엮어져 있어서 운치가 있다.

짐을 로비에 내려 놓고 14층 전망대에서 하롱베이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식사.

 

6시 30분 출발. 오늘은 일정이 빡빡하다.

하노이로 가서 오전 일정을 끝내고 국내선으로 호치민 공항에 도착.

다시 국제선으로 갈아타고 캄보디아로 간다.

 

3시간 반을 달리는 도중, 들판에 잠깐 내려 논둑길을 걸어본다. 방아깨비가 지천으로 날아 다닌다.

논에 농약을 적게 친다는 증거. 건드리면 오므라드는 식물(신경초)에 정신이 팔린다.

황소와 물소들이 한가로이 둑길을 지나가고,농부들의 일하는 모습이 보이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부스마다 웬 직원이 3명씩이나 들어가 있을까? 넘쳐나는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함이라나.

지금 우리가 탄 버스에도 한국인 guide와 베트남人 운전기사와 guide보조가 있다.

꼭 현지인을 달고 다녀야만 가이드 허가를 해준단다.

우리 guide 는 외대 베트남어과를 나와 호치민시에서 유학, 하노이에서 guide생활 1년차, 28세 총각.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안내하며 연신 물을 마셔대며 베트남에 대한 지식을 몽땅 전해주려고 애쓴다.

 

10시쯤 하노이의 호치민 묘소에 도착.

검문 검색이 삼엄하다.

카메라,휴대폰,큰가방 반입이 금지되어 있고,내 조그만 bag도 투시기를 통과했는데도 묘소 입구에서

다시 open 해줄것을 요구할 정도. 일반인과 함께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호치민은 "호 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베트남인에게 친근한 존재.

베트남의 통일과 독립을 이룬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1969년에 사망.원래 화장을 원했는데 주변에서 베트남의 단결을 위한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주길 원했고,

그 결과 러시아의 레닌처럼 무덤에 박제되어 안치되어 있다.

1년에 한 번씩 시신을 러시아로 가져가서 다시 방부처리 해왔는데 최근에 국내 의료진에 의해 처리되고 있단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혼탁한 정치에 이용되고 있음에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묘소 부근에 호치민 박물관, 대통령 궁(지금은 영빈관), 전쟁시 업무 보던 곳, 목조로 지어진 단촐한 생가,

한기둥 사원등이 한 블럭 안에 공원처럼 연결되어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 주변엔 각국 대사관과 정부기관들이 자리잡고 고급스런 저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원안에서 떠들썩한 한 무리의 붉은 스카프를 목에 두른 교복 차림의 학생들을 보았다.

하노이로 수학여행 온 호치민시의 학생들이라는데 표정이 밝고 매우 귀티가 나며 천방지축으로 까불어댄다.

하노이 학생들과 호치민시 학생들.... 통일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저렇게 다른데,

우리나라가 통일되면 남쪽 아이들과 북쪽 애들은 얼마나........

 

점심 식사는 한인 타운이 형성된 상가의 식당에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먹었다.

며칠만에 먹어보는 한식에 모두들 흡족해 한다

상가안에 있는 슈퍼에서 쟈스민차와 베트남이 원산지인 커피를 사고 US달러로 계산하는데 0.5달러를 베트남 돈으로 한 다발을

거슬러준다.

 

공항으로 나오는 길에 대우호텔, 대우빌딩, 대우아파트와 그 주변의 한인들 거주지역을 창밖으로 본다.

김우중씨가 저기서 재기중이라는데....

 

노바이 공항. guide와 아쉬운 작별.

대체로 동남아 공항들은 탑승자들만 공항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공항 입구에서 작별해야 한다.

2시간 비행하는 동안 동석한 TC와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며 기내식으로 나온 국수와 만두를 대충 맛만 본다.

 

호치민시의 탄손누트 공항에 도착.(16시 30분)

짐을 찾아 복잡한 경로를 거쳐 국제선 청사로 가서 다시 짐을 부치고 캄보디아행 프로펠러가 있는 조그마한 비행기를 탄다.

다시 TC와 동석. SARS후에도 써야할 서류가 무지 많다. TC를 도와 서류에 기입하느라 50분 비행이 순식간에 끝났다.

기내식으로 나온 바게뜨 샌드위치를 가방에 넣은 채.

 

캄보디아의 시엠립 공항(18시 50분)

입국 수속 하기 전에 TC가 우리 일행을 불러 모은다.

이곳 공항 직원들은 유독 한국 관광객에게만 비자 발급과 입국 절차와 세관 통과가 까다롭고 웃돈을 요구하는 관례가 있는데

절대로 돈 주지 말고 버티자고 단단히 약속. 비장한 각오로 입국 심사대에 선다.

물론 서양인이나 일본 관광객보다 심사가 오래 걸렸으나 무사히 통과.

공항 직원들이 한국인에 대한 행위는 성질 급한 우리 관광객들이 만들어 놓은 관례였기에 우리 스스로가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부정행위에 응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공항 입구에서 이곳 guide를 만나 차로 이동하면서 캄보디아에 관한 얘기를 듣는다.

 

크메르人: 주변의 베트남,라오스,태국의 인종은 남하한 중국 남부人으로 비슷하나,

               크메르인은 원래 이 지역의 원주민이다. 체구가 조금 더 작고 까무잡잡한 피부.

인구 1200만, 면적은 한반도의 80% 정도.

1999년에 내전은 끝났으나 아직도 불안정. 입헌 군주국. 국왕 시아누크, 수상 훈센총리.

GNP 300불. 전기 사정 열악. 전 국민의 83%가 전기 혜택을 못 봄. 시내의 10Km거리 안에서만 가로등. 한 쪽만 켜져 있다.

 

저녁식사는 현지식으로.

호텔 체크인.이곳에서 3일을 묵게 되므로 오늘 밤은 밀린 빨래하는 날로 정함.

 

 

 

 

제 4탄   2003년 8월 11일 (ANGKOR 유적군)

아침 식사후 먼저 올라간 S를 뒤따라 올라가 우리방의 벨을 누르는데 안에서 감감 무소식.

아마 화장실에 계신가 보다고 기다리는데 S가 저쪽에서 오신다.

우리 room key로는 문을 열수가 없어 FRONT DESK에 가서 새로 얻었다면서 새 key를 가지고 문을 여니,

아뿔사! 이게 누구방이야? 소지품을 보니 TC방이 아닌가. 이걸 어쩌나!!!

 

다시 문을 닫고 나와 옆방 번호를 본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방 번호가 옆방인 TC방으로 기억하고 있다니.....하하...호호...

room key에 방 번호가 기록이 안되어 벌인 해프닝. IC card로 되어 손잡이 부분에 밀어넣어 열게 되어 있다.

 

7시 30분 출발.

오늘은 오전에 두군데의 사원과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점심 식사후 다시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가진후, 오후 일정은 초기 사원군을

보기로 했다. 3일간 이곳 사원군을 보기 위해서 three day pass에 부착할 증명사진을 찍었다.

3일간 이 pass를 목에 걸고 다녀야 한다.

 

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이 되었던 타프롬 사원으로 간다.

사원 입구에 들어서자 길거리 악단이 아리랑을 연주한다.

guide는 길옆의 나무 줄기에 불에 그슬은 흔적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이 나무를 "이앵나무"라 하는데 목재로 쓰이고 또 나무 기둥에 상처를 내면 기름이 나오는데 이것을 받아다가 호롱불용 기름으로

쓰인단다. 기름 채취를 방지하기 위해서 사람 손 닿을만한 곳을 불로 지져서 까맣게 만들었단다.

 

타프롬 사원:

앙코르 왕국(9C~15C)의 가장 전성기였던 자야 바르만7세(1181-1219)가 어머니를 위해 이 사원을 지었다고 하는데 다 허물어진

이끼 낀 벽들을 돌아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스펑나무의 문어발 같은 뿌리로 이 사원의 벽과 탑을 꽉 움켜쥐고 있는 괴기스러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복원하지 않고 일부러 방치해 놓은 사원으로 guide는 이 사원에서는 고요함을 즐기라고 하는데 여기저기 무너져 내린 보물같은

유물들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으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3일간 여러 사원들을 돌아보며 시간이 있다면 꼭 이곳에 다시 들러 명상하듯 무너진 기둥 뿌리에 걸터앉아 옛 앙코르인의숨소리를

듣고 싶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왕의 목욕탕이었던 스라스랑으로 간다.

건물은 없고 주춧돌만 남아있는데 그 앞에 넓은 호수가 나온다.

이곳에서 왕과 3000 여명의 시녀들이 한꺼번에 목욕을 했다나.

 

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한다.

방학중인데도 보충 수업하러 학생들이 나와 있다.

하얀 상의에 검은색 하의의 교복. 까무잡잡하고 꾀재재한 주먹만한 얼굴에 동그란 큰 눈이 반짝반짝.

교실에서 쏟아져 나와 우리를 구경한다.

옆 교실에서는 조그마한 애들이 달려 나오는데 아마 언니 오빠를 따라 나왔다가 옆 교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듯.

우리는 교무실로 안내 되었다. 흙바닥에 길다란 탁자와 플라스틱 의자 몇개가 전부.

벽 쪽의 선반에는 학생들의 숙제물을 걷어 놓은 듯 쌓여 있다.

우리 어렸을 적에 사용했던 누런 얄팍한 공책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캄보디아 글씨.

우리 일행들은 미리 준비한 학용품을 내어 놓았는데 모두 쑥쓰러워 한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더 많이 준비할 걸.....

여행사 TC가 커다란 가방을 내려 놓는다.

여기를 방문했던 여행자들이 틈틈히 모아 보내온 학용품과 옷가지들이란다.

학생들과 어린 동생들로 꽉찬 교실로 들어가서 상견례를 한다.

우리 일행 대표가 영어로 간단히 인사를 하고, guide가 몇 말씀하고....

수업에 방해가 될까봐 서둘러 학교를 빠져 나오는데 어찌나 마음이 무겁던지....

모두 말없이 걷는다.그래도 이 학교는 환경이 나은 편이란다.

가난한 나라이지만 교육열이 대단하고 특히 영어 바람이 불어 열심히 공부한단다.

 

현지 한국 guide옆에 캄보디아 여성 guide보조가 함께 다니고 있는데 8남매중 장녀이고 내전으로 대학을 중퇴한 28세의

노처녀이다. 보통 10대 후반이면 결혼을 하는데 지참금 낼 돈이 없어 아직도 시집을 못가고 있단다.

한국말 열심히 배우고 있는 얌전한 아가씨에게 우리가 가져온 학용품 일부를 건네줬다.

 

조각 예술의 극치라는 반테이 스레이 사원으로 간다.

사암에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붉은 색체를 띤 사원 전체가 조각으로 꽉 차있다.

정교함과 섬세함....조각품 하나하나가 힌두교의 신과 관련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원 창틀의 장식과 탑의 문위에 있는 링텔의 문양을 통해서 앙코르 왕국의 전기,중기,후기의 건축물을 구별해내는 방법을

guide를 통해서 배웠다.

1920년대에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가 이 사원을 구경하다가 부조의 그림에 푹 빠져서 부조를 몰래 뜯어 배에 실고 가다가

들통나서 매우 곤욕을 치뤘다나.

 

사원 앞에서 야자수와 연밥을 처음 먹어 보았다.

무덥고 갈증이 있던 터라 모두들 머리통 만한 야자수에 빨대를 꽂아 맛있게 먹고 버스에 올랐는데 TC가 연밥을 나누어준다.

고무질 같은 푸른 연밥 속에 도토리 만한 씨가 들어 있다. 하얀 속살이 고소하다.

 

귀로 길에 서민 마을에 잠시 하차하여 주택 한 곳을 골라 집안에 까지 들어갔다.

1층은 비어 있고, 보통 사다리를 타고 2층에서 거주하는데 자그마한 화로 하나에 냄비 하나.

여러 식구가 방 하나를 같이 쓴단다.

자식이 결혼하면 방 한 쪽을 커텐을 쳐서 신방을 만들어 주고 다음 자식이 결혼하면 그 신방을 내주고 가족들과 같이 쓴단다.

이런 생활을 하며 여러 애들을 낳다보니 이게 내자식인지...저게 내자식인지...

깜깜한 밤에 내 옆의 여자가 내 마누라인지....더듬더듬.....호호호...

방 문앞에는 시아누크 국왕 부처 사진이 걸려있다.

 

현지 뷔페식으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2시간 정도 휴식.

워낙 무더운 지역이라 이곳 사람들은 점심 식사후 가게 문을 닫고 쉰단다.

우리도 에어컨이 잘된 호텔 방에서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여행자료를 뒤적인다.

 

3시쯤.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룰로오스 사원군(초기 사원군)으로 향한다. 

인드라 바르만 1세(877-889)가 왕이 되면서 조상을 위해 만든 프레야코 사원으로 간다.

프레야코는 "신성한 소"라는 뜻.

흙벽돌로 사원을 세웠는데 왕이 된지 얼마 안되어 인력을 많이 동원할 수가 없어 쉬운 재료를 이용하여 건립.

왕권이 약함을 의미한다나.

 

바콩 사원으로 간다.

인드라 바르만 1세가 자신을 위해 만든 사원. 거대한 피라밋 모양으로 건축.

 

롤레이 사원:야소 바르만(889-900)이 아버지를 위하여 세웠다는데 여기도 흙벽돌을 이용.

 

저녁 무렵이 다 되어 프놈바켕 사원에 오른다.

프놈(산) 바켕(사원) 즉 산에 있는 사원이다.

야소 바르만이 도시의 중심인 이 산에(해발 65m) 자신의 신전을 만들었는데 산과 건축물을 조화시켜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수미산)

형상화 시킨것이고 지성소는 힌두교의 시바 신(링가)을 모시고 있다.

주변에는 우주의 대양을 뜻하는 해자가 있고.

이 사원에서는 특히 앙코르 전경과 정글위로 떨어지는 붉은 낙조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온다.

많은 인파속에 한국 관광객들도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아직은 우기여서 구름속에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저쪽에서 그림 그리는 외국인을 보았다.

이곳 탑을 그리고 있는데 난 자꾸만 그녀의 물병case 에 시선이 머문다.

네 물병case가 참 예쁘다고 했더니,인도의 라자스탄에서 샀는데 낙타 가죽이란다.

아까 반테이스레이 사원에서도 서양 남자애가 우리의 옛 상보자기 같은 1.5L들이 물병case를 보고 맘에 든다 싶었는데,

이번엔 낙타 가죽에 수가 놓여져 있다.

서양 사람들은 패키지 투어가 아닌 배낭족이기 때문에 큰 물병을 손에 들고 다니기가 번거로워 아예 case를 만들어 길게 끈을 달아

어깨에 메고 다닌다.

 

오늘 저녁은 뷔페식으로 식사하면서 압사라 민속춤을 관람. red wine까지 곁드려서.

맨 앞 좌석에서 보니 민속춤을 추는 애들의 옷이 많이 해져있다.

열심히 웃는 표정으로 캄보디아 전통 춤을 추는데 난 자꾸만 팔꿈치의 해진 옷에 신경이 쓰인다.

 

잠시 호텔에 들렀다가 small 툭툭이를 타고 시엠립 시내를 돌았다.

small 툭툭이는 오토바이에 2인승 좌석이 달려있다.

어두침침하고 조용한 동네에 GUEST HOUSE가 많다.

내가 여기를 배낭여행 온다면 저기에 묵게 되겠지. 간간히 internet cafe도 보이고.

 

강변에 있는 노천 카페에서 생과일 쥬스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오늘 저녁의 red wine과 생과일 쥬스는 선배 S와 내가 우리 일행을 위하여 기꺼이 쏘았다.

 

 

제 5탄   2003년 8월 12일 (앙코르톰과 앙코르와트)

7시 15분 출발.

오늘은 캄보디아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앙코르톰과 앙코르와트를 보게 된다.

차안에서 guide의 설명을 들으며 여행자료를 읽는다.

 

캄보디의 역사는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과 간섭에 의해 끊임없이 고난과 수난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역사이다.

고대로 부터 초 강대국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근대에는 프랑스와 미국의 압력을 받아 왔으며 주변의 강대국인 태국과 베트남의

침략으로 부터 안전할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유일하게 번영을 누리고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시기가 바로 앙코르 제국시대(9C~15C) 였다.

60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작품 "앙코르와트"를 건축함으로써 인류역사에 그 존재를 각인 시켰다.

12C~13C사이에 최전성기를 누렸는데 이때의 왕이 자야 바르만 7세이다.

그는 대승불교를 받아들여 왕과 관세음보살을 동일시하고 신정일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절대왕정을 펼쳤다.

이때 바이욘 사원을 비롯한 많은 사원을 건립.

그러나 13C에 스리랑카에서 시작되어 유입된 소승불교는 자기 진취적이고 개인주의 사상을 강조하며 왕에 대한 절대 복종을 거부.

이러한 종교 사상에 고무된 백성들이 왕정구조에 반발. 결국 앙코르 왕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태국의 수코타이 왕조와의 전쟁에서 패배.

그후 아유타야 왕조와의 전쟁에서도 패배함으로써 15C 이후 앙코르 제국은 그 중심지를 프놈펜으로 옮기며 시엠립의 찬란했던

앙코르 제국은 역사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러나 프놈펜에서 시작된 크메르 왕조도 지속적인 외세의 압력에 시달리며 수난을 겪게 된다.

이런 와중에 앙코르 지역이 태국의 영토에 편입되는등 혼란을 거듭,이런 혼란을 틈타 캄보디아를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프랑스가

진출, 캄보디아를 식민지화 한다.

한편, 앙코르 지역을 점령했던 아유타야 왕조는 앙코르 유적을 외면하고 방치시켰다.

오랜 세월 정글에 파묻혀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것이다.

1800년대 프랑스가 들어와 1860년에 밀림속에서 유적지를 발견.

1907년에 태국으로부터 앙코르 지역을 반환받은 프랑스는 앙코르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많은 유물들을 자기네 나라로 운반해

가지 않았을까?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시절,우리의 문화 유적지를 조사한다는 명목하에 귀중한 유물들을 빼돌린 것처럼.

지금도 앙코르 지역은 계속 복원해 가고 있는데 유네스코에서 관리하며 특히 일본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지원 요청을 했는데 거부했다나? 돈이 없어서?  문화적인 mind가 부족해서?

여기 복원하는데 쓰이는 노동력으로 캄보디아인들이 참여. 노동력 창출에 일조한다.

어제 저녁 퇴근길에 자전거 부대들이 길을 꽉 메우고 가던데 바로 그들이란다.

 

앙코르톰 남문에 도착.

어제 본 초기 사원군과는 규모부터 다르다.

남문 입구에는 윗쪽에 거대하게 솟아 올라 내려다 보고 있는 4개의 머리가 달린 석상에 입이 딱 벌어진다.

양 옆에는 머리가 7개 달린 신비한 뱀 "나가"가 있고,그 몸통을 붙잡고 양쪽으로 늘어선 각 54개의 선신과 악신들이 우유의 바다를

휘젓고 있다. 남문 입구를 통과한 후, guide로 부터 설명을 듣는다.

 

앙코르와트와 쌍벽을 이루는 건축물로 사원이라기 보다는 왕궁의 형태를 갖춤.

자야 바르만 7세가 대승불교를 받아들여 왕은 곧 부처와 같은 존재로 인식. 사원과 왕궁이 하나된 형태의 건축.

"앙코르톰"이란 뜻은 "위대한 앙코르" 즉 "위대한 도시"라는 뜻. 성곽도시 그 자체를 말함.

동서남북 각 3Km, 높이 8m의 성벽, 넓이 100m의 해자로 둘러 싸임. 모두 5개의 성문.

이 성곽도시 안에 바이욘 사원, 바푸온 사원, 왕궁, 코끼리 테라스, 피메나카스등의 유적지가 있다.

 

바이욘 사원으로 간다.

앙코르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사원. 자야 바르만 7세에 의해 건립.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수미산)을 형상화하여 건립한 관음보살상의 자비로움이 가득찬 곳.

그러나 부처님을 모신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회랑에 새겨진 부조를 보면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군사적 장면이 많이 새겨져

있다. 동쪽 회랑의 부조는 베트남 참파족과의 전쟁 묘사.

용병인 중국 병사의 턱수염, 긴 귀를 가진 앙코르 병사의 모습이 재미있다.

남쪽 회랑은 참파족과의 해전을 벌이는 광경.

밑에는 물고기들이 노니는데 화살을 든 병사들, 배에서 떨어져 죽은 병사를 물어 뜯는 악어의 모습.

조금 더 가다보면 일상생활이 펼쳐진다. 요리하는 사람,나무위에 피신한 사람,아기를 출산하는 모습도....

앙코르 제국의 600년간의 기록이 잦은 외침으로 없어져 이런 부조의 그림을 통하여 생활모습을 짐작케 하는데,

그래서 세계적인 금석학자와 예술사가들이 앙코르에 와서 호황을 누린단다.

두번째 문을 통과하자 갑자기 급경사가 나타나며 거대한 관세음보살의 얼굴이 위에서 내려다 본다.

기둥에는 압사라들이 새겨져 있고.

세번째 문을 통과하면 멀리서 보았던 기괴하고 거대한 사면체 관세음 보살 얼굴들이 곳곳에서 버티고 서있다.

지성소(대웅전)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고.

 

서양 배낭족들을 보니 개인 guide를 채용하여 진지하게 설명을 듣는다.

배낭여행은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해와도 현지에서 꼼꼼하게 살펴보기 어려운 취약점이 있는데 특히 이곳에서는

현지 guide의 해박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들이 이동할 때 보니 guide의 오토바이 뒤에 배낭 여행자를 싣고 달린다.

 

바푸온 사원은 현재 복원 공사중이고

터 만 남아있는 왕궁터 앞에서 야자수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물건 파는 어린애들이 영어는 물론 한국말도 한다.

사원 입구마다 물건 파는 애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관광객들이 차에서 내리면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구매를 요구한다.

교사의 월급이 30~35달러 정도인데 이 애들이 하루에 1달러 정도만 팔아도 교사 월급 만큼 벌어 들인단다.

이러다 보니 애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고 사원 입구에서 물건 파는데만 집착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단다.

특히,이 애들이 한국말도 하는 것을 보면 정이 많은 한국 여행자들이 많이 팔아주나 보다.

 

피메나카스,코끼리 테라스의 부조들을 구경하고 자야 바르만 7세가 아버지를 위해 지었다는 프레야칸으로 간다.

타프롬 사원과 같은 평면 구조에 스펑나무가 사원을 감싸고 있다.

 

점심은 다이어먼드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현지식으로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 샤워하고 침대에 눕는다.

행복감이 밀려온다.

깨끗하게 청소된 아늑한 방, 맛있는 음식, 세계 최고의 유적지에서 지적 욕구를 채워가고 있는 나. 

이 만한 행복이 또 있을까?

천둥과 함께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는데 wake call 전화 벨소리에 깜짝 놀라 로비로 내려 갔는데

아무도 나와 있지 않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여행자료를 뒤적인다.

 

오후 일정은 앙코르와트 관람.

1119년~1150년 수리야 바르만 2세에 의해 건축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석조 건축물중 하나.

사원 한면의 길이만 1Km가 넘는단다.

빗속의 앙코르와트. 고즈넉하다. 우산은 썼지만 덥지 않아서 좋다.

해자를 건너 앙코르와트로 들어간다. 인간 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신전으로 가기 위해 참배로를 우산 받고 걷는다.

도서관, 연못, 테라스를 지나 두 번째 문을 통과하면 앙코르와트를 동서남북으로 둘러싼 회랑이 보인다.

회랑의 벽에는 힌두교 신화에 의거한 수많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비가 오는 오후여서 컴컴하여 guide가 후레쉬를 비춰가며 부조의 그림들을 열심히 설명해준다.

힌두교 양대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묘사한 부조.

베트남 참족과 태국 씨암족과의 전투장면,우유바다 휘젓기 모습,각기 다른 표정의 압사라 등을 보면서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회랑을 돌아 몇 개의 계단을 오르고 나니, 갑자기 코 앞에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쓰던 우산을 TC에게 맡겨놓고 계단을 오른다.

폭이 좁고 경사가 급하기(70도) 때문에 안전끈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가 뒤를 돌아보니 탁트인 벌판과 앙코르와트 밑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4번째 문을 통과하여 중앙탑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성스러운 곳, 지성소가 있다.

절대자가 거주하는 상징적인 곳. 그러나 동서남북 4개의 방엔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다.

힌두 사원인 앙코르와트가 15C 이후 불교화 되면서 비슈누 신상 대신 불교 신도들이 갖다 놓은 불상이란다.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진한 감동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긴 참배로를 걸어 나오며 생각에 잠긴다.

앙코르에 배낭여행 온다면 왼통 하루를 앙코르와트에서 보내리라.

오전에는 혼자서 느긋하게 둘러보고,오후에는 해박한 guide의 설명을 들어가며 완벽한 여행을 해보리라.

사전에 "라마야나" 와 "마하바라타"를 충분히 읽고 와야겠지....

 

호텔로 돌아와 샤워하고 다시 저녁 먹으러 나간다.

오늘은 캄보디아인들이 즐겨찾는 대중식당에서 일반인들과 섞여 삭스핀을 넣은 전골과 잠자는 소를 잡은 쇠고기 구이등을

푸짐하게 먹는다. 벽에는 도마뱀이 기어다니고.....

 

호텔로 돌아와 small 툭툭이를 타고 나가 레스토랑에서 낮에 TC가 사다 놓은 시원하게 식힌 열대 과일

(두리안,망고,망고스틱,민,팁,파파야,바나나,석류,청포도등등)을 까먹으며 앙코르 맥주와 함께 시엠립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제 6탄   2003년 8월 13일 (톤레삽 호수-베트남의 호치민시)

7시 morning call.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식사후 check out 하는데 객실에 비치된 과자값이 1.5불 이란다.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는 후불제라는 것을 알지만, 커피포트와 함께 차를 마실수 있는 coffee set 위에 있는 과자는 서비스인줄

알고 어제 답사하러 나갈때 아몬드 한봉지를 갖고 나갔었다. 몇개 집어 먹다가 눅눅하여 쓰레기통에 버렸는데....에그에그...

 

잠시 호텔 주변 산책. 어제 밤까지 내린 비가 그치고 해가 났다.

아침인데도 꽤 덥다. 현지 가이드 보조인 쿤티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 1봉지를 주었다.

과자 봉지에 쓰여있는 글씨를 읽어보라 했더니 수줍은 듯 조그마한 목소리로 "고 소 미".

살포시 웃는다. 어제밤 TC의 방에서 함께 잤단다. 생전 처음 호텔 방에서 자본 경험이 어땠을까?

TC의 얘기로는 잘 때 씻지도 않고 옷을 여러겹 껴입고 자더란다. 그리고는 새벽에 일어나 목욕을 두세시간을 하더란다.

꼭 돈 많이 벌어서 좋은 남자 만나 시집 가세요!

 

8시 반 출발.

가방을 호텔 로비에 맡겨놓고 톤레삽 호수로 간다.

거리의 간판에 쓰여있는 캄보디아 글씨는 꼭 전통적인 문양 같다는 느낌.

주욱 이어져 그려진 비슷한 모양이 어떻게 글자가 될까?

베트남의 글씨는 알파벳으로 되어 있어 발음은 다르지만 친숙한데.

사실 베트남은 한자 문화권인데 1800년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소리나는 대로 알파벳으로 바꾸어 쓰기 시작 했단다.

 

킬링필드 대학살에 대하여 guide에게 물어보았다.

1975년~1979년까지 폴포트 공산 정권이 총인구 700만명중 200만명을 학살시켰는데 그당시 학살의 가해자(크메르루즈군)가

10대 소년들이었다. 1979년에 베트남의 침공으로 폴포트는 산악지대로 쫒겨났고 1998년에 사망했다.

그 때의 가해자들이 지금은 40대 초반쯤 되었는데 그냥 가슴에 묻어두고 산단다.

왜냐하면 한마을에서 세 집 건너에 가해자들이 사는데 이것을 들추어 내면 나라가 또 한바탕 뒤집어져야 하니

경제 자립이 급한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단다.

 

톤레삽 호수. 경상남도 크기의 넓은 호수인데 "물 반, 고기 반"이라.

풍부한 어획량으로 캄보디아의 경제에 큰 몫을 차지 한단다.

배수 시설이 전혀 안되어 있어서 티벳에서 발원한 메콩강이 하류인 캄보디아 남부 쪽으로 오면 강줄기가 S자로 휘어져

우기에는 강물이 범람하여 톤레삽 호수를 채우고 남은 물이 시엠립 지역으로 흘러 물바다를 이룬단다.

그래서 차창밖으로 보이는 들판이 제대로 농사가 지어지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톤레삽 호수에 도착.

어제 온 비가 호수를 온통 흙탕물로 바꾸어 놓았다.

버스가 정지하자 아이들이 몰려온다.

guide가 말한다. 구걸하는 아이한테 돈을 주면 그 아이들 모두에게도 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돈을 준 여행자를 끝까지 쫒아 다니며 귀찮게 한단다.

전에 스님 한 팀을 안내하여 여기를 왔는데, 주지 스님이 많은 돈을 가져와 이곳 거지들한테 적선을 했는데 한 손으로 받고는

또 다른 손을 내밀어 또 받으려 했단다. 양심있는 아이라면 비켜서서 다음 아이가 혜택을 받도록 해야 했었는데.

글쎄,스님들도 좀 더 생각이 깊었더라면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호수 가장자리 쪽으로 수상마을이 이루어져 있다.

여기 사는 수상족들은 베트남의 난민들로 캄보디아 국적을 가지고 있단다.

배를 타고 수상마을 속으로 들어간다.

꼬마 녀석이 강물에다 오줌을 눟고 있다. 한쪽에선 강물로 설거지를 하고.

가게도 보이고 학교도 있다.

오물을 그냥 버리기 때문에 건기 때에는 냄새가 지독하단다.

어제 내린 비가 계속 불어나서 아까 보았던 집이 저만치 흘러가고 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guide 집에 잠깐 들렀다.

13명이 기거하는 저택이다.

널직한 부엌에는 마치 김장하듯 배추가 절여져 있고, 집안일 해주는 캄보디아 여인 서너명이 일하고 있다.

 

 

나중에 동생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여기 랜드 여행사인 SECO 사장은 연세大 출신이고 앙코르에 배낭여행 왔다가 반하여 아예 여기에 눌러앉아 여행사를 차렸단다.

한국에서 모집한 신입사원을 데려와 석달동안 문 밖 출입을 금지시키고 앙코르와 관련된 서적 18권을 주고 읽도록 하여 끊임없이

발표시키고 토론하여 guide의 실력을 연마 시킨단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가족 단위의 소 그룹 guide부터 시작하여,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큰 그룹의 guide로 성장 한단다.

그런 훈련을 철저히 받은 우리 guide는 3일간 같이 지내고 있는데 유적지에서건, 버스에서건,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한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열심히 설명해주고 바지런하게 안내 해주는 태도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해박한 지식과 성실한 프로의식을 가진 guide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기껏해야 운전기사 노릇 하는 지방 여행사 guide들이

벤치마킹 했으면 좋겠다.

 

 

사무실에서 시원한 상황버섯차를 대접받고 나와 집 맞은편에 있는 평양 냉면집으로 간다.

북한 대사관에서 이곳에 음식점을 낸듯 하단다.

평양식 냉면과 김치가 입맛을 돋군다.

북에서 온 아가씨들이 써빙해주는데 싹싹한듯 하면서도 순간순간 매우 경직된 표정을 짓는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노래방 기기를 틀어놓고 "반갑습니다"를 열창한다.

북한 가요 세 곡쯤 불렀을까, 또 다른 한국 팀이 들어오니 그 쪽을 향하여 또 "반갑습니다"를 열창하는 모습이 꼭 기계같다.

이 식당에 들어오기 전에 guide가 주의를 주었다. 절대로 명함같은것을 주지 말라고.

한국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여종업들의 예쁘고 싹싹한 태도에 마음이 들떠서 명함을 주는데 이 명함 속의 정보가 즉각

북으로 전달되어 악용된단다.

 

다시 버스에 오른다.

호텔에 맡겼던 짐이 어느새 버스에 옮겨져 있고 공항으로 이동.

아쉬운 작별의 시간. 수고해준 guide에게 고소미 과자 1봉지를 건네 주었다.

 

 

시엠립 공항.

짐검사가 철저하다.

혹시 앙코르 유물이 밖으로 유출될까봐 투시기를 여러번 거친다.

호치민행 비행기가 15분이나 일찍 서둘러 이륙한다.(13 :00)

제 시간에 맞추지 않고 사람만 제대로 타면 곧장 떠나나 보다.

50분 비행. 기내식으로 오렌지 쥬스와 샌드위치.

 

호치민시의 탄손누트 공항.

짐이 늦게 나와  2시 반에야 공항을 빠져 나온다.

가이드 소개받고 호치민 시내로 이동.

 

전쟁 기념관 관람.

한국군 참전 사진은 2장 뿐. 전쟁 당시 사용했던 무기와 참혹한 고문사진, 피해 상황들이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은 주로 외국 관광객들만 들어온단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지 않고,게다가 외국인 전용이라.....찜찜한 기분이다.

지금은 경제성장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감추어지지만 어느정도 성장한 뒤에는 분명 역사는 파헤쳐 지는데....

라이 따이한에 대해 물어 보았다.

어느 목사가 베트남에 기술학교를 세우고 라이 따이한에게는 무료로 가르치고 있는데 50 여명 정도가 교육받고 있다며

이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한다.

 

재래시장인 벤탄마켓을 둘러본다.

하노이의 시장보다 잘 정돈되고 통로가 넓으나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고 무더워서 엄두가 안난다.

길 건너편 과일 노점상들을 구경.

시장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돈을 내란다. 1000동.

안내해준 운전 보조인 현지인이 대신 지불해준다.

여자 화장실의 진풍경.

여자들이 화장실 벽에 쪼그리고 앉아 방뇨.한쪽에선 청소부가 비누로 바닥을 닦고 있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본다. 발판용 벽돌 2장과 그 사이에 조그마한 구멍이 있다.

대변은 조준을 잘해야 조그마한 구멍으로 정확하게 들어 갈 수 있겠다.

 

시클로를 타고 시내 거리를 돌아본다.

소지품을 주의 하란다.

퇴근 시간대의 오토바이 행렬속에 끼어 아슬아슬하게 무질서 속에 질서를 찾아가는 모습.

오토바이 뒤에 탄 TC가 선두에서 지휘를 하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씩씩한 여전사 같다.

왠만한 남자보다 훨씬 능력있고 여행가의 끼가 다분하다.

현지 guide들이 제발 TC인 강 대리를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농담.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여행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경험시켜 달라고 압력을 넣어 너무 힘들다고 엄살(?).

그러나 현지 guide들은 그러한 강 대리를 너무 좋아한다.

하노이에서의 4*13m의 규칙적인 가옥구조가 여기에도 있지만 넓은 집과 고층 빌딩이 많고 하노이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호치민시의 GNP가 하노이보다 10배나 많은 3000불이라니까!!

 

다시 버스로 이동.

시청, 오페라 하우스, 노틀담 성당, 중앙 우체국 건물....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 노틀담 성당은 파리의 노틀담과 똑같이 지었단다.

월맹군의 대대적인 폭격을 받았지만 이 건물들은 비껴갔단다. 호치민 정부가 프랑스 지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라나.

우리의 포스코가 지은 다이어먼드 프라자의 13층 전망대에 올라가 차를 마시며 호치민시의 야경을 감상.

이 건물 근처에 있는 예쁜 노틀담 성당이 조명도 없이 어둠속에 묻혀 있다.

 

8시. 사이공 강의 유람선에서 저녁식사. 라이브 뮤직 무대, 불 쇼 등...

옆 테이블에는 베트남인 한 가족이 자녀의 생일잔치를 벌리고 있다.

예쁜 드레스를 입혀 이곳에 데리고 나온걸 보면 중 상류정도 계층이라나.

갑판에 서서 보름달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건너편 공원 주변의 연인들의 애정 표현이 매우 찐하다.

쌍쌍이 자가용인 오토바이와 함께.

 

9시 반에 하선.

비행기 탑승시간 까지는 아직도 3시간 이상 남아있다.

공항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타이거 맥주를 마시며 일행들과 환담.

같이 지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가족 단위로 온 일행중 부인들이 모두 교사들이다. 

모두들 진지하게 여행을 즐겼고 아쉬워하며 건배!

 

탄손누트 공항. 23시.

guide와 헤어지고, 짐을 부치고 gate에서 대기.

0시 55분 이륙. 잠속에 빠지다. 

 

 

 

제 7탄   2003년 8월 14일 (인천공항)

착륙하기 2시간 전. 승객들을 깨운다. 아침식사.

5시간여의 비행.

 

 

8시 10분.  인천공항 도착.

그동안 꺼놓았던 핸드폰으로 남편에게 잘 도착했음을 알리고.

세수도 못한 꾀재재한 얼굴로 로비로 나오니, 환영객 속에 선배 S 댁 가족이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호호...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1주일 동안 가족을 놔두고 여행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이렇게 꽃다발까지 들고 나와 환영해 주시니..... "

곁에서 듣고 있던 우리 일행의 부인들이 남편들을 불러 저 모습을 보고 배우라고 하여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다음 여행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일산으로 가는 공항버스. 햇빛 쨍쨍한 차창 밖을 내다 보기도 버거울 정도로 눈꺼풀이 내려 앉는다.

태영 프라자에서 내려 가방을 끌고 공원길을 걷는다.

햇빛은 강하지만 시원한 바람과 푸른 하늘, 개운한 공기,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고.

새삼,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음에 감사함이 절로 느껴진다.

자연환경,경제력,다이나믹한 국민성....

아무리 잘 사는 일본을 가보아도...유럽을 가보아도...처음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과 문화 유산에 부러워 하다가도

여행이 끝날때 쯤 되면 다시 내 안의 것을 되돌아 보게 되고 그리워 하게 된다.

생각에 빠져 걷고 있는데 지연이가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다.

오늘 휴강이라 어제 수업 끝나고 밤에 올라왔단다.

집이 지저분하면 엄마가 쉬지 못할까 봐 지금 청소 해놓고 마중 나온거라나.

엄마 마음 알아주는 우리 예쁜 딸!!!......호호호... 

 

 

 

 

* 여행기를 마치고 나서.

여행후 며칠간은 조그마한 까만 가방을 둘러메고 앙코르와트를 헤메는 꿈을 꾸었습니다.

가무잡잡하고 조그마한 얼굴에 커다란 눈의 캄보디아 애들이 눈에 밟히구요.

지금은 이끼 낀 타프론 사원의 무너진 기둥들이 그립고, 앙코르와트를 다시 오르고 싶어져요.

그러나 이젠 내 머리속의 헝클어진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얘기들을 다 쏟아내어 정리하고 보니 머리속이 텅비어 맑아져 있습니다.

마두 도서관에서 호치민 평전을 찾아 읽을까 해요.

 

 

 

*앙코르를 여행하려는 분께.

동남아 여행에선 앙코르 만큼 역사적인 무게가 실린 여행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아주 중요하고 진지한 여행을 하게 됩니다.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하면 그만큼 보이는 것이 많고 느낌이 크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면 하찮은 돌무더기만 보여

싫증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앙코르는 건기 때인 겨울에 많이 찾는데 그 때는 여행자들이 너무 많아 人山人海를 이루어 기다림의 연속인데

우기인 여름에는 찾는 이가 많지 않아 기다림이 없어 좋은데 날씨가 매우 습하여 찜통 더위속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점심식사 후 휴식 시간이 있어 오후 일정이 상쾌하게 시작 됩니다.

그리고 여행에서 쓸 여비를 준비할 때 현지 화폐는 재 환전이 안되기 때문에 신중 하셔야 해요.

그래서 현지에서 돈을 쓸 때는 달러로 계산하는 것이 편해요.

저는 이번 여행에 100달러를 환전 했어요. 동네 은행에서 주로 1달러와 5달러짜리로...

가난한 나라를 여행할 때는 액수 큰 돈이 필요 없어요.

고작 국제 전화 한 통화 하고 아침마다 화장대 위에 1달러 짜리 지폐 한장 올려놓는것 이외에는 쓸 데가 없더군요.

저녁에 우리 일행들에게 한번 쏜 것뿐.

내가 이용하는 "테마세이투어"에서는 여행 도중 돈을 걷는 일이 없어요.

야자수는 물론 우리가 마실 물까지 모두 준비해주죠.

시장을 다녀봐도 살 만한 물건들이 없구요.

가지고 간 돈을 거의 그냥 가져와 다음 여행 때 쓰는 거죠.

여행 계획 잘 짜시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지루하고 두서 없는 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구요.

돌아오는 추석명절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