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동해,삼척,울진,영덕 답사(2012년 6월) 제 3일

럭비공2 2012. 7. 2. 16:23

2012년 6월 23일 토요일

답사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숙소 지하에 있는 온천수에 몸을 담근다.

널찍한 온천장에 간간히 우리 회원들이 보이고.

개운하다. 숙소로 돌아와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한다.

1층 식당에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숙소 밖으로 산책을 나간다.

길가에 이곳 주민들이 농작물을 가지고 나와 좌판을 벌렸다.

구경하다가 마른 취나물과 깐도라지를 조금 샀다.

 

식사후 출발.

백암온천에서 나가는 10여Km 도로 양쪽에 목백일홍이 줄지어 있다.

분홍색 꽃이 100여일간 피어 있는 여름에는 장관을 이룰터.

 

유금사를 찾아가는길.

차창밖으로 보이는 산천이 참 멋지다.

들판에 농작물도 싱싱하게 자라고. 가뭄 피해가 없어 농민의 시름이 덜 한곳.

 

 

유금사(有金寺)

칠보산 기슭에 금을 손으로 주울 정도로 많이 캤다는 마을 이름이 有金.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

조선 중기까지 번성했었는데,갑자기 폐사된 전설이 있다.

어느날 주지 스님이 불국사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절 앞에 있는 연못에서 두 마리의 용이 교미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약한 기분이 들어 서둘러 돌아오는데,절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폭우가 내려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절이 완전히 페허가 되었다는 것. 그뒤 중건-화재-중창을 하여 맥을 이어오고 있다.

 

       뒤에 칠보산이 감싸고 있는 아늑한 자리에 유금사 법당이 있다.

 

      대웅전 앞 화단에 스님의 작품

 

       법당앞에 있어야 할 석탑이 법당 뒤쪽으로 돌아가야 볼 수 있다.

       법당이 무너졌을때 뒤뜰로 옮긴 것. 삼층석탑 1층 기단이 조금은 불안해 보인다. 보물로 지정.

 

      두상이 길고 코믹한 약사여래(?)

 

 

버스의 네비게이션이 시키는대로 찾아간 충효당.

우리가 찾으려던 충효당이 아니지만 그런대로 볼 만하다.

 

 

 

 

 

 

 

다른 충효당을 찾아가는 길에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들녁.

          노부부가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그늘에 잘 말려서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는 낙으로 힘든 농사를

          지으시겠지.

 

      충효당으로 들어가는 마을 어귀에서 만난 호두나무.

 

       고사리도 밭에서 재배한다. 굵직한 새 순이 많이 보이는데 일손이 부족한가?

 

우리가 찾던 영덕군 인량리에 있는 충효당 

임진왜란 전후에 지어진 古家.

        담장의 길이가 100m 가 넘는 큰 집.

 

     마당에 들어서면 너른 대지위에 남향으로 번듯하게 지어진 본채와 그 서쪽에 외따로 떨어진 별채를

     마주하게 된다.

 

     이 집의 대표 이름이 된 충효당은 본채의 서쪽에 별채로 지어진 정자이다.

     문이 닫혀있어 안은 볼 수 없는데 석류꽃이 예쁘게 피어있어 운치가 있다.

     삼보 컴퓨터 회장님 종택이라는 설이 있다. 그 분이 내려오시면 이곳 별채에서 머무실것 같다.

 

         본채 앞 뜰에 피어있는 삼백초.

 

        안채의 널직한 대청마루. 근데 대청마루 기둥에 가로지른 저 막대기는 뭘까?

 

        종택을 관리하는 분이 사용하는 부엌.

 

        안채 뒷곁에 있는 사당. 문에 들어서자 바로 정면에 딱 막고 서있는 저 나무는?좀 섬찍했다.

 

 

버스는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달리며 눈을 즐겁게 해준다.

우리의 산천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잘 자라준게 그저 고맙기만 하다.

길가에 고택이 있다. 

 

화수루(花樹樓): 조선 후기 숙종때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은 2층 누각.

         앞쪽의 누각 이름은 화수루이지만,전체는 ㅁ자 평면의 재사(齋舍)이다.

         齋재계할 재,舍집 사. 재사란 가문의 일을 의논하거나 자제들이 학업과 수양을 할 때 머물기 위해

         지은 집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잘 드나들 수 있는 번잡한 곳이 아니라 조용한 은거처로 알맞은 곳에 자리잡는다.

         이런 재사를 지니려면 상당한 명망과 함께 경제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조선 후기 세력이 막강했던 안동 권씨의 재사이다.                  

                  

         집안으로 들어가보니 누각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망을 쳐놓았는데 이름모를 벌레들이

         떼를 지어 날라다녀서 곧장 나와야 했다.

 

     화수루에 머무는 양반들을 시중하는 사람이 살도록 지은 화수루의 부속건물. 까치구멍집.

 

    까치구멍집: 집을 옆에서 보았을때 용마루 양쪽 끝 아랫쪽에 구멍이 나 있어서 붙인 이름.

 

     이 집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천정에 지붕을 합각(合閣) 처리하여 구멍을 내어 부엌위로 연기가

     빠져 나가도록 하였다. 몽골인의 거주 천막에도 뾰족한 끝에 구멍을 내는 거와 같은 이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외양간, 그위 선반. 그리고 왼쪽은 마루.외양간 뒷쪽이 부엌이다.

 

       마루에 올라가면 오른쪽이 안방, 왼쪽은 사랑방. 

       17세기에 건립되었는데도 이 집의 가운데에 마루를 두고 방과 방 부엌을 둔 겹집 구조여서

       우리 사는 아파트 구조와 비슷하여 흥미있다.

 

      화수루 건너편 험준한 절벽에 벌통이 보인다. 토종꿀을 모으는 중(?)

 

 

답사 마지막 코스인 장륙사.

화수루에서 가까운 곳에 운서산 장륙사가 있다. 고려말 나옹선사가 창건.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에 주심포 건물.

   

                 

           주지 스님은 우리를 법당에 불러 들여 나옹선사 칭송으로 열을 올렸다.

 

         대웅전 건물을 금단청 하여 유명하다는데.

 

       관음전의 높은 축대를 만든 장인들의 솜씨.

 

         관음전에 모셔진 건칠관음보살좌상

         기본틀 위에 종이를 여러 겹 덧붙여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다시 금물을 올린 불상이다.

         조선 초기 작품. 보물로 지정

 

영양으로 나가 돌솥밥으로 점심식사. 생선구이를 곁들여서.

이렇게 2박 3일간의 동해안 답사는 끝났다.

동해바다와 울창한 산과 깊은 계곡, 그 속에 알알이 밖혀 있는 보석같은 유적들을 돌아보며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불영계곡과 불영사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품위있는 죽서루와 함께.

돌아오는 긴 시간내내 친구와 못다 한 이야기를 소근소근 나누며....