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7시 기상.
침대위에서 스트레칭. 창밖에는 안개가 끼었다.
8시 넘어 거실에 나오니 며느리가 밥상을 차려놓고 소파에 앉아있다.
은우 접시에는 사과, 감, 두유
지우 접시에는 사과, 감, 계란부침, 오렌지쥬스
두 녀석이 원하는 메뉴를 전날 저녁에 주문받아 다음날 아침에 차려놓고
출근한단다.
며느리 출근하고.
아들은 월욜 쉬기 때문에 아들이 우리 밥상을 차린다.
식빵을 구워 무설탕 땅콩버터를 두껍게 바르고 그 위에 사과를 얇게 썰어
차곡차곡 올린다.
우유와 함께 먹으니 맛이 제법 괜찮다.
집에 가면 이렇게 해먹어봐야겠다.
두 녀석은 아직 안일어났고.
어지러워 하는 남편을 남겨두고 아들과 1주일치 장을 보러 까르푸 큰 매장에 갔다.
올리브,토마토,햄,시금치,그린빈(긴 콩꼬투리), 우유,바게트,포도,과자,잼...등
집에 돌아왔다.
두 녀석은 일어나 아침을 먹었고, 몰래 패드를 보다가 딱 걸렸다.
아빠한테 혼난 두 녀석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 공부를 한다.
아들은 토,일,월 3일 쉬고,
화,수,목 3일은 늦게 퇴근하고 금욜은 6시쯤 퇴근하여 가족과 저녁을 먹는단다.
그러니까 3일 쉬고 4일 근무한다.
며느리는 주말 이틀 쉬고, 수욜은 오전근무만 한다.
점심시간은 2시간(12시~2시) 그래서 집에 와서 점심먹고 조금 쉬었다가 간다.
한국보다 근무시간이 탄력있게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아들은 토, 일, 월욜 가족 식사와 대청소, 1주일치 장보기를 책임진다.
맞벌이 부부라서 가사일을 분담하는 모습이 보기좋다.
나의 세대는 여자가 완전히 육아와 가사일을 독박을 썼다.
하물며 여자가 직장을 다녀도 육아와 가사일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우리가 여기 와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
우리의 아침식사는 알아서 챙겨먹을테니 준비하지 말라고 했다.
가사일도 최대한 돕고 싶다고.
월요일마다 대청소를 한다.
빗자루로 쓸고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하는 아들만의 루틴이 있다.
오늘은 아들이 빗자루질, 남편이 진공청소기, 아들이 대걸레질,
내가 양쪽 화장실 청소. 물티슈로 먼지제거. 분담하니 쉽게 끝난다.
아들이 주방에서 점심 준비를 한다.
바게트 샌드위치 만들기.
1.토마토를 납작하게 썰어 소금을 뿌려 놓는다.
2.바게트를 길이로 길게 칼집을 넣어 양쪽 벽에 마요네즈를 바른다.
3.그 위에 햄,토마토,슬라이스 치즈를 얹고 조린 발사믹 식초를 바른다.
4. 뚜껑을 덮어 고정시킨다.
점심식사 - 샌드위치 2개를 3토막씩 자르고, 우유,쥬스를 곁드린다.
점심 먹으러 온 며느리도 합석.
아들이 만들어 주었던 이 바게트샌드위치의 맛이 가끔씩 그리울 때가 있었는데
오랫만에 이 맛을 음미한다.
남불여행에서도 많이 먹어보았지만 아들의 이 맛을 따라가질 못한다.
두 녀석의 공부시간과 휴대폰 보는 시간에 대하여 토론이 벌어졌다.
두 녀석이 충분히 자기 의견을 내고 밝은 대화로 이어진다.
한국에서라면 이럴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흐뭇하게 지켜본다.
잘 키우고 있구나.
아들과 우리 부부는 외출준비를 한다.
이 근처에 1차세계대전때의 격전지였던 마른지역을 가기로 하였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내 경작지가 나타난다.
추수가 끝났을텐데 아직도 누런 옥수수밭이 이어진다.

도로 양쪽으로 드넓게 펼쳐지는 경작지.
남불에선 포도밭과 올리브밭이 끝없이 이어졌었다.
남불은 여름에 고온건조한 지역이어서 다른 작물재배가 어려운것 같았다.
이곳은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드넓은 경작지에 뭐든지 재배가 잘되니
넉넉한 식량을 자급자족 하고도 남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축복받는 나라이다.
몇개의 마을을 지나간다.

마른 전투의 기념탑.
마을에서 높은 언덕에 우뚝 선 하얀건물.
갑자기 사회주의 국가에 온것 같다.






잘 다듬어진 파란 잔디.
직원이 잔디를 깍고 있다.
프랑스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이질적인 풍경에 어리둥절.

1차 세계대전때 독일 연합군이 프랑스에 쳐들어와 파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넓은 평야지대에 숲으로 둘러싸인 마른지역에서 미해병대가 참전하여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져 3주일 동안 1500여 미군병사가 전사했다.
얼마나 치열했는지 독일군이 미해병대를 '악마의 개'라고 했단다.
1918년 5월말~ 7월 중순까지 31만명중 4만5천여명 전사.
지리한 참호속에서 대치하다가 마침내 종전이 되었다.
미 해병대의 활약으로 이곳에서 전쟁을 멈추게 된것.
후에 프랑스 정부는 미 해병대 묘지를 이 지역 여러곳에 만들어 미국에서
관리하도록 하였단다.

미 해병대는 8개 사단이 참전했다. 각 사단의 마크

번역하면 시간은 그들의 행동의 영광을 떨어 뜨리지 않을것이다.
왠지 문장이 매끈하지 않다. 번역의 오류일까?
1918년 7월18일 이후의 미 해병대에 의해서 포획된 지역의 지도.

여기서 각 지역까지의 거리를 나타낸것 같다.


어지럽다던 남편이 여기에 와서 아들의 설명을 들으며 눈에 생기가 난다.





기념관 아래층에 있는 전시실에 들렀다.
전투 상황을 상세하게 영상으로 보여주고 전투복, 소지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숲속에 그 당시 사용했던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다.
군대 경험있는 두 남자는 신나게 들여다 보고 의견을 주고 받는데,
난 그저 멀뚱멀뚱...






다음엔 그 당시 전사한 미해병대 묘지에 간다.
이 지역 여러 곳에 있다는데 그 중 하나.



잘 가꾸어진 묘지전경. 매우 절도가 있다.
마치 사열대에 절도있게 늘어선 장병들처럼....

미국식 교회가 양쪽 묘지 사이에 있다.

하얀 대리석을 깍아 만든 묘지가 끝없이 이어진다.
묘한 긴장감, 숙연해진다.


군인중에 유대인도 있었구나.

신만이 아는 무명 용사 묘지. 가슴이 저려온다...


묘지 출구쪽에 미국식 주택이 2채 있다.
묘지 관리하는 직원들 숙소와 방문객들 쉼터로 쓰는것 같다.

와~ 멀지 않은 곳에 그당시 적군이었던 독일군 묘지가 있다.
철천지 원수였을텐데 어떻게 여기에 묘지를 만들수 있었을까?

하얀 대리석에 비해 참 소박하다.


여기도 유대인들이 독일군으로 참전했었구나.

이 묘지는 독일의 어느재단에서 관리한다고.
1차대전 격전지 투어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

경작지 한 모퉁이에 산더미처럼 쌓인게 뭘까?
추수한 농산물인데. 둥그스름한 무우? 아니면 배추꼬랭이?

온종일 안개와 가랑비가 내리더니 드디어 해가 나기 시작한다.



집에 도착.
두 녀석은 집을 지키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기특해라~
아들은 김치찜 준비하고.
난 밥을 안치고, 설겆이, 커피 머신도 세척해 놓았다.
브로컬리, 그린 빈, 시금치도 손질하여 데쳐 놓았다.
며느리도 퇴근하여 들어오고.
부부가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 잠깐 나갔다.
지난 여름 한국에 가서 친정어머니를 보고 온 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단다.
남편이 쉬는 날 저녁에 같이 달리기를 한다고.
꾸준히 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몸에도 좋은 변화가 있을것이다.
참 좋은 습관이 되기를 바란다.
저녁식사 - 김치찜, 브로컬리, 그린 빈, 시금치 무침,
맛있게 먹었다. 두 녀석은 수시로 밥을 더 퍼온다.
전기압력 밥솥인데 차진 밥이 안된다.
지난 여름에 고무바킹을 갈았다는데도.
후식은 골든키위, 요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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